걸(乞)
박경주
국화꽃이 남편의 사진을 감싸고 있었다. 곡하는 소리, 교우들의 연도 소리는 슬프게 이어지고…. 성가는 애달피 향불과 함께 피어올랐다.
두 아들은 검은 양복을 입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먹거렸다.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스물둘, 열아홉의 상주였다. 지난밤, 임종을 지키느라 밤샘을 한 그들이었다.
쯧쯧. 손님들은 상주喪主를 얼싸안았다. 힘을 내라고 토닥였다. 홀로 남은 어머니를 잘 모셔야지, 라고 했다. 두 아들은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을 잇지 못했다.
떠난 자와 남은 자. 망자의 사진 앞. 향불 사르기와 두 번의 절, 그리고 맞절. 밤이 되자 영안식장은 한층 붐비었다.
입구에 줄을 서 문상객들은 너나없이 봉투를 꺼냈다. 몇몇 조문객들은 내게 다가와 살짝 조의금을 디밀었다. 액수가 좀…, 분실할지도 몰라 직접 드립니다, 애들 학비입니다, 꼭 받으셔야겠습니다, 열심히 살아야 해요, 등등…. 내 손에도 제법 봉투가 쥐어졌다. 그들의 충정이었다. 위로해줄 게 돈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 돈을 나는 손에 쥐고 있었다. 혼자 살려면 돈이 힘이에요. 모두들 돈, 돈, 돈 걱정을 했다. 남편은 나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받아, 돈이 필요하지, 남편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접수를 보던 시동생이 내게 다가왔다. 받은 조의금 봉투들을 주라고 했다. 명단을 낱낱이 기록해야 한다면서…. 할 수 없이 봉투를 넘겼다.
다음날도 아침부터 자식들은 또 그 자리에 섰다. 손님들의 조의금 봉투는 또 쌓여갔다. 전날처럼 비밀로 주는 봉투도 많았다. 그날은 시동생을 의식해 재빠르게 감추었다.
장례를 마치고 조의금을 세어보았다. 내게는 제법 큰돈이었다. 지친 두 아들을 데리고 집 근처 식당으로 갔다.
“많이 묵어라아.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 벱이여.”
앞에 앉은 두 아들의 갈비탕에 나는 밥을 두 공기씩 말아 주었다.
그날이 언젠가. 백화점 앞 지하도 계단을 서둘러 올라가는데 아기를 업은 걸인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두 손바닥을 위로 치켜 올린 채. 앞에 놓인 바구니에는 동전 몇 개뿐, 등에 업힌 아기는 칭얼대고 있었다.
한참 뒤, 동창회를 마치고 다시 그 계단을 지나가게 되었다. 구걸하던 여인은 순두부 백반을 배달시킨 듯 마침 돌아앉아 먹고 있는 중이었다. 등에 업힌 아기에게도 후후 불어가며 연신 먹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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