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꽃수레 변해명 일요일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성당 입구에서 한 걸인과 만난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얼굴을 가능한 한 보이지 않게 숙이고 쭈그리고 앉아 동냥 그릇을 들고 있는 걸인은 벌써 몇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 걸인을 볼 때마다 Y가 떠오른다. 걸인의 동전 그릇에 동전을 넣으며 Y처럼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데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스치듯 지나칠 뿐이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면 걸인이 있던 자리에는 꽃을 담은 수레가 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꽃을 판다. 장미, 국화, 프리지어, 안개꽃 등 금방 화원에서 메어 싣고 온 듯한 싱싱하고 묶음이 좋은 꽃들이다. "한 단에 천 원" 그런 종이쪽지가 꽃다발 위에 놓여 있고, 그저 가져가고 싶은 대로 가져가라는 것처럼 경계가 없는 꽃장수 수레다.
꽃장수 아저씨는 한 40은 되어 보이는 분인데 그는 꽃을 파는 데는 정신이 없고 미사 시간에 미사 참례할 것만 챙기는 사람같이 언제나 꽃수레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이다. 돈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꽃을 싸주면서도 생각은 다른 데 있다. 어떤 날은 숫제 수레 앞에 꽃장수가 없다. 수레는 놔두고 미사를 보러 간 것이다. 그런 꽃수레를 보는 날이면 그가 미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내가 대신 팔아주고 싶은 생각에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주인 없는 꽃수레를 보고 있으면, 주인이 없다고 그냥 집어 가면 어쩌나 하고 생각하는 내 염려가 믿고 놔둔 아저씨 마음 앞에 도리어 무색하고 부끄러워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나도 미사를 봐야지요." 하며 어린이같이 환히 웃으며 다음 미사 시간을 기다리는 꽃장수를 보면 또 Y를 보는 것 같다. 고등학교 학생들보다 더 순진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그들 앞에 서 있던 Y, 학생들이 일을 저질러 속을 썩이거나 교사들 간에 갈등이 생길 때면 술을 한잔 걸치고 나를 찾아와 변형, 변형! 하며 하소연하고 괴로워하던 Y. 학생들을 학생이 아닌 친동생처럼 사랑하고 돌보면서 결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원 강사로 자리를 바꾸면서 자신으로 해서 가족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고민하던 착하기만 한 사람, 그에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 일요일 Y의 친구인 K가 성당 언덕길을 오르다 걸인을 만났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일요일이면 자리를 지키는 걸인을 기억한다. 같은 장소에 같은 걸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걸인의 모습이 조금 달라 보였다. 눌러 쓴 모자와 웃옷은 걸인 같은데 앉아 있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했다. 석연치 않게 느껴진 그는 걸인 앞에 쭈그리고 앉으면서 동전을 바구니에 넣었다. 그러면서 얼굴을 감싸듯 어깨 사이로 깊이 숙인 걸인의 옆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그 걸인은 자신보다 앞서 성당에 간다던 친구 Y가 아닌가. 친구는 너무 놀라 웬일이냐고 물었다. 그제야 고개를 든 걸인 Y가 웃으면서 누가 들을까 소곤거리는 거였다. "미사 시간이 한 30분 남아있어서…. 아침을 먹지 않았다고 하기에 아침을 먹고 오라고 보냈어. 올 동안 대신 자리를 지켜줘야지…."
걸인에게 아침을 먹이려고 대신 걸인 행세를 하고 있었던 사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처음 사 입은 외투도 추워 떠는 사람을 보고 미련 없이 벗어주고 들어오는 사람이었으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오늘따라 생각이 난다.
그는 어느 날 친구와 술자리에서, 두 사람 모두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Y는 사립학교라 재단의 간섭이 싫다는 이유 때문이고, 친구는 미래의 설계를 앞당기고 싶어서라고 했다. 교사를 그만두고 여관 주인이 되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고, 밤이면 관능과 환락의 세계를 엿볼 수도 있고, 낮이면 쓰고 싶은 소설을 쓸 수 있어서라고 했다. 그런 친구의 농담에 Y는 천박하다며 욕을 했었다. 현실적이고 계획적이고, 돈을 세속적인 삶에 충실해지고 싶어 하는 친구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지니지 못한 부분을 그가 지녔기에 그 친구를 좋아했던 걸 나는 안다.
우리가 삼십 대의 이야기니 30여 년 전 기억들이다. 지금 그의 친구는 현실적인 삶에 성공했을 것이고, 마음 착한 Y는 여전히 어린이 같은 순진함으로 가난한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희망의 삶을 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주인 없는 꽃수레를 보며 Y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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