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연탄 한 장 / 안도현

희라킴 2018. 1. 26. 11:42


  연탄 한 장/안도현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구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