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수필

[제8회 천강문학상 수필 우수상] 공터 / 김응숙

희라킴 2017. 9. 13. 17:59

 

[제8회 천강문학상 수필 우수상]


공터 


                                                                                                                                   김응숙


 공터의 어둠은 아무런 전조 없이 찾아왔다. 담벼락 아래에서 습기처럼 배어 나온 그림자가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릎께를 넘실거려도 공터의 햇살은 짱짱하기만 했다. 서쪽으로 기울던 태양이 산 능선에 턱을 괴고 공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이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자, 무료해진 태양이 산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노을의 끝자락, 숯불을 뒤젹여 놓은 것 같은 빨간 잉걸불이 사그라지기를 기다려, 체로 거른 듯 고운 입자의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제야 공터는 어떤 얼룩도 남기지 않은 채 순연하게 물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던 부산의 변두리였다. 도심에 붙박기에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모여 살았다. 쓸모없어진 부속품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백여 호의 집들은 지붕 한쪽이 내려앉거나 뒤틀린 채, 비스듬한 경사면을 따라 들어서 있었다.


 그 허술한 동네의 신작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작은 공터가 있었다. 그 뒤로는 배수진처럼 꽤 깊은 절개지가 놓여 있었다. 이런 위치 때문인지 공터는 간이 무대처럼 보였다. 조금씩 높아지는 객석을 눈앞에 둔 무대 말이다. 동네 끝집에서도 앞집 지붕을 피해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공터가 보였다.


 우리 집은 공터를 향해 조그마한 들창이 나 있는 길갓집이었다. 신작로에서 이는 흙먼지로 인해 들창은 늘 뿌옇게 흐려 있었다. 나는 들창 밖으로 팔을 뻗어 소매 끝으로 어렵사리 유리의 아랫부분을 조금 닦았다. 그러고는 그곳에 눈을 대고 공터를 바라보곤 했다.


 공터에는 수시로 공연이 올랐다. 이른 새벽, 목판을 맨 두부 장수가 공터 앞에 나타났다. 잠시 동네를 둘러보던 두부장수가 절룩거리며 골목을 오르기 시작하면 짤랑거리는 종소리가 미적거리고 있던 여명을 깨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젖먹이를 들쳐 업고 양철동이를 머리에 인 재첩국장수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의 등장은 이제 막 조명을 밝히고 있는 공터에서 벌어질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빛바랜 보자기에 싸인 도시락을 들고 날품팔이를 나가는 가장들이 지나가고, 피로한 낯 색의 여공들과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총총 지나가도 공터는 조용했다. ​잠깐 삼삼오오 친구를 기다리는 초등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기포처럼 공터 위로 떠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곧 대열을 정비한 아이들이 십여 리 떨어진 학교를 향해 떠나자 공터는 다시금 비어 버렸다.


 그 당시 나는 공납금을 마련하지 못해 몇 달 다니지도 않은 중학교를 그만 둔 상태였다. 식구들이 잠든 밤이면 현관 쪽마루에 촛불을 켜고 밤새도록 책을 읽었다. 해가 뜨고 집이 비면, 들창 밑에 몸을 바짝 붙이고 낮잠을 자곤 했다. 아마도 밝은 세상으로 나가기가 두려웠던 것일 게다. 단지 들창으로 공터를 내다보는 것이 유일한 세상바라기였던 시절이었다.


 해가 중천으로 떠오르고 엿장수의 가위에서 나는 쇳소리가 나를 깨웠다. 엿장수는 공터에 수레를 세워 두고 철컥거리며 골목을 돌았다. 별반 쓸모도 없는 살림살이에서 더 쓸모없는 것들이 가려졌다. 공터에 오른 '엿장수'라는 공연에는 출연자들이 줄을 섰다. 동네 사람들은 구멍 난 솥이라든지,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공병을 들고 나와 흥정을 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정말 주연배우라도 되는 양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엿장수가 무거워진 수레를 끌고 무대를 떠나면 뻥튀기 장수가 나타났다. 학교에서 돌아온 조무래기들이 흰 김이 나기 시작한 기계 앞에 귀를 막고 둘러앉았다. 이제 곧 "뻥" 소리와 함께 '뻥튀기'​라는 공연은 클라이맥스에 오를 것이고, 어린 관중들은 환호를 질러댈 것이었다.


 공터에 오른 공연의 숫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공일이나 반공일에는 바리깡과 보자기를 들고 이발사가 등장하기도 하고, 털 빠진 원숭이와 슬픈 눈을 한 딸을 데리고 약장수가 전을 펼치기도 했다. 명절 직후에는 허술한 서커스단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한 겹 장지문 안에서 겨울을 난 동네 노인들이 초봄에 부는 샛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시면, 어김없이 공터에서 ​노제를 지냈다. 공터에서는 상여에서 흔들리는 하얀 종이꽃과 상복으로 여민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곡소리로 구성된 오페라의 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공터는 동네사람들의 삶과 죽음 사이의 퍼포먼스로 넘쳐나던 무대였다. 그 어떤 표지판도, 시설도 없었기에 인생 여정에서 어우러진 공연들이 아무런 각색 없이 오롯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연출하고 출연한 단막극들이었다.


 그런데 이 무대에서 정작 나의 관심을 끈 공연은 따로 있었다. 일종의 모노드라마였는데, 이 공연에서는 조명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쪽 하늘에서 서서히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하늘을 힐끗거리던 할머니가 빨래를 걷으러 마당으로 내려섰다. 공터의 조도가 몇 럭스쯤 어두워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그림자들이 낌새를 느끼고 쥐구멍으로 숨는 생쥐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두들 빗방울을 피해 지붕 아래로 뛰어들고 문을 닫았다. 왠지 모를 비장함이 공터를 맴돌았다. 그때 꼬질꼬질한 잿빛 바바리를 걸친 배우가 공터로 들어섰다.


 나는 이 공연의 이름을 '바바리 아저씨'라고 붙였고 동네사람들은 '불효자식'이라고 불렀다. 기껏 공부시켜 놓았더니 정신이 돌아서 늙은 어미의 등골을 휘게 하고 심장을 파먹는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 배우가 공연에 임하는 자세는 진지하기 짝이 없었는데, 연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제스처는 그 진중함을 더해 주었다.


 희고 파리한 손을 들어 올린 채 아저씨는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그 공연이 모두가 쉬쉬하는 시대극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박정희'니 '이후락'이니, '미국'이나 '막스'같은 금​기어들이 섞여 있었다. 근처에 어른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고, 잔돌을 던지며 놀려대던 몇몇 아이들도 후둑거리던 빗방울이 굵어지자 집으로 돌아갔다.


 비가 내리는 회색 공터에서 공연되던 모노드라마, 한 명의 관중도 없이 홀로 지루하게 이어지던 공연. 마침내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고 바바리 깃을 타고 내리는 빗물과 함께 쓸쓸히 퇴장하던 아저씨. 아저씨가 사라지자 잿빛 바바리에서 검은 물이라도 빠졌는지 공터는 짙은 어둠에 휩싸였다. 그리고 때맞춰 바람을 탄 빗줄기가 탭댄스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공터에 '광장'의 이미지를 덧칠하고 싶지는 않다. 공터에는 어디론가 도도하게 흘러가는 물결 같은 것은 없었다. 삶을 살고 있는 그 자리에서, 삶 그 자체가 무대에 올랐다. 우리들은 돌아가며 주연도 하고 조연도 했지만,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날도 많았다. 그리고 어쩌다 삶의 이면, 그 짙은 어둠속에 들어섰을 때는 홀로 독백도 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집 밖으로 나와 들창 아래 블록 벽에 기대앉았다. 공터가 어둠에 물들고 있었다. 등 뒤 블록의 온기가 식자, 공터 끝 비스듬히 기운 전봇대에서 희미한 방범등이 켜졌다. 나는 바바리 아저씨가 섰음직한 자리를 찾아 어둠 속에 섰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나만의 독백을 시작했다. 맞은편 길갓집 들창에서 여전히 한 소녀가 공터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