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수필

[제8회 백교문학상 수필 우수상] 시금치 판 돈 / 신숙자

희라킴 2017. 8. 11. 19:49


[제8회 백교문학상 수상작품 ]


시금치 판 돈 


                                                                                                                                  신숙자


 서랍에 묵혀 두었던 돈을 꺼내본다. 어머니의 흙냄새가 난다. 구십이만 원, 백만원을 채우려다 기어코 다 채우지 못했다며 내 손에 쥐여 주고 간 어머니의 돈이다.


 이 돈이 서랍 속에서 잠든 지 삼 년째 접어들고 있다. 시골 노인네가 시금치를 팔아 이만한 돈을 마련하기란 농부의 딸이 아니었다면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몇 만원이 아쉬운 시골인데, 팔순 노인네의 모지락스러움이 떠올라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그해 겨울, 나는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혹한에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살기 위한 치료인지 주검을 부르는 치료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항암치료에 고통스러울 때, 어디서 딸의 소식을 들었는지 어머니가 오셨다. 애달픈 사랑꾼을 보고도 만신창이가 된 나는 희망 없는 천정만을 바라보며 덤덤했다. 거북 등껍질처럼 갈라진 손으로 신문지에 둘둘 말아온 돈을 내어놓으신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이셨다. 얼다 녹아 버린 시금치보다 더 늘어져 있는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내려는 어머니였다.


 살면서 이 같은 불효를 저지르다니 꿈에서도 상상 못한 시간이었다. 변기통을 붙잡고 구역질을 해대다 더는 치료 받지 않을 거라고 울음을 토하는 날들이 길어졌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고통은 남아 있는 삶조차 공수표에 붙여도 아쉬울 것 없겠노라 모진 마음이 똬리를 틀었다. 숨을 쉰다는 것이 지옥이라 차라리 다 포기하고 싶었을 때, 어머니의 눈물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였다. 어머니를 두고는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돈에도 기氣가 있다고 한다. 변두리 시장 바닥에 앉아 시금치 파는 할머니에게 흘러들어온 돈에는 수많은 사람의 손때가 묻어있다. 향수냄새, 기름냄새, 생선냄새, 흙냄새들이 섞이고 섞여 돌고 도는 돈 냄새가 났다. 돈을 쭉 펼쳐보면 모두가 헌 돈뿐이다. 어쩌면 이렇게 때깔 없는 것까지 제 주인을 빼닮았는지 모르겠다. 세상을 돌고 돌아오느라 빳빳하고 날카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어머니의 온기와 함께 부드러움만 남았다. 후줄근해진 헌 돈이 편해진 걸 보면 까칠했던 내 성미도 세월 앞에서 많이 꺾인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새 돈 헌 돈 따질 일도 아니다. 새 돈이라고 물건을 더 주고 헌 돈이라고 덜 주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동전 한 닢 아쉬웠던 시절이 있었다. 육성회비는 고사하고 학용품도 제대로 없었던 유년시절이 어제인 듯 생생하다. 살림살이가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무조건 책값을 내놓으라고 억지투정을 부리는 떼쟁이가 되었지만, 비어 있는 주머니에서 살가운 인심이 날 리가 만무했다. 오히려 가차없는 냉혹함에 마음만 상했다. 나눌 것이 없었기에 다정하지도 따뜻하지도 못했던 때라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궁상맞은 모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밭일에 손톱 밑은 일 년 열두 달 까맣고 명품 버버리쯤으로 착각하고 있는지 머리에 쓴 수건은 계절 없이 똑같다. 아무리 시간을 역순해 보아도 고운 모습이라곤 없었던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화장품 냄새는 고사하고 퀴퀴한 땀 냄새가 원래 어머니 냄샌 줄 알고 자랐다.


 세월이 흐르고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의 생활을 알뜰하게 챙기지 않았던 나였다. 사랑을 주고받는데 내공이 길러진 모녀 사이는 아니었나 보다. 어쩌다 시골에 다니러 가면 이것저것 챙겨주는 성의에 답할 게 없어서 몇 푼의 푼돈을 쥐여 주고 오는 게 고작이었다. 자식에게 빚을 지고 있는 사람처럼 더 줄 것이 없나 살피는 어머니의 모습이 당연하다는 듯 익숙하게 살아왔다.


 부모의 도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도리도 있는데 걱정 끼친 것도 모자라서 때 묻은 돈까지 받아 놓았으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굳이 자로 재지 않아도 구십이만 원을 단돈 구십이만 원으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편히 받을 수 없었던 돈, 함부로 쓸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간직하고 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목적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이 돈으로 내 삶의 기록물을 탄생시키는데 보태면 좋을 성싶어졌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시금치 판 돈이 두 번째 삶에 밑거름이 되어 줄 것 같아 홈홈하다. 어디서 이런 가당찮은 용기가 생겨났는지 자신조차 알 수 없다. 타고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마음만 저만치 앞서고 있으니 이만저만한 탈이 아니다. 부끄러운 오기인 줄 알면서도 한번 먹은 욕심은 제어되지 않는다.


 어머니의 돈을 핑계 삼아 지나온 시간도 반성하고 살아온 일들을 정리해 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여차하다 두 번째 화살을 맞기라도 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지라 달리 의미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또한 한바탕 물거품이 될지 알 수 없으나, 어머니가 한 포기 한 포기 시금치를 정성 들여 길러냈듯이 나 또한 삶의 기록장에 모종을 붓고 거름을 주는 일에 정성을 들여 볼 요량이다.


 수레바퀴에 실어 달렸던 꿈이 멈춰버린 지 삼 년째 접어들고 있다. 넓은 집, 좋은 차, 아들딸의 성공을 꿈꾸며 살아온 날들이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다만 작은 꿈 하나 꾸어 본다면 다시 시작된 이 막 인생길에는 사랑의 향기가 은은하게 피어났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