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행복재활원 지나 배고픈다리 지나 / 나희덕

희라킴 2017. 6. 14. 19:10





행복재활원 지나 배고픈다리 지나


 詩. 나희덕 



 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

행복재활원 지나 배고픈다리를 지난다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전혀 행복하지 않을 때도

배고프지 않을 때도 그곳을 지나야 한다

행복재활원 정문 앞에는

유난히 높은 과속방지턱이 있어

아무리 천천히 지나도 온몸이 흔들린다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다리를 저는 아이들,

길 건너 마중 나온 엄마가 희미하게 웃고 있을 때

그 사이를 지나노라면 정상적인 몸으로

사는 일 자체가 일종의 과속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차는 어느새 배고픈 다리를 건너고 있다

가운데가 푹 꺼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천변을 끼고 낮은 지붕들이 늘어서 있다

누추한 담벼락에는 호박덩굴이,

다리 옆구리에는 담쟁이가 낮은 포복으로 세상을 건너고

배고픈다리 건너 창억떡집,

떡집의 제분기는 입을 다물고 있을 때가 많다

행복한재활, 배고픈창억,

그 높거나 낮은 마음의 턱을 넘으며

엔진은 갑자기 그르릉 소리를 낸다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이란

늘 그 모순형용을 지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 부추꽃으로 / 박남준  (0) 2017.06.23
내가 나의 감옥이다 / 유안진  (0) 2017.06.21
멀리 가는 물 / 도종환  (0) 2017.06.07
김밥천국 / 박소란  (0) 2017.05.28
그릇 / 안도현  (0) 2017.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