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삶이란 둥근 원이다 / 임만빈

희라킴 2017. 2. 28. 11:59



삶이란 둥근 원이다


                                                                                                                                   임만빈

 

 응급실은 언제나 혼돈의 장소다. 생과사가 흔히 공존한다.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이 이곳저곳에 그어져 있다. 우르르 죽음의 그림자들이 몰려왔다가 하나 둘 물러가기도 한다.


 이곳의 인간들은 기계다. 의료인들도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환자들도 기계처럼 취급된다. 환자가 들어오면 혈압과 맥박과 체온이 체크되고 옷들이 벗겨진다. 간단한 병력이 청취되고 정맥에 도관이 삽입된다. 도관을 통하여 체혈이 이루어진 후 수액 공급관이 연결된다. 소변관이 삽입되고 산소 공급이 코에 씌워진다.


 노인 병원에서 상태가 악화 된 아버지가 응급실에 들어오자 젖은 기저귀가 벗겨지고 소변 줄이 끼워진다. 토해서 더러워진 옷도 벗겨진다. 심전도를 찍기 위한 부착물들이 앙상한 가슴의 여러 곳과 팔다리에 부착된다. 거품 같은 가래가 숨길을 막곤 한다. 기관내삽입관이 삽입된다. 중심정맥압 도관이 삽입될 때 이마를 잠깐 찡그린다. 아버지는 그것으로 움직임을 끝내고 잠잠하다. 내가 이 병원에 근무하는 교수이지만 간호사는 나를 전혀 알아보지못하고 냉정하다.

  "000 보호자죠? 이것을 수납하고 오세요."

 환자와 의료인과의 관계는 수평관계가 될 수가 없다. 위세에 눌린 나는 응급실로 나와 수납계로 간다. 직원이 알아보고 일을 빨리 처리해준다. 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응급실에 돌아와 수납증을 간호사한테 내민다. 바쁘게 움직이던 인턴이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그 자리를 떠나 응급실 밖으로 나온다. 텔레비전에서는 한국 시리즈 야구 결승전이 중계되고 있다.


 멍하니 야구 경기를 잠깐 본다.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기관내 삽입관을 입에 문 아버지의 눈은 기둥에 목사리로 묶인 개의 슬픈 눈을 닮아 있다. 풀어 달라고 쳐다보던 눈빛이 보기 싫다. 연구실 창문밖으로는 어둠이 깔리고 있다. 건물의 불빛이 하나 둘 늘어난다. 멍한 기분이다. 하루 종일 정신 없이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아버지의 삶이 혹시나 끝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한다.


 가운을 입고 다시 응급실로 내려 간다. 이제야 간호사도 의사도 나를 알아본다. 가운이 사람을 다르게 만드는 모양이다. 허름한 잠바 차림의 나는 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를 담당한 수련의가 다가와 아버지의 상태와 치료 계획을 설명해 준다. 


 심근경색이 왔었는데 치명적으로 오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폐렴이 동반되어 있어 기관내삽입관은 당분간 유지해야 하겠다. 아버지를 중환자실로 옮기겠다. 위급 상황이 오늘 밤 발생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아버지의 이동 침대를 따라 중환자실로 올라간다.


 중환자실은 나에게 친숙한 장소이다. 하루에도 거의 한두 번씩 둘러 보는 장소다. 물론 아버지가 입원한 중환자실은 우리과 병실이 아니고 내과계 중환자실이다. 입원된 아버지는 인간이라기 보다  하나의 생물체처럼 보인다.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못한다. 두려운 듯 쳐다보고 있는 눈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지금 나에게 가장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가장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가장 아쉽게 생각하고 계신 것은 무엇일까? 의문을 가져 본다.


 나에게 불편한 점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버지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과 소통하는데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것이 언어다. 생각하는 것, 불편 한 것, 좋아 하는 것. 모든 것이 언어를 통해 전달된다. 신체적 접촉도 일부 역할을 하지만 그 기능은 극 소수다. 아버지는 엄격했다.


 자식인 우리들과는 그렇게 곰살스런 대화를 하지 않았다. 대화를 한다해도 종류가 단순했고 길이도 짧았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은 대화를 가장 필요로 하신다. 대화를 한다는 것이 축복받은 일인데 지금까지 그것을 관과하고 살아오셨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사용할 기저귀와 휴지들을 사기 위하여 중환자실을 나온다. 이제 내 어릴 적 사용하던 기저귀를 아버지 한테 착용시키려고 하고 있다. 세대가 한 바퀴 돈 것이다. 아버지는 삶이란 원을 거의 한 바퀴 돌아 다시 출발점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그리고는 한참동안 정지된 상태에 머물다가 다시 쇠퇴하여 출발점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도 얼마 후면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기저귀를 차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이란 비슷하기 때문에 가장 비슷한 삶을 살 것이다. 불편하게 누워계신 아버지를 돌보아야 하겠다. 지금 아버지의 모습이 내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똑같다. 태어날 때 똑같이 발가벗고 죽을 때 똑같이 발가벗고 떠난다. 태어나서 배설물을 기저귀에 싸듯이 늙어 죽기 전에도 배설물을 기저귀에 싼다. 삶이란 둥근 원이다. 출발했다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 오는 것이다. 지구가 둥글 듯이 삶도 둥근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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