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유산 / 박태칠

희라킴 2017. 2. 28. 19:32



유산(遺産) 


박 태 칠


   ‘증여세 3,500억대 납부.’

 

   거실을 청소하던 중 널브러진 신문지들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기사의 한 제목이다. 그 아래로는 ‘사상 최대 규모’, ‘주식으로 현물 납부’ 같은 소제목도 보였다. 다른 생물체의 삶처럼 동떨어진 내용이기에 그냥 신문지들을 모아 묶었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얼마를 증여받으면 세금이 3,500억 원이나 될까하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청소를 계속하면서도 뭔가 불공평한 느낌이 자꾸 들었다. 수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팔십 만 원은 받아야 돼요, 그 이하로는 절대로 안 돼요.”

 

   병환으로 기력이 쇠약했던 아버지가 전화기에 대고 평소와는 다르게 강경한 어조로 고함을 지르고 계셨다. 아내와 나는 영문을 몰라 서로를 마주보며 아버지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중에 사연을 들어본즉 우리가 시골에서 살았던 그 집을 누군가 사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 집, 주인이 떠난 지 10년도 더 된 그 집은 아마도 폐가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건 시골에서도 낙엽처럼 이 골 저 골을 떠돌던 우리 가족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유하였던 집이었다. 그러나 내가 결혼 후 비록 셋방이지만 도시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난 뒤부터 그 집은 빈집이 되었다. 건물터도 남의 소유이고 건물이라야 고작 삼간 토담집을, 그것도 오래 방치한 집이니 그냥 주어버리자는 나의 의견과, 그래도 팔십 만 원은 받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의견은 장마철 비 내리듯 자주 대립하였다.

 

   내가 반대한 이유는 그곳에 계약이랍시고 가기가 싫었던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곳에는 아버지를 막일꾼 대하듯 했던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생들이 면소재지 근처에 몇 명은 살고 있을 것이고,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쓰러져 가는 폐가를 팔아 단돈 팔십 만 원을 마련하려는 궁핍한 ‘엿장수 박 씨 아들’을 기억하는 이웃들을 생각하니 나는 도저히 아버지 의견을 따를 수 없었다.

 

   차라리 돈이 필요하면 제가 드릴 테니 어디에 쓰실 건지 말씀을 하라며 다그치는 불손한 나의 태도에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 잊을 만하면 또 집이야기를 하시곤 하셨다. 수차례의 이야기를 듣다 못한 아내의 권유도 있고 해서 결국 나는 계약을 하러 가기로 했다.

 

   아버지의소원을 들어준다는 차원에서 가는 길이니, 저쪽에서 흥정하자는 대로 빨리 응하고 집값도 주는 대로 받아오리라 마음을 먹었다. 체류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매매 계약서를 대강 작성한 다음, 매입자 집을 파악한 후 일부러 어두운 밤에 시골을 향하였다.

 

   노란 중앙선에 의해 정확히 반이 쪼개진 아스팔트길을 따라 나의 차는 조용하게 달렸다. 하지만 마음은 복잡하였다. 친정으로 돌아가는 소박맞은 신부처럼. 이윽고 살던 곳의 면소재지 신작로에 도달하니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 또렷이 되살아났다.

 

   농촌이라지만 타향이었고, 송곳 하나 세울 땅이 없었던 아버지로서는 호구지책을 위해 그 길을 수없이 드나드셨다. 추수기에는 남의 경운기에 높다랗게 쌓아올린 볏단 뒤에 검불처럼 매달려서 돌아오곤 하셨다. 들판에 누렇게 익은 벼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저녁마다 이웃들은 일손을 구하러 우리 집을 찾아왔고, 아버지는 매일같이 경운기를 바꾸어 타고 돌아오셨다.

 

   농한기에도 쉴 수는 없었다. 조그만 손수레에 엿을 한 판 가득 담아 가위질을 하며 정처 없이 길을 떠나면, 석양이 벌건 저녁에 폐지와 고물을 가득 싣고 힘겹게 돌아오시던 바로 그 길, 친구들과 가다가 아버지를 보면 내가 슬며시 숨던 바로 그 길에 내가 돌아온 것이었다. 희망이라곤 실오라기 한줄 보이질 않던 조반석죽(朝飯夕粥)의 땅, 그나마 어찌어찌하여 농사일을 해주고 얻은 그 집이 우리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밤이 좀 늦어 만난 매입자는 원치 않게도 유년 시절의 나를 좀 아는 듯이 보이는 사람이었다. 약간의 예의를 차려 그동안의 안부를 물은 그는, 그 집을 허물고 다른 용도로 쓰려고 한다면서 사실 팔십 만 원은 좀 비싸지 않느냐고 하면서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폈다.

 

   “팔십 만 원 다 주세요. 십 원도 못 뺍니다.”

 

   나는 강한 어조로 못을 박았고, 그는 좀 머뭇거리다가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돈을 넘겨주었다. 출발할 때의 부끄러웠던 마음과는 달리 나는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돈 봉투를 아버지께 넘겨 드렸다. 아버지는 내 안색을 살피다가 수고했다 하시며, 돈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기셨다. 액수가 틀림이 없음을 확인한 후 봉투에 돈을 다시 넣고 가만히 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잠시 후 아버지는 며늘아기를 불러달라고 하셨다. 아내가 방에 들어오자 아버지는 우리 앞에 돈봉투를 다시 내놓으셨다.

 

   “부모라고 해도 물려준 것 하나 없이 얹혀살아 미안했는데 이거라도 받아라. 시아비가 돼서 줄 것이 이것뿐이라 부끄럽구나.”

 

   우리는 당황하여 몇 번을 사양하다가 결국 그 돈을 받았다. 그 돈 팔십 만원, 그것이 그런 용도였을 줄이야! 얼마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니 결국 그 돈은 아버지의 유산이 되고 말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나는 청소를 중단하고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만춘(晩春)이 지나가는 아파트 화단에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는 백목련과 파랗게 자라는 잡초들이 보인다. 씨 떨어진 곳 아무 데서나 뿌리내리고 억척으로 살다가 꽃피우고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새삼 숭고하게 보인다. 찬바람을 원망 않고 햇볕 한줌 바라지 않는 그들이 묵묵히 나를 본다. 사랑의 유산 팔십 만 원, 그것조차도 과분함을 말하는 듯하다.

 

   문득 멀리서 낯익은 형상이 천천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폐지가 가득 실린 손수레를 노인이 힘없는 걸음으로 밀며 가고 있었다. 나는 신문지 뭉치를 들고 후닥닥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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