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가시 / 우명식

희라킴 2017. 2. 22. 20:23





가시


우명식


  오랜만에 고등어구이를 상에 올렸다. 몇 번 살을 발라 먹었는데 그예 가시가 목에 걸렸다. 물을 마셔보고 상추쌈도 싸서 먹어봤지만 나올 기미가 없다. 거울 앞에서 목젖이 보이도록 용을 써도 가시는 흔적이 없다. 빼내려고 애쓸수록 가시는 더 깊이 박혀 목을 찔렀다.


 어릴 때 가시에 걸려 고생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마루 끝에 나를 눕히고 핀셋으로 단박에 가시를 뽑아냈다. 그때 햇살에 비치던 어머니 모습은 개선장군 같았다. 이제는 가시를 빼줄 어머니가 없다는 게 목 한쪽에 자리한 가시보다 더 아팠다.


 셋째 오빠가 사업이 망해 빚쟁이에게 쫓겨 다니게 되었다. 연락조차 없는 오빠 걱정으로 애태우다가 어머니의 발병은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자랑이자 희망이었던 오빠가 하루아침에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가슴에는 폐암이라는 가시가 폐부 깊숙이 박혔다. 슬픔이 깊으면 가시가 되는 걸까. 무수한 가시는 밤송이처럼 어머니를 밤낮으로 찔러댔다.


 오지 않는 오빠를 생각하면서 날마다 속을 끓이는 어머니가 싫었다. 옆에서 보살피는 공은 고사하고 증세는 점차 악화하였다. 나는 독기 품은 가시가 되어 무시로 어머니를 긁어댔다. 어머니의 폐는 붉게 덧났다. 어차피 뺄 수 없는 가시라면 품고 가면 되는 것을. 서로의 상처 보듬어 가면 상처는 아무는 동안 추억이 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머리를 감겨달라고 부탁하던 그 날 밤. 생의 상처 홀연히 내려놓고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났다. 옆에만 있어도 좋아하던 당신을 몹시 외롭게 한 죄. 어찌 다 용서받을 수 있을까.


 홀로 먹는 고등어 속에서 당신을 만난다. ‘당신의 생애를 찌르던 가시, 당신이 떠난 후 그 가시 나를 찌른다.’ 시인의 말이 내게로 날아와 가슴을 헤집는다.


 가시 속에는 못 잊을 그리운 사람 하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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