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토지문학상]
울지 않는 반딧불이
박일천
시골집 대문 안에 들어서자 텃밭에서 푸성귀를 솎아내던 시어머니께서 흙 묻은 손을 털고 일어서며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신다. 가끔 다녀가는 자식들이 적적함을 밀어내는 말동무이리라. 이것저것 물어보며 세상 밖 이야기에 귀 기울이신다. 밭에서 솎은 어린 배추로 얼갈이김치를 담고 챙겨간 찬거리로 저녁밥을 지어 먹었다. 귀뚜라미 소리에 이끌려 그이와 함께 개울가로 나갔다.
동구 밖을 지나 갈대가 사운거리는 둑길을 따라 걸었다. 동산 너머로 열나흘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벼들이 그득 찬 들녘은 달빛에 젖어 희붐하다. 내 키보다 큰 갈대들은 냇둑 위에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다. 갈대밭 언저리로 작은 불빛 하나가 깜박거리다 사라진다. 잘못 보았을까. 내 눈을 의심하기도 전에 또 다른 등불이 환하게 내 곁으로 다가온다. ‘와아, 반딧불이다.’ 파리한 불빛이 보일 듯 말 듯 여기저기 떠다닌다. 손으로 잡으려 발돋움해도 어느새 저만치 날아간다.
내 초록의 날에 잡으려면 날아가는 꿈처럼 반딧불이는 자꾸만 멀어져 갔다. 밤하늘에 등불을 켜고 날기 위하여, 반딧불이는 물속이나 땅 밑에서 일 년 가까이 애벌레로 살아간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반딧불이 애벌레처럼 움츠리며 지낸 적이 있다. 취직이 되지 않아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꿈은 구겨진 일기장에서 졸고 있었다. 갈 곳이 없어 저녁나절에나 문틈으로 햇살 한 자락 들이밀던 단칸방에서 시간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빛의 건너편에서 누런 벽지에 그려진 문살 그림자를 세며 하루를 건너갔다. 피 끓는 젊음이 매일 일 없이 지낸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행이었다. 그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부엌에서 밥을 지으시며
“저 하나 보고 애면글면 갈쳤구만. 허구 헌 날 방구석 신세라니…….”
방문 틈으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였다. 어렵사리 가르친 딸이 밥벌이도 못 하고 빈둥거릴 때 당신 속은 새까맣게 숯덩이가 되었으리라.
날마다 놀기도 민망하여 용돈이라도 벌려고 수예점 문을 두드려 수틀 속에 명주실로 동양자수를 놓아 갖다 주면, 손에 들어오는 것은 라면값 정도였다. 보기에 딱했던지 이웃집 아저씨가 일자리를 소개해 줘서 시오리를 걸어서 작은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장이라고 한 사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사정이 좋지 않으니 다음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듣고 나오는 내 등 뒤엔 서글픔이 매달렸다. 하릴없이 골목을 왔다 갔다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동네 아줌마들이 아이들을 하나둘 보내줘 과외를 하며 백수 시절을 견뎌냈다.
요즈음 청년들도 일자리가 없어 아르바이트하고 도서관에서 밤낮없이 취업 준비하느라, 가로등 불빛을 세며 그림자처럼 살아간다고 한다. 얼마 전 지인 아들도 몇 년째 임용고시에 도전했는데, 또 떨어졌다는 말을 전하며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낙담하는 그 모습에 오래전 방구석에서 뒤척이던 내가 떠올라 콧날이 시큰거렸다. 푸릇한 날에 햇빛 속에서 엽록소를 생성하지 못하고, 응달에서 누렇게 시들어가는 나뭇잎처럼. 청춘의 뒤안길에서 눅눅한 어둠 속을 느릿느릿 기어가는 나는 한 마리 애벌레에 불과했다.
검은 밤의 한가운데를 삼 년을 서성거리다가 드디어 조각방에서 벗어났다. 기다리던 발령을 받고 교단에 서게 되었다. 쉬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열정을 다해 가르쳤다. 집에 가면 소꼴을 베느라 숙제할 시간이 없는 아이들이 교실에 남으면 같이 공부했다. 산 그림자가 유리창에 살금살금 걸어올 때까지 산골 아이들과 환경도 꾸미고 풍금 치며 노래도 불렀다. 간간이 간식거리를 챙겨주면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이던 순박한 산골 애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세상의 그늘에서 애벌레처럼 웅크리지 않았다면, 아이들을 향한 그 많은 정이 샘처럼 솟아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반딧불이가 하늘에 오르는 날을 기다리며 암흑 속에서 등불을 준비하듯이. 오랜 기다림은 내 가슴에 끝없는 도전과 열정을 심어 주었다. 시간의 나이테가 켜켜이 쌓여가도 무언가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움을 찾아 떠난다. 덧없이 흘러간 초록의 날을 되찾아 오려는 듯이.
개울가로 불빛 하나 호로록 날아간다. 갈대밭 곳곳에 파리한 불빛이 도깨비불처럼 나타났다가 가뭇없이 사라진다. 반딧불이가 등불을 어디에 매달고 다닐까. 어릴 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나 잡아 봐라.’ 약을 올리듯 불빛은 멀어져갔다. 가까스로 한 마리를 손안에 넣었다. 반딧불이를 조심스레 땅 위에 내려놓고 스마트폰 불빛에 비쳐 보았다. 죽은 척하고 검은색 벌레는 가만히 있었다. 뒤집어서 불빛이 어디서 나오는지 살펴보았다. 머리에서 빛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검붉은 배아래 쪽에 담황색 야광등을 달고 있다. 몸길이는 새끼손가락 한마디쯤 될까. 그 작은 몸에 발광체를 달고 날아올라 밤하늘에 빛을 뿌리다니 경이로웠다. 반딧불이를 살며시 집어 날려 보냈다. 푸르스름한 빛을 깜박이며 날아가다 고맙다는 듯, 급히 선회하여 머리 위에서 빙빙 돌다 사라졌다.
슬픈 발광發光이다. 반딧불이는 오랫동안 암흑 속에 머물다가 우화하여 불을 밝히고 날지만, 열흘 뒤면 풀숲 어딘가에 쓰러져 생의 종말을 맞으리라. 반딧불이는 다른 풀벌레처럼 울지 않는다. 울음이 아니라 등불을 켜기 위하여 이슬만 먹고 몸을 가볍게 한다. 자신을 비워 어둠을 뚫고 하늘을 비행한다. 풀벌레들이 지상에서 시끄럽게 울 때 그는 조용히 세상을 빛으로 밝힌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반딧불이의 초월적 힘이다.
흙탕물이 굽이치는 동안 말갛게 가라앉듯이, 이끼 낀 마음도 흐르는 세월에 닦여져 반딧불이가 먹는 이슬처럼 투명해질 수는 없을까. 비워진 가슴에 맑은 샘물이 고이면 사람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으리. 반딧불이가 여느 풀벌레처럼 울지 않고 생의 마지막을 빛으로 밝히듯이, 내 삶의 끝자락도 환하게 사랑의 등불을 켜다가 스러졌으면.
반딧불이가 너울너울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떠간다. 빛의 경계 너머에서 움츠리던 내 젊은 날의 꿈이, 깊어가는 내생의 가을에 별이 되어 날아간다.
『토지』문학제 수필대상 심사평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이론 습득을 거쳐야 한다. 폭넓게 읽고, 깊이 사유하고, 끊임없이 습작하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화할 때보다 더욱 세밀하게 의미 전달에 마음을 써야하고 가장 적절한 어휘 선택이나 문법 사용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고운말 바른말 쓰기는 물론 문장의 정확성, 명료성, 논리성 그리고 통일성이 요구 된다.
글은, 특히 수필은 문장이 생명이다. 물 흐르듯 막힘없이 술술 잘 읽혀져야 한다. 또한 자신의 신변과 심정을 솔직히 토로하는 글이고 보면 작위적이 아닌, 가슴으로 써야 할 것이다. 비록 사소하고 평범한 소재일지라도 철학을 동반한 지식과 감흥, 지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융합이 있다면 독자들에게 더 큰 공감과 감동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은 작가가 작품 속에 함축되어 있다. 픽션인 시나 소설과는 달리 수필 한 편 읽으면 문장력에서 작가의 인격과 사상, 철학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에 오른 작품은 24명이 쓴 72편이었다. 대체로 자연관찰, 생활경험, 사회현상에 대한 느낌 등을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와 빛깔로 형상화하였다.
오랜 시간 동안 거듭 읽은 결과,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 더러 있었다. 문장이 간결하면서 품격이 넘치는 글인가 싶었는데, 지나친 수식어나 미사여구로 인하여 오히려 군더더기가 된 글이 있었다. 주제도 소재도 참신하지만 서두와 결미가 대응관계를 갖지 못한 글도 있었다. 서두는 거창한데 결미가 가볍게 끝나거나, 서두의 무게에 비해 결미가 너무 거창하면 균형이 깨어지게 마련인 까닭이다.
심사위원들이 고심한 끝에 최종적으로 선한 작품은 ‘울지 않는 반딧불이’이다.
글쓴이는 어느 날, 남편과 함께 혼자 계시는 시어머니를 뵈러 시골집을 찾는다. 단란한 분위기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뒤, 귀뚜라미 소리에 이끌려 개울가로 산책 나간다. ‘갈대가 사운거리는 둑길’, ‘동산 너머로 얼굴을 내미는 달’, 벼들이 그득 찬 들녘’, ‘내 키보다 큰 갈대’…. 이 모두가 산책길에서 만나는 정겨운 풍경들이다. 글쓴이도, 글을 읽는 이도 이 대목에서 마음이 유순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깜박거리는 어떤 작은 불빛 하나에 그만 마음을 깡그리 빼앗기고 만다. 그건 맑은 공기가 있는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반딧불이다.
젊은 날, 학교를 졸업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 멋지게 꿈을 펼쳐보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던 일들이 슬며시 떠오른다. 그렇게 삼년세월을 보낸 뒤, 저녁나절에나 문틈으로 햇살 한 자락 들이밀던 단칸방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지금은 교사가 되어 지난날 못했던 열정을 아이들에게 쏟는다. 그러면서 세상의 그늘에서 웅크리던 지난날들이, 물속이나 땅 밑에서 일 년 가까이 애벌레로 지내다 겨우 열흘 살다 스러지는 반딧불이를 닮았다는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먹먹해 진다.
반딧불이는 다른 풀벌레처럼 울지 않는다고 한다. 단지 등불을 켜기 위하여 이슬만 먹으며 몸을 가볍게 한다는 것이다. 문득, 반딧불이가 여느 풀벌레처럼 울지 않고 생의 마지막을 빛이 되어 밝히듯이 글쓴이도 자신의 삶 끝자락을 누군가에게 사랑의 등불을 켜다가 스러지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수필 ‘울지 않는 반딧불이’는 비록 관념적인 문장이 두어 곳 있으나 전면에 흐르는 유려한 문장솜씨와 독특한 비유법이 돋보이는 따뜻한 작품이다.
글쓴이는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조용조용 이야기하는가 하면 소재의 탐색을 위해서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음을 느낄 수 있다.
<심사위원 : 강현순 우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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