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수필

[제8회 목포문학상 당선작] 삼학도는 섬이다 / 김수형

희라킴 2016. 10. 14. 19:37


[제8회 목포문학상 당선작]


삼학도는 섬이다 


                                                                                                                                   김수형


 입추가 지났지만 여름 숲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폭양 아래 어느 곳이나 불 화덕이다. 그나마 내가 사는 곳에 바다가 있음을 행운이라 생각하며 삼학도로 산책을 가기로 했다.


 지난 봄 제주에서 친구가 왔을 때 그의 친정집이 삼학우체국 근처였다. 친구를 만나러가던 길에는 내가 살았던 유년의 요람이 있었지만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고 있었다. 삼학도의 모습도 많이 변했으리라,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것이 벌써 몇 달 전.


 기대와 염려가 뒤섞인 마음으로 차를 달려 도착하기까지 삼십여 분.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공원 입구의 가로등들이 하나 둘씩 불빛을 돋우고 있었다.


 오렌지 불빛에 감싸인 삼학도는 많이 낯설었다. 목포 앞바다가 끝나고 영산강이 시작되는 곳에 단아한 봉우리 세 개를 하늘을 향해 꽃처럼 앉혀놓았던 섬. 내 기억 속에서 삼학도는 파도 위에 피었다 지는 태양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세월을 낚던 강태공들과 산 너머로 하얀 학이 넘실대던 곳이다.


 삼학도에서 사랑을 고백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말이 생겨난 것은 세 바위의 서글픈 전설 때문이다. 연인을 그리워하다 숨진 하얀 혼이 솟아나 만들어졌다는 전설의 바위는 물결치는 바다에 파도가 깃들어 있는 듯 지금도 고요히 잠들어 있다. 그렇다. 삼학도는 섬이다. 아니, 섬이었다.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삼학도가 내게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으로 생각되는 것은 동네에 깔리던 바람의 냄새 때문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늘 냄새가 풍겼다. 화물선 앞에는 통나무들이 나른한 시간의 냄새를 껴안고 쌓여있었다. 그 뒤의 초록빛 그물에는 쥐포들이 야릇한 냄새를 풍기며 말라가고 있었다. 인접한 항구에서는 붉은 노을 속에 정박한 선원들의 노곤한 흥타령이 여름날 수박이 익어 터지듯 왁자하고 끈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언제나 소란스럽고 비릿한 생명들이 진열된 그 거리를 걸어야 했다. 오후의 해가 선창 바닥에 길게 늘어지고 갯바람에 뒤틀린 나무판자에 다수굿이 담겨 출하를 기다리다 파투난 것들. 그 날것들의 냄새가 내 등을 타고 넘어올 때마다 치밀던 욕지기는 얼마나 참기 힘들던지. 예전처럼 삼학도의 해넘이를 보며 걷고 있노라니 생선의 지느러미처럼 눅눅하고 끈적거렸던 그 시절의 길들이 그리워진다.


 여기에 내가 기억하는 삼학도의 슬픔이 있다. 그 시절에도 삼학도는 이미 섬이 아니었다. 한반도의 서남단 무안반도 끝에 위치한 이 섬의 사연은 참으로 기구해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사유지로 몰래 매입된 수난에 이어 고향사람들에 의해 산허리가 잘리고 묻혔다. 우리의 슬픈 역사를 보는 것만 같은 삼학도는 목표 사람들에게 징하게 아픈 이름이다. 지금도 반복해서 부르는 <목포의 눈물처럼> 아련한 것이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그렇게 이난영의 목소리에 실려 유명해진 삼학도는 목포 앞바다에 나란히 서있던 3개의 섬이었다. 만선의 꿈을 안고 돌아서는 낭군의 뒷모습과 상인들의 활기로 넘치던 이 섬은 개발이라는 슬로건 아래 바다를 매립하면서 이름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렇게 해서 삼학도는 육지가 되었고 섬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완전히 망가졌다. 풍광이 아름답고 물고기들이 많아 전국에서 몰려든 강태공들로 북적거렸던 대삼학도엔 제분공장의 거대한 저장고와 조선소가 들어섰다. 뒤이어 영산강을 막아 하구언이 축조됐다. 물길이 막히게 되자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관을 이루던 돌고래들이 검은 등을 보이며 사라졌다. 삼학도의 푸른 하늘을 수놓던 하얀 학들도 모두 떠나갔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욕심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번영이 아니라 끝없는 상실감과 회한뿐이었다.


 삼학도를 마주보는 곳에서 중학교를 다니셨고 낚시 광이었던 내 아버지는 그 회한이 더하셨다. 당시에 공사를 주도하던 관공서의 공무원이셨기 때문이다. 지금도 당신의 아픈 속내를 털어내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전에 생생하다.

“저기 세 개가 있던 봉우리에 학이 날고 배가 지나갔어. 다니던 학교의 운동장에는 바닷물이 밀려들어왔다가 스멀스멀 빠져나가곤 했지. 하굣길에 돌고래 때가 삼학도 저 멀리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보였고, 물이 빠진 갯벌엔 온갖 조개들이 가득했지.”


 몇 년 전부터 삼학도 복원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공장들이 이전하고 석탄부두도 신항으로 옮겨갔다. 그러면서 반세기 만에 내가 걸어 다녔던 철길도 함께 사라졌다. 복원화 사업은 분명히 기쁜 일이었지만, 나는 삼학도의 풍광을 되돌린다는 복원이 또 다른 훼손을 불러오지 않을까 한편으론 염려스러웠다.


 공원의 중앙에 삼학도의 세 봉우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곳곳에 수로가 만들어져 푸른 바닷물이 산책로를 휘감고 돌아가고 있었다. 수로를 보고 있으려니 어린 날 지겹도록 걷던 해안도로가 떠올랐다. 당시에 너무 어렸던 나는 섬 너머에 무엇이 있었는지 잘 몰랐다. 그저 소란스럽고 지저분한 공간으로 기억될 뿐이다. 목포 앞바다에 반짝이던 윤슬과 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늘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등굣길에 보던 어선들은 바닥에 펄떡거리는 생선들을 쏟아 붓고, 아침햇살에 빛나던 물고기 비늘들 위로는 허기진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낡은 어선들이 열심히 고기를 퍼 나르던 위판장의 오래된 삶의 모습은 단순해 보였지만 활기가 넘쳤다. 그 소란스럽던 삶들은 이제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삶의 의미들이 불현 듯 그립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그때 그곳이 아니다. 추억 속의 그리움은 늘 오늘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살며 현재와는 끝내 공존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추억은 더 아름다운 것일까?


 복원 중인 공원은 어디에도 내가 그리던 삼학도는 없었다.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바다를 복원했다던 모습은 개울의 수준을 넘지 못한 작은 수로였다. 애초부터 바다를 다시 만드는 일이 인간에게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섬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 매립하고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바다를 매립한 사람들은 다시 이런 날이 올 것을 알았을까. 그들이 잘라내고 묻은 것은 그저 삼학도의 산과 바다만이 아니었다.


 삼학도는 저마다의 가슴에 수놓아진 그 어떤 것이었다. 사람들의 고독한 마음속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가족의 얼굴로, 고향의 모습으로 자리했을 섬이었지만, 가난하던 시절 바다는 밥이 되는 땅보다도 하찮아 보였을 것이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었고, 그런 무지의 세월 속에서 삼학도의 비극은 시작되었으리라.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삶이 윤택해진 오늘날에도 편리함을 앞세워 섬들은 자꾸만 연륙이 되어간다. 섬을 모조리 없애 버리기라도 할 심산인가보다. 섬이 육지로 바뀌면 그 정체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음을 불문가지다. 섬의 고유한 정체성은 현대문명 앞에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섬만이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과 이야기가 사라지면 사람들 마음 한 쪽에 남아 있는 아련한 정서마저 사라질까봐 두렵다. 회복 불능한 대상이 자연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인 것 같아 더욱 두렵다. 섬 기슭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거대한 구멍을 뚫고 바다의 물길을 막아버리면 그 폐해는 갯벌에만 미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더 크게 돌아온다. 기댈 곳을 잃은 사람들이 자꾸만 망가져서 험악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한번 잃은 것을 다시 되돌리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지금 삼학도는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마다 털어내지 못한 마음의 편린들과 상처까지 보듬어주던 우리의 섬 삼학도. 그 삼학도는 아직 온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 한쪽이 통증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제8회 목포문학상』 수필 부문 심사평


 대상 작품은 모두 15편이었다. 이들 작품은 주최측이 제시한 목포권의 자연, 역사, 문화, 인물, 해양 등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귀한 소재들이었다.

 하지만 소재가 좋다고 바로 작품이 되는 게 아니기에 소재에의 동화나 자기화, 나아가 의미화나 주제화가 자연스럽게 형상화가 되었느냐에 기준을 두어 재심을 했다.

하여,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삼학도는 섬이다>, <두개의 담>, <젖꼭지의 날>, <내 마음의 별지>, <서산동>, <고향지킴이> 등 6편이었다.

 이들은 문장이나 문맥, 구성이 자연스러워 모두 입상권에 들 만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1편만을 선해야 하기 때문에 ‘형상화의 완벽성’ 그리고 ‘주제 전달의 감동성’에 잣대를 대어 최종 <삼학도는 섬이다>를 당선작으로 선했다.

축하한다. 입상권에 등 5편과 그 작가들에게도 문운이 늘 같이 하기를 빈다.

 

본심위원 : 오창익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