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스크랩] 별 헤는 밤? / 윤동주

희라킴 2016. 4. 18. 18:49

 

 

 

 

 

별 헤는 밤​

윤 동 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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