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스크랩] 꼭지 / 조선의

희라킴 2016. 4. 18. 18:47

 

감 과일에 피해를 주는 감꼭지나방

 

 

 

 

꼭지

 

           조선의


 


 

꽃 지더니

가지들은 숲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어요

돋아 오르는 유선 따라 젖무덤들이 봉긋봉긋합니다

여름이 큰 감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매미들은 고요를 정복한 것 같습니다


끙끙거리며 담장을 기어오른 박주가리가

툭 터지며

신선한 우주 하나를 쏟아냅니다


붙어 지내는 세월 동안, 꼭지는 높고 쓸쓸한 웃음

이었을까요

젖꼭지

감꼭지


아까징끼 바른 엄마의 젖꼭지를 보고 부르르 떠는

나의 낯빛을 보셨죠

꼭지에서 떼어내려는 순간, 생이 뭔지 알 듯했어요

마구 떨리고 두려워서

한 번도 울어보지 않은 뼈 울음으로

입술에서 멀어지는 꼭지와 교신할 때

저 감꽃이 왜 이렇게 슬퍼 보였는지, 미칠 것 같았

어요

톡 톡 떨어진다는 것은 혼절한다는 거예요

미치지 않고는 웃을 수 없듯이

목숨의 중심을 붙잡거나 밀어내는 꼭지


한 사람이 그리울 때는

젖꼭지

감꼭지


꼭지만 봐도 울컥합니다





-시집『당신, 반칙이야』에서-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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