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스크랩] 미투리 한 켤레, 사랑 두 짝 / 박시윤

희라킴 2016. 3. 20. 13:46

 

 

 

미투리 한 켤레, 사랑 두 짝

 

                                                                                            박시윤

 

 

 현관에 벗어놓은 남편의 해진 신발이 유독 눈에 띈다. 발이 빠져나간 신발 속은 어둠만 남은 듯하다. 하루의 고단함이 쾨쾨한 냄새로 남아 무거운 체증처럼 뒹굴고 있다. 한쪽 발을 넣어보니 내가 남편에게 미치지 못하는 공간이 새삼 넓게만 느껴진다. 나머지 한쪽 발도 넣었다. 땅을 짚고 굳건히 서 있는 내 몸은 늘 남편 앞에서만은 목소리 크고, 당당한 아내였다.

 

 남편의 신발은 다른 식구들의 신발에 비해 유독 낡았다. 현관에 널브러진 신발들을 정리할 때면 남편의 신발을 늘 구석이거나 가장 낮은 위치로 옮겨 놓았다. 깨끗하고 앙증맞은 아이들의 신발과 굽이 있는 나의 구두보다 한 번도 맨 위이거나 중간이었던 적이 없었다.

 

 안동대박물관에 다녀온 후 며칠째 생각이 신발에 머무른다. 지극히 단순한 모양새의 미투리 한 켤레 때문이다.

 

 안동의 고성 이씨 분묘 이장(移葬) 작업에서 출토된 `원이 엄마의 마지막 편지`와 나란히 있었던 미투리라 한다. 서른한 살의 나이에 세상을 요절한 남편에 대한 망부의 애끓는 사연과 병(病)중인 남편의 쾌유를 빌며 삼 줄기와 머리카락을 한데 엮어 만든 미투리였다. 원이 엄마의 사연은 `내셔널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사랑의 미투리`라는 이름으로 특집 게재될 만큼 세계적인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단순한 미투리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한국의 숭고한 사랑을 세계에 알렸던 것이다.

 

 망부는 왜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엮었던 것일까.

 

 신발은 보드라운 발을 감싼다. 그리고 자신의 보드라운 얼굴을 바닥에 내어 준다. 흙을 덮어쓰고, 각진 모래에 상처도 난다. 온몸의 무게를 받고도 묵묵히 견딘다. 그러면서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오로지 발을 보호한다. 때로는 빗물에서, 때로는 눈밭에서 뒹군다. 뒹굴다 돌아온 툇돌은 싸늘히 그를 맞이한다. 밤새 싸늘한 잠을 자고도, 다음 날이면 또 원래의 모습으로 길을 나선다. 요절한 남편은 원이 엄마에게 미투리와도 같았을 것이다. 땅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낮게 엎드린 것이 미투리였다. 그러면서 발을 보호하는 미투리에게 망부는 몸의 가장 윗부분에 자리한 머리카락을 엮음으로써 존경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백여 년 전의 이야기다. 편지를 감상하는 내내 미투리의 엮인 부분 부분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 떠나는 남편에게 미투리를 자신인 양 머리맡에 넣어 주었으리라.

 

 신발장을 열어젖힌다. 식구 다섯에 꽤 많은 신발이 있다. 돌돌 말린 신문들이 신발의 허한 속을 채우고 있다. 언제 적 것인지 아예 먼지가 보얗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아쉬운 마음에 끝내 버리지 못한 신발들도 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신발이 있다. 남편의 지극히 단순한 작업화다.

 

 현장 일에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작업화는 유난히 낡았다. 모양이나 형체를 고정할 가치도 없어 신문하나 말아 넣지 않은, 속이 텅 빈 신발이다. 비어있어도 한 번도 채워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남편이다. 가족들을 위해 세상에 몸을 바삐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그저 묵묵한 사람이었다. 가족을 감싸고 가족을 위해 기꺼이 신발이 되고 있는 남편이 원이 엄마의 미투리를 유심히 보고 있었던 걸 기억한다.

 

 아이와 함께 신발가게에 간다. 사이즈를 묻는 주인 앞에서 얼굴이 붉어진다. 여태껏 남편의 발 사이즈도 모른다. 신어보고 엄지손가락 세 개 정도의 간격을 둔다. 마음은 벌써 남편의 귓전에 맴돌고 있지만 꾹꾹 눌러 입을 봉한다. 현관 중간에 남편의 새 신발을 정리해 둔다. 아이가 달려와 먼저 신고는 온 집을 돌아다닌다. 커다란 남편의 신발이 아이의 자그마한 몸과 보드라운 웃음을 감싸고 있다.

 

 오늘은 나도 원이 엄마가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엮듯 마음 깊숙이 남편의 미투리 한 켤레에 몸을 맡긴다. 싸늘한 신발 속이 내 체온으로 후끈 덥혀지는 중이다.

 

 

- 경북 매일신문/2014.8.01 -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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