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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공광규 시인의 [나의 시 창작 방법]

희라킴 2016. 3. 16. 07:19

 

공광규 시인의 [나의 시 창작 방법]

 

 

열두 편의 시와 일곱 가지 이야기

 

시인 공광규(2009년 제4회 윤동주상 문학대상 수상)

 

 

 시는 인류가 남긴 최고의 문화예술입니다. 공자는 역대의 시를 모은 <시경>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중국의 옛 사람 원매는 시를 읽으면 인생이 아름다워진다고 하였습니다.

 

 시는 뭐다! 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시를 쓰는 특별한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러 시인이 시를 써오며 공감하고 동의해온 몇 가지 공통점과 시인 개인이 오랫동안 시를 써오면서 굳어진 습관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제 시집 <<소주병>>(실천문학사, 2004)과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를 내면서 정리된 제 개인의 시 창작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경험을 옮긴다.

 

 

 저의 시 쓰기 시작은 경험을 공책에 옮기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상상력은 경험에서 발아합니다. 경험은 직접 몸으로 겪은 사건이나 감정은 물론 독서와 대화,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해당합니다. 시인이 자기 경험을 시로 옮겨 놓으면, 독자는 그것을 읽고 시인과 경험을 연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정서적으로 감응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대부분 초보자들은 시를 자기 경험을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높고 고고한 곳에 시의 제재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죠. 자기 경험을 반영하고 확장한 개성 있는 시를 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당연히 생동감도 없습니다.

 

 

 제가 직접 술을 마시는 경험 중에 창작동기가 발아하여 시를 창작한 구체적인 사례가 「소주병」입니다. 이 시는 대천해수욕장 포장마차에서 조개구이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다가 착상한 것입니다.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소주병」 전문

 

 

 계속 따라주기만 하고 버려지는 소주병을 아버지의 삶에 비유한 것입니다. 소주는 국민의 술이자 민중의 술입니다. 또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가족을 위해 돈을 더 벌고, 큰집에 살고, 자식들을 잘 키우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늙어서 버려지는 결핍과 실패의 산물입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려보십시오. 사회적 지위나 빈부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인생은 대부분 결핍의 인생입니다.

 

 아래 시는 남양주 수종사 여행 경험을 시로 쓴 것입니다. 수종사 여행 경험이 없었다면 이 시를 쓰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아래 시가 성공한 것은 여행정보를 거의 없애고 개인의 감정을 외물인 수종사 풍경에 의탁하였기 때문입니다.

 

 

양수강이 봄물을 퍼 올려

 

산이 파랗게 출렁일 때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아진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소리

 

 

-「수종사 풍경」 전문

 

 

둘째, 이야기를 꾸며낸다(경험에서 발아시킨 상상력으로 쓴다).

 

 

 그러나 시는 실제 경험을 옮기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실제 경험으로만 시를 쓴다면 일생동안 몇 편뿐이 쓰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은 막상 시를 쓰려면 더 이상 시를 쓸게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미 많은 시인들이 시를 다 써버린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는 시인이 자신의 경험에서 상상력을 발전시켜 이야기를 꾸며낼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는 실제 경험한 사건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발아시킨 상상력으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별국」은 몇 개의 어머니와 함께 했던 경험과 기억을 상상력으로 바느질하여 한 편의 시로 조직한 것입니다.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는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히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 「별국」 전문

 

 

 위 시는 2006년 수능 모의고사 지문으로 출제된 이후 참고서에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에는 몇 개의 심상이 나타납니다. 제 시의 기법적 계보는 정지용으로부터 시작합니다. 24살에 들어간 대학 1학년 문학개론 시간에 정지용의 시 「유리창」을 배우는 순간, 이렇게 시를 쓰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시인은 어휘의 창조자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어휘는 지금 영어를 세계 제일의 공용어로 만드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폴 존슨, <<창조자들>>, 황금가지, 2009. 100쪽 참조)

 

다음 시는 실제로 광화문에서 완행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경험한 것을 이야기로 만든 사례입니다. 상가의 간판 이름 가운데 몇 개를 제외하고는 이야기가 되게 직접 만든 것입니다.

 

 

오랜만에 광화문에서

 

일산 가는 완행버스를 탔다

 

 

넓고 빠른 길로

 

몇 군데 정거장을 거쳐 직행하는 버스를 보내고

 

완행버스를 탔다

 

 

이곳저곳 좁은 길을 거쳐

 

사람이 자주 타고 내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가며

 

남원추어탕집 앞도 지나고

 

파주옥 앞도 지나고

 

전주비빔밥집 앞도 지나고

 

캔들 양주집 간판과

 

희망맥주집 앞을 지났다

 

고등학교 앞에서는 탱글탱글한 학생들이

 

기분 좋게 담뿍 타는 걸 보고 잠깐 졸았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뉴욕제과를 지나서

 

파리양잠점 앞에서

 

천국부동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천국을 빼고는

 

이미 내가 다 여행 삼아 다녀본 곳이다

 

완행버스를 타고 가며

 

남원, 파주, 전주, 파리, 뉴욕을

 

다시 한 번 다녀온 것만 같다

 

고등학교도 다시 다녀보고

 

스캔들도 다시 일으켜보고

 

희망을 시원한 맥주처럼 마시고 온 것 같다

 

 

직행버스를 타고 갈 수 없는 곳을

 

느릿느릿한 완행버스로 다녀왔다.

 

 

- 「완행버스로 다녀왔다」 전문

 

 

셋째, 솔직하게 표현한다.

 

 

 시는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밖으로 꺼내 종이 위에 옮기는 작업입니다. 일기를 쓰면서 청소년기의 혼돈을 극복하고, 연애편지를 쓰면서 사랑하는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는 것처럼 시도 다른 글쓰기와 같이 자기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더구나 시는 감정을 진솔하게 토로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높이 사는 문장이어서 대중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학양식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감추고 위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을 대신하여 솔직히 드러내주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가 「폭설」입니다.

 

 

술집과 노래방을 거친

 

늦은 귀가길

 

 

나는 불경하게도

 

이웃집 여자가 보고 싶다

 

 

그래도 이런 나를

 

하느님은 사랑하시는지

 

 

내 발자국을 따라오시며

 

자꾸 자꾸 폭설로 지워 주신다.

 

 

- 「폭설」 전문

 

 

 이 시를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가지입니다. 어느 분은 제가 이웃집 여자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놀리기도 하고 혹시, 이웃집 남편이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묻는가 하면 어느 분은 아내와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하며 자기 부부관계가 안 좋은 것을 저에게 뒤집어씌우는가 하면 어느 분은 자신의 속마음을 썼다고 탄복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와 시인의 실제 삶에 대하여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 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살아가는 중년의 위선적 행실을 고백한 것입니다.

 

 

대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속을 더 크게 비워가고

 

오래된 느티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썩히며 텅텅 비워간다

 

혼자 남은 시골 흙집도 텅 비어 있다가

 

머지않아 쓰러질 것이다

 

 

도심에 사는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머리에 글자를 구겨 박으려고 애쓴다

 

살림집 평수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친구를 얻으려고 술집을 전전하고

 

거시기를 한 번 더 해보려고 정력식품을 찾는다

 

 

대나무를 느티나무를 시골집을 사랑한다는 내가

 

늘 생각하거나 하는 짓이 이렇다 사는 것이 거짓말이다

 

거짓말인 줄 내가 다 알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다

 

나를 얼른 패 죽여야 한다.

 

 

- 「거짓말」 전문

 

 

넷째, 고전과 선배에게 배운다.

 

 

 체 게바라(1928~1967), 아르헨티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의대를 졸업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의사의 길을 포기한 뒤 쿠바혁명에 참여한 그는 혁명가이자 전장에서 시를 쓰는 시인이었습니다. 전장에서 전사한 그의 유품에는 지도와 두 권의 일기, 그리고 공책 한 권이 들어있었는데, 그가 좋아했던 네루다 등 4명의 69편의 시가 빼곡히 적혀있었다고 합니다.(<체 게바라의 훌쭉한 배낭>, 실천문학사, 2009)

 

 이렇게 시인은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조차 선배의 시를 베끼고 분석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시를 썼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배낭 속에는 언제나 괴테, 보들레르, 도스토예프스키, 네루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레닌 등의 책들이 떠나질 안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시를 오래 잘 쓰려면 고전과 선배들의 시를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아내를 들어 올리는데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수컷인 내가

 

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고

 

새끼 두 마리가 몸을 찢고 나와

 

꿰맨 적이 있다

 

 

먹이를 구하다가 지치고 병든

 

컹컹 우는 암사자를 업고

 

병원으로 뛰는데

 

 

누가 속을 파먹었는지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 「아내」 전문

 

 

 위 시는 브레히트를 공부하여 얻는 것입니다. 여성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는 출산과 육아기입니다. 시 「아내」는 제 아내가 육아기에 실제로 아파서 병원으로 옮기느라 업었던 체험을 시로 형상한 것입니다. 부부를 밀림의 사자로, 밥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경쟁 현실을 밀림으로 비유한 시입니다. 그러나 독일 브레히트의 「나의 어머니」라는 시를 읽지 않았으면 이 시를 생각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래 시는 친구와 대화중에 죽음에 대하여 물은 기자의 질문에 “더 이상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 아인슈타인의 말, 그리고 “글라디올라스의 섹스” 등으로 아내의 몸을 비유한 앙드레 브르통의 시 「자유로운 결합」에 나오는 수사법에서 많은 부분 착상하였습니다. 이렇게 여성의 수다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평생 사랑을 받다 양노원이 아닌 여자의 품에서 죽을 것입니다.

 

 

나는 이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알죠

 

바람을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소리가 뭐야?”라고 물었을 때

 

“당신 수다야”라고 대답했던 사람이죠

 

 

아침 햇살 살결과 이른 봄 체온

 

백자엉덩이와 옥잠화 성교

 

줄장미 생리하혈과 석양의 붉은 볼

 

물봉선 입술과 대지의 살 냄새를 가진 사람이죠

 

 

나는 이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알죠

 

바람을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

 

“죽음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간결하게

 

“당신을 못 보는 것이지”라고 대답했던 사람이죠

 

 

나는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알죠

 

바람을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

 

말밤나무 몸통과 말밤 눈망울

 

말밤나무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죠.

 

- 「말밤나무 아래서」 전문

 

 

다섯째, 재미있게 만든다.

 

 

 시든 소설이든 결국은 재미있는 글이 오래 살아남게 됩니다. 동양의 제일서인 『논어』처럼, 우리 민족 제일서인 『삼국유사』처럼, 장자의 우화처럼, 이솝의 우화처럼, 불서와 성서의 이야기처럼 재미가 있어야 독자들이 오랜 관심을 갖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를 재미있게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공자는 아는 것 보다 좋아하는 것이 낫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시를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시 「무량사 한 채」는 재미있게 구성한 시의 사례입니다.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는)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비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소리를 냅니다.

 

- 「무량사 한 채」 전문

 

 

 위 시는 실제 아내와 있었던 대화를 진술한 것이 아닙니다. 가능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한 것입니다. 아래 시 「걸림돌」 역시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를 가져다가 재미있게 구성한 것입니다. 이 시를 본 독자들은 대부분 재미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잘 아는 스님께 행자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 하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 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때 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소리치지 않으셨던가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누구를 들이고 둔다는 것이 그럴 것 같다

 

오늘 저녁에 덜 돼먹은 후배 놈 하나가

 

처자식이 걸림돌이라고 푸념하며 돌아갔다

 

나는 "못난 놈! 못난 놈!" 훈계하며 술을 사주었다

 

걸림돌은 세상에 걸쳐 사는 좋은 핑계거리일 것이다

 

걸림돌이 없다면 인생의 안주도 추억도 빈약하고

 

나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 「걸림돌」 전문

 

 

 저 역시 걸림돌이 없었다면 세상을 제멋대로 살다가 스스로 망가져서 인생을 조기에 마쳤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시를 핑계로 술집과 카페에 들락거리느라 지금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는 인생의 걸림돌인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섯째, 현실 문제를 건드린다.

 

 

 요즘 시가 지겹다고 합니다. 시에 현실감과 생동감이 없어서입니다. 시의 내용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고, 표현이 축축 늘어진다면 얼마나 지겹겠습니까? 유몽인은 시는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인데, 시어를 아무리 잘 다듬어도 정작 사상적 내용과 그 지향성(志)이 결여되면 시를 알아보는 사람이 이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는 시속을 일깨우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지 풍물이나 경치만 읊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수십 년간 조선시대 문단을 장악했던 서거정은 여행과 현실에서 배우지 않은 문장은 곧 낡고 썩기 쉽다고 하였습니다. 문장은 기백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요즘 시들이 기백이 없고 횡설수설에다 난잡 난해 불통인 것은 시가 현실과 접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현실의 자기 경험이 시 소재의 황금창고인 것입니다.

 

아래 시 「얼굴반찬」은 핵가족화 세태를 비판한 시입니다.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 「얼굴반찬」 전문

 

 

 돈과 경쟁으로 요약되는 자본주의는 핵가족화를 넘어 가족의 해체를 낳고 있습니다. 가장 한 사람만 벌어도 온 가족이 먹고 살도록 적정한 임금과 사회보장을 해주는 사회라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현실은 가족이 흩어져 돈벌이를 하느라 정신없고 허덕이고 있으며 학생들은 입시 경쟁에 몰려 어려서부터 사설학원에 돈을 퍼주러 다닙니다. 그러니 집안에 식구들이 모일 기회가 적고, 그러니 인생 최고의 문제인 사는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사는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가 성공적인 인생이냐 아니냐의 관건이며 행복일 것입니다.

 

 아래 시는 우리나라 노동자의 슬픈 일상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당신, 창의력이 너무 늙었어!”

 

사장의 반말을 뒤로하고

 

뒷굽이 닳은 구두가 퇴근한다

 

 

살이 부러진 우산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굴욕의 나이를 참아야 한다고

 

처진 어깨를 적시며 다독거린다

 

 

낡은 넥타이를 끌어당기는 비바람이

 

술집에서 술집으로

 

걸레처럼 끌고 다니는 밤

 

 

빗물이 들이치는 포장마차 안에서

 

술에 젖은 몸이

 

악보도 연주자도 없이 운다

 

 

-「몸관악기」 전문

 

 

 위 시는 젊어서는 마구 부려먹다가, 임금이 높아지는 나이가 되면 노동자를 몰아내는 우리나라 자본의 행태를 서정화 하여 폭로한 것입니다. .

 

 

일곱째, 알아먹게 쓴다.

 

 

 요즈음 시들은 횡설수설하고 난잡 난해해서 도저히 읽기가 불편합니다. 소통 불가인 불통문학입니다. 요즈음 시만 그렇겠습니까? 옛날에도 그런 시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부 거품처럼 사라졌을 겁니다. 독자와 소통하는 시를 써야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책이든 읽기 어려운 것은 작가가 충분히 정성을 들이지 않아서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나 역시 명망 높은 경제학자로서 아무나 읽지 못하는 어려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고 하여 대중이 알아먹는 쉬운 글쓰기를 강조하였습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 횡설수설과 난해 난잡 불통하는 시를 인정하고 독려하고 양산하는 평론가와 학자와 문예잡지들이 있습니다. 당장 이러한 허망한 것들을 용기 있게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쉽고 아름다운 시를 찾아 읽고 쓸 것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출처 cafe.daum.net/koreanpoetsbest/KHLr/199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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