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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설전(雪戰)

희라킴 2016. 3. 7. 17:31

 

원택스님 엮음/책읽는 섬

 

 

▷법정스님

“요즘은 삼베가 꽤 비싸다 합니다”

▷성철스님

“그래요? 난 잘 몰라요

나 때는 삼베가 제일 검소하니

그걸 택한 거지

참으로 수도를 하려면

최저의 생활로

최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철스님은 제자와 후학들에게 대단히 엄격했다. 하지만 예외인 스님이 있었다. 법정스님이었다.

법정스님은 때때로 성철스님을 찾아가 쓴소리도 하고, 의문스런 점이 있으면 몇 번이고 묻기를

거듭했다고 한다.

 

또 성철스님은 자신의 책을 법공양하면서 법정스님의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1987년, 성철스님은 사진집을 발간하면서 법정스님에게 서문을 요청했다.

그때 법정스님이 쓴 서문, 그리고 두 어른 스님간의 대화를 엮은 책, <설전>이 발간됐다.


설전(雪戰)은 눈발처럼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수행자의 내면을 담은 제목이다.



“며칠 전 백련암 원택스님이 찾아왔었다.

그날은 뜰 가에 있는 은행나무 잎이 죄다 져버려 빈 가지만 남은 걸 바라보다가

문득, 나도 훨훨 떨쳐 버리고 싶은 생각에서 삭발을 하고 난 참이었다.

원택스님은 큰스님의 사진첩을 하나 내고 싶다고 했다.

그래 큰스님께서 허락하시더냐고 물었더니 겨우 반승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해 듣고 백련암 큰스님의 너그러워지신 변모에 웃음을 머금었다.”


법정스님이 회고하는 성철 큰스님은 한때 방벽에 예쁘고 귀여운 아기들의 얼굴을 담은 달력을 걸어놓는,

아이들을 참 좋아하신 분이다. 또 수행자들에게 자신이 입으려고 챙겨둔 면 옷을 꺼내 주기도 하고,

주장자를 짚으며 젊은이처럼 발길을 힘차게 내딛으며 산책을 즐겨하던 모습이 법정스님에게 인상적이었다.


법정스님이 강사로 해인사 강원에 머물던 때, 성철스님을 친견하려고 대학생 수백 명이

한여름에 3000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법정스님은 대한불교(현 불교신문)에 ‘굴신운동’이란 제목의 글을 실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숫자 채우기에 급급하여 절을 하는 것을 비판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성철스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오히려 글을 본 젊은 스님들이 법정스님 방의 물건을 치워버리는 일이 생겼다.

법정스님이 그 길로 해인사를 떠난 지 15년 만에 다시 성철스님을 만나 ‘3000배를 시키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평소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남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못된다.

그래서 ‘여기 올 때 나를 찾아오지 말고 부처님을 찾아오시오.

나를 찾아와서는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찾아오면 그 기회를 이용해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고 3000배를 시킵니다.”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의 만남이 의미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돈오점수 수행이라는

보조국사의 법맥을 이은 송광사 법정스님과 돈오돈수를 주장한 성철스님의

만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두 스님간의 대화에서는 이런 논지가 간간히 들어난다.

또한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수행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바른 삶이란 무엇인가의 논지들이 명확히 제시되고 있다.


“정말 사람이 성불할 수 있습니까?”(법정스님) “내가 깨친다 깨친다 하는 것은 사람이 그런 깨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다면 만날 노력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오. 땅 밑에 금이 많이 있는 줄 알면 그곳을 파 금이 나오지만,

암만 파도 금이 없을 것 같으면 헛일이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그 광맥이 사람마다 다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이것을 개발하고 소개하는 것이 불교의 근본 생명선입니다.” (성철스님)


성철스님은 출가하면서 의식주에 대한 자발적 가난을 택했다.


겨울에는 광목 옷, 여름에는 삼베옷을 벗어난 적이 없다.

한날은 법정스님이 물었다. “스님, 요즘은 삼베가 꽤 비싸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흔하고 값 싼 삼베였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오히려 비싼 옷이 됐다는 말에

성철스님이 묵묵히 답했다.


“그래요? 난 잘 몰라요. 나 때는 삼베, 광목이 제일 검소하니 그걸 택한 거지.

입은 거 기워 입고, 몸만 가리면 되니까.

음식도 그래요. 요즘 사람들은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사람을 먹어요.

참으로 수도를 하려면 최저의 생활로 최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철과 법정. 종교를 뛰어넘는 우리의 큰 스승이다.

두 스승간의 대화는 단순한 대화를 넘어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라는

화두에 대해 명확한 길을 제시한다.


이 책에 나온 내용은 여러 잡지와 법정스님의 글을 통해 한번쯤 소개된 것이다.

 

두 스님의 대화를 세 가지 큰 주제로 엮어 재구성했다.

첫 장은 자기를 바로보라, 둘째 처처가 법당이고 부처다,

셋째 지금 자리가 바로 부처님 계신 자리라는 주제다.


“나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남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업의 율동이고 메아리입니다.” 법정스님의 말이다.





■ 성철스님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성철스님은 1912년 경남 산청서 출생했다. 지리산 대원사에서 불교를 접하고 1936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동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구 동화사에서 큰 깨우침을 얻은 이후 엄격하고 철저한 수행을 통해 한국불교의 선 사상을 정립하고 선풍을 세웠다. 해인총림 해인사 초대 방장에 이어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고 1993년 열반에 들었다.


■ 법정스님

1932년 전남 해남서 태어난 스님은 전남대 상과대학을 수료하고 효봉선사를 은사로 1956년 출가했다. 불교신문 주필을 역임하고 1975년 송광사에 불일암을 세우고 정진하면서 수필을 집필, 1976년 발간한 첫 수필집 <무소유>가 대중에게 큰 호응을 일으키면서 수필가로 명성을 날렸다. <오두막 편지> <물소리 바람소리> <홀로사는 즐거움> 등 다수의 수필집을 펴냈으며, 2010년 길상사에서 열반에 들었다.


출처 [불교신문3181호/2016년3월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