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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 박완규

희라킴 2016. 8. 8. 09:49



기적


                                                                                                                             박완규

 

 아직도 어깨가 좋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며칠이 지났는데도 뻐근한 것이 좀처럼 낫지 않습니다. 어깨가 이렇게 아프다보니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에도 불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옷 입는 것, 왼손으로 문을 여는 것, 왼 어깨로 가방을 메는 것, 양손으로 타이핑을 하는 것, 자동차 핸들을 왼손으로 잡는 것까지 아주 사소한 일조차 저에게는 굉장한(?) 일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이렇게 낑낑대는 저에게 아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몸이 당신에게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이렇게 몸이 어리광을 부리면 어리광을 부린다고 혼내지 말고 그 어리광 좀 받아주라고. 남들 어리광은 다 받아주면서 당신 몸이 보내는 어리광에는 왜 그리 매몰차게 대하느냐고. 그러고 보니 그동안 쉬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평일은 평일대로 바쁘고, 주말은 주말대로 쉬는 날도 없이 바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하던 차에 어제 비보 하나가 전해져왔습니다. 친한 친구 한 명이 손을 쓸 수 없는 말기 암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폐암에 위암에 갑상선까지 암이 전이되었다고 합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쌩쌩하게 돌아다니던 친구였습니다. 새로운 사업도 구상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친구는 수술조차도 불가능하다는 비통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수술이 불가능하니 의사는 방사선 치료나 항암 치료를 해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1년을 버티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호자더러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친구의 아내는 무슨 준비를 해야 하냐며 울먹입니다. 아직 학교에 다니는 늦둥이 딸이 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친구인데 이 친구는 지금 얼마나 힘들어할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생만하면서 살아온 친구입니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온 친구입니다. 생활력도 강했습니다. 기댈 언덕이 없었던지라 악착같이 살 수밖에 없었던 친구입니다. 결혼을 하고 친구의 아내도 편히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없는 살림을 일으킨다며 밤늦게까지 가게를 했습니다. 친구는 투잡을 뛰었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온 덕분에 살림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친구는 이제 조금은 살만해졌다며 좋아라했습니다. 그 말을 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몇 년 전에도 저는 저의 살과 같은 친구를 간암으로 보냈습니다. 그때는 얼마나 아팠던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이제 또 다른 친구가 아픔이 되어 다가옵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적은 하늘을 날아 다니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예전에는 느낌도 없던 이 말이 오늘은 참으로 크게 다가옵니다. 이 친구에게 지금 필요한 기적은 하늘을 헐훨 날아다니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그냥 걸어 다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빛나는 재능을 발휘했던 친구입니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운동은 또 얼마나 잘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늘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친구의 빛나는 재능도 아무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에 서글픈 마음 가득합니다.


 지금 이 친구가 가장 원하는 것은 뭘까요? 돈이 많은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저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 하는 것이고, 커가는 아이들과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고, 아내와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그런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 것 같습니다. 저의 친구처럼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이러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나흘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왼손으로 물건도 들지 못하고 머리조차도 시원하게 감지 못하다보니 알겠습니다. 왼손으로 운전을 하고, 왼손으로 물건을 들고, 왼손으로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는 일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아내의 잔소리를 듣는 일과 아이들과 아침 식사를 하는 것과 아침에 가방을 들고 출근을 하는 것과 직장 동료들과 "좋은 아침!"하면서 인사를 하는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 놀라운 기적이라는 사실을. 이 친구에게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친구가 내년에도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고,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고 “완규야! 술 한 잔 하자.” 하고 말하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저는 메일을 보내고 아내의 다리를 주물러 주러 가야할 시간입니다. 제 친구에게도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내의 다리를 주물러 주면서 "시원해?"하며 말을 거는 기적이 제 친구에게도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님들도 늘 건강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몸만 건강하면 날마다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가는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음 고운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동부매일 발행인

 박 완 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