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공부방

[스크랩] 수필의 바른 이해-----임병식수필가

희라킴 2015. 12. 22. 19:29
수필의 바른 이해





최근 들어 수필 인구가 많이 늘어나 수필을 곡해(曲解)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폄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수필이 문학이야"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제출한 보고서나 논술을 보고 "수필을 썼구먼"하기도 한다. 아직도 수필문학이 가야할 길이 멀고 잘못된 인식타파가 시급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여 필자는 수필의 총론에 해당하는 정의와 어원, 그리고 종류와 특성에 대해서는 그래도 논서와 싸이트에 많이 나와 있음으로 생략하고 수필의 바른 이해를 위해서 곧바로 '수필은 어떤 글인가'에 대해 짚어보기로 하겠다. 우리는 수필을 쓰기 전이나, 이후에도 수필은 ' 붓가는 대로 쓰여지는 글'이라는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너울이 끼치는 해악은 실로 우심하다.

성의 없이 써도 되는 것으로 오해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여기(餘技)의 문학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의가 잘못 된 것은 아니고, 이해를 잘못한 데서 오는 오해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자연스럽게 써지는 글이라는 것을 간과한데서 온 오류이기 때문이다. 수필은 소설처럼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문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제재의 제한을 받는다. 이것만하더라도 얼마나 큰 제약인가.

그래서 김태길 선생 같은 이는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조건을 '인격이 더 없이 탁월하고, 글 솜씨 또한 탁월해야' 함을 강조하며 그 제약을 극명하게 언급한바 있다.
일찍이 알베르스(R.M.Alberee)는 '에세이는 그 자체가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로 되어진 문학'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성을 기반으로 하되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정서적이어야 함이 필수라는 조건을 달고 있는 것이다.

수필은 우리 생활 속에서 직접 겪은 일을 가지고 쓰는 체험의 문학이다. 그래서 필자의 심적 나상(裸像)이라고 흔히 비유된다. 또한 수필은 그 범위가 일기에서부터 해학과 비평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으며, 제재도 거의 제한을 받지 아니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떠한 경우에도 문학이 되어야 하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일찍이 윤오영 선생은 소설을 밤(栗)에, 시를 복숭아에, 수필을 곶감에 비유한바 있다. 그러면서 설명하기를 형태상으로 소설이나 시는 잘못되어도 소설이나 시로 보아주지만 그러나 수필과 잡문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글이 수필처럼 써 졌다하더라도 정서적인 여과과정을 거친 글(문학성)이 아니면 수필로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차차 설명하기로 하겠다. 아무튼 왜 수필이 감이 아니고 굳이 곶감인가 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야할 문제다. 수필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글쓴이의 인품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인격을 닦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남에게 지탄을 받은 사람이 좋은 소설이나 좋은 시를 쓰면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수필이 그렇지 않는 것은 그 소이가 여기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기처럼 자기만 보고 마는 글이 아니라면, 새롭게 태어나는 글이어야 한다. 새로운 소재를 찾아 새로운 생각과 기법으로 써야한다. 독창성을 발휘하여 남과 차별화 하는 것을 포함해 자기 작품별로도 차별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사람의 가수로 태어나려면 많은 노래를 불러보고 소화를 해야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모창도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가수가 되려면 마침내는 자기 목소리를 찾고 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수필을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모방도 하나의 공부방법이며 용납이 되지만, 그러나 진정한 수필가로 태어나 새 출발 할 때는 분명한 자기만의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공부는 필수인 것이다. 필자는 비학천재(非學淺才)하여 학문적으로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왕에 장이 마련되었으니, 비록 사무실에 앉아 설계도는 그리지 못하지만 한데서 갖은 자질구레한 목수 일을 해본 사람으로서 함께 토론하고 공부를 한다면 무언가 얻어 지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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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필생각



얼마 전에 나는 문학저널 사이트 문학강좌에 연재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잡지사의 제의가 왔을 때 의당 사양해야 옳은 일이었으나, 매사를 끊고 맺음이 불분명한 성격대로 미적거린 것이 승락을 자초하는 꼴이 되었다.'아이구 이걸 어쩌나 '할 때는 이미 방이 마련된 후여서 도리없이 없는 실력을 발휘하여 글을 채워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후의 일이다. 그렇게 하고서 얼마간의 시일이 지났다. 그런데, 적잖이 26강이라는 많은 분량의 글을 올렸는데도 성이 차지 않는 것이었다. 특별히 더 할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올려놓은 글들이 내 뜻과는 달리 어쩐지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쓰는 이 글은 그에 대한 일종의 해명성 글이라 해도 그리 틀리지 않다. 다시 수필을 생각해 본다. 수필은 대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 나는 머뭇거림이 없이 수필은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아내는 문학'이라고 말하겠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수필은 최대의 장애를 안고 있다. 뭔고 하니 소설처럼 꾸며서 쓸 수가 없고, 남의 이야기로만 애둘러 쓸 수가 없는 애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애초부터 극적인 것을 기대할 수도 없고, 밋밋한 범주내의 글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꾸며서 쓰는 소설처럼 가령, 칼을 맞고 죽어 가는 장면이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쾌감을 즐기기에는 애초에 틀린 것이다. 그리고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도 어디까지나 쓰는 사람의 체험내의 것이며, 설령 남의 이야기를 빌어 썼다 하여도 그것은 자기 해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게 한계일까? 나는 이 물음에 대하여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지레 진작에 구축된 범위 속에 안주해 버린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써왔듯이 수필은 그런 식으로 써야하며, 사고의 틀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수필은 순치(馴致)된 틀 속에 갖혀 있었다. 수필본래의 출발점인 시필의 실험정신이 사라진 채 그냥 암묵적 합의를 해버리고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수필을 쓰고 읽으며 수필이 자기의 흥취나 족적을 더듬는 것은 보았으되, 절절한 그 무엇을 전하고 말해주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편지로나 이야기로는 수필감이 떠도는데도, 정작 수필로 쓰여진 것은 거의 보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환기의 의미로 그간 읽거나 들은 이야기 중에서 두 가지만 예증(例證)해 보겠다.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은 젊은 나이에 폐결핵을 앓아 중태에 빠져서 '구렁이 한 마리만 구해서 고와먹었으면 좋겠다'고 지인에게 편지를 보낸 일이 있다. 그 '아흐' 하고 한숨짓는 소리가 나는 지금도 어느 수필의 명문장보다도 뇌리를 때리는 것을 느낀다. 왜 그런 수필은 없는가. 그리고 또 하나 어느 수필가가 살아생전에 겪었다는 일도 그렇다. 생활형편이 갑자기 곤궁해져서 버스를 타지 않고 몇 정거장씩 걸어다니게 됐는데, 이를 보고 아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느라고 그런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더라는 것이다.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이 정도면 내가 느끼기에 최고의 글감이다. 그런데 그 수필가는 평소 뛰어난 필력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작품으로 그 이야기는 남겨놓지를 않는 것이다.(혹여 어느 작품 한쪽에 조금 언급 해놓았는지는 모르지만) 드러나면 자기의 인격이 손상된다고 느껴서 그랬을까.

이 글을 따라 읽은 사람들은 이쯤에서 눈치를 챘을 줄로 안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한 것이다. 독자에게 자랑하고 싶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글을 쓰기보다는 좀 부끄럽고 뼈아픈 일이라도 그러한 것을 기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꾸미지 않고 천의무봉(天衣無縫)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글을 엮는 문장만 해도 그러하다. 표현기법을 최대한 연마하여 문학성을 살려야 한다. 그 문장 속에 섬세한 감정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문장을 자기화하여 이름을 가리고도 누구의 글인지, 알아볼 수 있게 개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수필강의라고 어쭙잖은 이야기를 쓰고 다시 하고싶은 말을 거듭 하는 것은 바로 초점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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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로 활동하며 그동안 '당신들의 사는 법'외 3권의 수필집을 냈으며

.2003년 제21회 한국수필문학상을 수상.

한겨레네트워크 필넷.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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