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정성화
카리스마란 많은 사람을 휘어잡는 개성이나 비범한 통솔력을 가리킨다. 그런데 내 귀에는 그 말이 "칼 있어. 임마."의 줄임말로 들린다. 발음으로 인한 연상 작용이겠지만,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은 왠지 마음속에 칼 한 자루 품고 살아갈 것 같다.
칼에 대한 첫 기억은 두려움이었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마련해준 필통 안에는 새 연필깎이 칼이 들어있었다. 이제 네 연필은 네가 깎아 쓰라는 의미였다. 집어 드는 순간 칼은 반짝 빛을 내었다.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연필에다 비스듬히 날을 세우고 칼등을 천천히 밀면, 나무의 속살이 둥글게 말린 채 떨어졌다. 칼이 움직일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도 났다. 마치 칼과 연필이 서로 귓속말을 나누는 듯했다. 손끝으로 나무의 결을 느끼는 것도 좋았고 은은하게 풍겨오는 나무 향을 맡는 것도 좋았다. 칼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설거지를 하다가 손을 베인 적이 있다. 설거지 통 안의 유리컵이 깨져 있는 걸 몰랐다. 무엇이든 깨지면 칼이 된다는 걸 알았다. 남편의 직장 동료 중에 특이한 사람이 있었다. 여직원이 서류를 잘못 작성했다는 이유로 "너, 바보냐?"라고 모욕을 주더니,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는 직장선배에게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다고 한다. 그는 날이 시퍼런 '칼'이었다.
그가 그렇게 변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가 이십 년 동안 배를 타면서 모아놓은 돈을 아내가 남편 몰래 친정 남동생의 사업 자금으로 대주었고, 그 사업이 얼마 못 가서 망했다. 열 달 만에 휴가를 받아 집에 돌아와 보니 살던 집마저 은행에 넘어가고 아내는 이미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이혼을 한 그에게 남은 것은 인간에 대한 환멸뿐이었다. 배 타는 사람에게 있어 아내란 선상 생활을 견디게 하는 첫 번째 이유다. "아내가 배 타는 나를 조금이라도 가엾게 생각했더라면…." 하며 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고 한다.
칼의 모양은 한 쪽의 칼날을 위해 다른 쪽에는 칼등이, 칼끝에는 칼자루가 달려있다. 칼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것은 칼등과 칼자루가 칼날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이렇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칼날이 되어 직접 일하는 사람과 칼등으로 일하는 사람, 또 칼자루가 되는 사람으로.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칼자루가 되고 싶어 한다. 마음껏 칼을 부리고 싶기 때문이다. 또 칼등에 걸터앉아 칼날에게 간섭을 하거나 허세를 부리려는 자도 많다. 그 중 나는 '칼날형'에 가깝다. 현장에서 느끼는 생동감과 성취감을 좋아한다.
나에게 삶의 원칙을 깨우쳐준 칼이 있다. '카터칼'이다. 칼날이 마치 대나무의 마디처럼 죽 이어져 있으면서 한 마디씩 끊어지는 게 특징이다. 위의 칼날을 받치고 있다가 제 차례가 되면 열심히 일하고, 제 날이 무뎌졌다 싶으면 미련 없이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자기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 물러나야 할 때라는 걸 알면서도 버티는 사람, 제 할 일을 다음 사람에게 은근슬쩍 미루려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칼이다.
칼이 너무 잘 들면 겁이 난다. 그러나 잘 드는 칼일수록 움직임이 부드럽고 조용하다. 그에 비해 잘 들지 않는 칼은 무엇엔가 잔뜩 심술이 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칼의 심기가 불편할 줄 모르고 억지로 힘을 주는 순간, 칼은 느닷없이 손을 베어버리거나 찌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음먹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일수록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상처를 준다. 잘 들지 않은 칼은 이래저래 딱하다.
잘 드는 칼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세상이란 도마 위에서 내 앞에 놓인 것들을 열심히 썰고 다지면서, 내 속의 신명을 한껏 풀어내고 싶다. 그 날의 일을 다 끝내고 칼집 속에서, 도마 곁에서, 필통 안에서, 공구통에서 마음 편히 쉬는 칼, 후회와 자책 없이 잠들 수 있는 칼이 되고 싶다.
내 안의 칼이 나를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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