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수필

[제7회 문향전국여성문학상 금상] 알밤 / 장영랑

희라킴 2019. 10. 15. 17:08

[제7회 문향전국여성문학상 금상] 


알밤 


                                                                                                                                 장영랑


 노란 털실을 풀어 얹어 놓은 듯 길게 늘어뜨린 밤꽃이 온 산을 덮고 있다. 비릿한 밤꽃향이 훗훗한 저녁 바람에 실려 온다. 밤꽃이 무성해지면 한해의 반이 훌쩍 지났음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살아갈수록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흘려보낸 옛 기억은 밤꽃향보다 더 짙게 마음을 파고든다.

초등시절 우리 집 근처에는 밤 통조림 공장이 있었다. 밤 깎는 일은 고달프지만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되는 부업거리였다. 세 남매가 올망졸망 학창 시절을 보내던 시절, 엄마는 새끼들이 아침마다 내미는 손이 무서워 반찬값이라도 벌어보겠다고 기꺼이 공장에서 밤다라를 이고 왔다.

우리 집 마당 큰 빨강 다라에 알밤이 가득했다. 엄마의 하루 치 작업량이었다. 밤은 겉으로 보면 속을 알 수 없어 하룻밤 물에 담가두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 밤 껍질을 까면 속이 시커멓게 썩었거나 벌레가 먹어 괜한 헛수고를 하게 된다. 썩은 건 떠올라 가려내기 쉬워서 엄마는 늘 밤다라에 물을 가득 부으며 말씀하셨다.


“겉은 이리 멀쩡해가지고 썩어빠진 거 보래이. 우찌 이리 아깝노. 너그들도 어데서 살더라도 무게 축내지 말고 제값하고 살그래이 ”

하루 불린 밤은 겉껍질을 깐다. 손아귀에 쥐가 나도록 겉껍질을 벗기고 나면 푸실푸실한 보늬가 나왔다. 보늬를 깎는 데는 기술이 필요했다. 배가 볼록한 쪽으로 세 번, 납작한 쪽으로 세 번, 둘레를 한번 만에 칼을 빙 돌려 각이 선, ‘깎아 놓은 밤톨 같다’는 예쁜 밤 모양이 나와야만 했다. 행여 속살이 움푹 깎여 무게가 덜 나갈까 봐 자식을 다루듯, 노심초사 손을 떨며 엄마는 밤을 깎았다. 뻑뻑한 칼 놀림에 엄마의 손목은 달걀처럼 부어오르고, 손가락 마디에는 물집이 잡혔다. 손끝은 갈라지고 베이고 손톱은 밤물이 들어 거무튀튀하게 변해 갔지만 엄마의 밤다라는 매일 다시 채워졌다.


종일 밤 무더기에 갇혀 있는 엄마를 돕겠다고 나는 이로 깨물어 겉껍질을 벗기고는 했다. 딱딱한 껍질을 자꾸 깨물다 보면 찌릿하게 이가 아프면서 입술이 부어올랐다. 껍질 안쪽 잔털 같은 보늬가 잇몸 구석구석 끼여 떨떠름한 입속이 한 짐같이 찝찝했다. 귤껍질처럼 홀랑 벗겨지지 않는 밤껍질과 떫은 보늬가 나를 힘들게 했지만, 우리 딸 기특하다는 엄마의 칭찬 한마디면 입안이 개운해지듯 기분이 좋아졌다.

20여 년 남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가 흠 잡히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를 위해 고된 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밤을 깎던 엄마의 모습과, 흘리듯 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내 가슴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엄마는 알밤처럼 우리를 정성스럽게 키우셨다. 때로는 밤송이처럼 억세게, 때로는 군밤처럼 달콤하게 우리를 품어주었다. 나에게 알밤은 엄마 사랑의 징표와 같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큰아들은 나를 닮아 밤을 좋아한다. 편식이 심하던 녀석이 유일하게 밤은 잘 먹었다. 특히 설탕에 졸인 밤맛탕을 유난히 좋아해서 나의 밤 깎기는 그 옛날 엄마의 사랑처럼 이어져 나의 아들에게로 갔다.

아들은 밤나무가 가득한 산이 교정을 둘러싸고 있는 공주의 명문고에서 기숙 생활을 했다. 밤송이에서 떨어진 알밤마냥 처음으로 품을 떼 놓은 자식이 아른거려 주말마다 도시락을 싸서 아들을 만나러 갔다. 기말고사 준비가 한창이던 6월이었다. 아들이 저 좋아하는 밤맛탕에 갈비찜을 내놓았지만 심드렁하더니, 밤 한 알을 집어 들고 결국 왈칵 눈물을 쏟는다.

“엄마 애들이 무서워요. 일등 하겠다고 종일 공부만 해요. 잠도 안 자고 말도 안 하고…… 숨이 탁 막혀요 .”

유순하고 느긋한 아들이 오죽하면 이런 말을 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명문고라는 간판과 입시라는 틀에 갇혀 경쟁 속에 허덕이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내 욕심에 남들에게 보이려고 너무 잘난 애들 틈에 아들을 가둔 건 아닌지 후회가 밀려왔다. 교정에 밤꽃은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알밤 같은 내 자식은 청춘의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기가 죽어 있었다. 얼키설키 어지러운 밤꽃보다 내 마음은 더 심란했다. 네가 원하면 언제라도 전학 시켜 주마라는 말과 등짝을 한번 쓸어주는 게 엄마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주말마다 밤맛탕을 준비하던 내 손도 맥없이 풀어졌다. 아들에 대한 사랑 같은 알밤이었는데 손아귀에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 밤껍질은 유난히 단단하게 느껴졌고 보늬는 보기만 해도 가스러웠다.

 답답한 마음에 집 뒷산을 올랐다. 밤꽃이 갈색빛으로 퇴색해서 이리저리 밟혀 형체가 으스러지고 있었다. 밤나무 가지 하나를 눈높이로 쭉 당겨왔다.길쭉한 밤꽃에 둥근 밤송이가 달리는 것이 궁금했다. 밤나무 잎사귀 안쪽 보이지 않는 곳에 콩알만 한 밤송이가 달려 있지 않은가. 초록의 보드레한 가시를 내밀며 이제 막 밤송이 모양새를 갖추었다. 눈도 떼지 못한 강아지마냥 안쓰럽고 기특했다. 아들도 이제 겨우 생긴 여린 밤송이 같을 테지.

한동안 장맛비가 퍼붓고 비바람에 여린 밤송이들이 후두둑 떨어지고 으스러진 밤꽃도 다 쓸려 내려갔다. 소나기를 견딘 밤송이는 눈에 띄게 굵어져 탁구공만 해졌다. 아들은 소나기를 잘 견뎠을까 조바심이 났지만, 두고 보았다.

 교정에서 다시 만난 아들은 제법 모양을 갖춘 밤송이가 되어 있었다.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하며 껍질이 단단해져 갔다. 풋밤이 살을 채워가듯 토실한 알밤으로 여물어져 갔다. 그해 가을, 아들은 학업 실력도 친구 간의 우정도 잘 영근 햇밤처럼 옹골차게 쏟아내었다.

쭉정이가 되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비바람을 견디며 참아준 아들이 대견했다. 어디에서든 무게 축내지 말고 제값하고 살라던 엄마의 말처럼 아들은 속이 단단한 알밤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어엿한 수의사가 되었다.

낯익은 밤꽃향이 콧등을 찌른다. 밤꽃이 몸살을 앓고 지천으로 나뒹굴면 여린 밤송이가 다시 맺힐 것이다. 아마도 아들은 이맘때쯤 모교에 한 번 들르고, 공주의 유명 밤 막걸리 두어 통을 사서 집에 올 것이다. 고소한 밤 향이 배어 있는 달큰한 막걸리로 나와 술잔을 기울이며 아들은 밤꽃 떨어진 교정 나무 밑에서 참 많이 울며 애썼던 그때의 열정이 그립다고 할 것이다.

나는 엄마의 밤다라이를 떠올리고 유년의 기억을 쏟아내며 밤을 지새울 것이다. 그리고 다짐하리라. 살아간다는 것은 여린 밤송이가 쏘아붙이는 햇볕과, 두들기듯 내리치는 소나기, 후드득 밀어붙이는 태풍을 견디며 제 몸을 키우는 일처럼 힘든 일이지만, 결코 겉만 번지르르하게 무게만 축내는 썩은 밤으로 살아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