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수필

[제10회 천강문학상 대상작] 달팽이의 꿈 / 박금선(박금아)

희라킴 2019. 9. 9. 19:14


[제10회 천강문학상 대상작] 


달팽이의 꿈 


                                                                                                                          박금선(박금아)



 지루한 장마였다.


​ 홈통을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에 밀려 오랜만에 베란다 청소를 했다. 화분을 밀어내고 물을 부으려고 할 때였다. 황갈색 왼돌이 달팽이 한 마리가 흙 부스러기 위를 한가로이 기어가고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물은 양동이를 떠나 해일처럼 돌진했다. 조난당한 배처럼 파도에 갇힌 신세가 된 달팽이를 건져 모종판에 놓아주었다. 비 오는 날이면 마당으로 나오던 달팽이를 잡아 담장 너머로 내던져 버리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정을 내렸다. '그래. 너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마.

 그만으로도 인연인가. 오며 가며 지켜보게 되었다. 녀석은 낮 동안에는 껍질 속에서 꼼짝않고 있다가 저물녘이면 빠끔히 목을 빼고 나와 화초 줄기를 오르다가 내리고,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몇 날을 간다고 해도 못 오르지 싶었다. 무게에 눌려 다리마저 퇴화해버린 걸까.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천형 같았다. '껍질만 없다면….' 나선형의 껍데기가 부담스러워 보였다. 나도 평생을 껍질에 갇힌 채로 살아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 큰 고민 없이 한 결혼이었다. 대학 동아리 선후배로 만난 남편과는 조건을 따져 본 적이 없었다. 결혼식 일주일 전에 시댁 식구들과 한집살이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깜깜이였다. 달팽이를 닮았던 듯, 내 눈은 지독한 근시였다. 신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야 어렴풋이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거실은 온통 잿빛이었다. 방안에 깔린 어둠은 더 짙었다. 안방에는 깊은 병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시어머님이 누워 있었고, 중풍으로 몸의 반쪽 기능을 잃은 시아버님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웬일인지 이십 대의 두 시동생이 거처하는 문간방에서도 빛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고장 나다시피 한 흑백 티브이가 유일한 불빛이었다.

 시부모님께 첫 밥상을 올려드리자마자 녹의 홍상을 벗어 던졌다. 아버님의 낡은 운동복 바지를 빌려 입고 시장으로 달려갔다. 흰색 페인트를 사 들고 와 장식장이며 신발장, 방문을 하얗게 칠했다. 처음 해 본 칠 작업이었고, 어둠은 그렇게 한 번의 덧칠로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물여섯의 나이는 너무 어렸다.

 직장에 사표를 던지기만 하면 해결될 줄 알았던 것은 오산이었다. 식구들 모두에게 잃어버린 그 무엇이 되어야 했다. 시신경을 잃은 어머님의 두 눈이 되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아버님의 손발이 되고, 두 시동생의 어머니가 되어야 했다. 껍질이 하나씩 덧씌워질 때마다 숨이 막혀왔다. 밖을 보면 세상은 아득한 거리에 있었다. '저 빛 속으로 다시 들 수 있을까?' 눈이 부셨다. 한낮을 걷는 달팽이처럼 여린 해살에도 피부가 말랐다. 종일 두꺼운 커튼을 쳐 두었다. 볕이 들지 않는 집은 늘 눅눅했고, 곳곳에 이끼가 돋았다. 내 몸에도 푸른 녹이 슬 것 같았다.

 달팽이가 되었다. 낮이면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밤이면 거리를 활보했다. 새내기 기자였던 남편은 매일 밤, 집을 비우다시피 했다. 그가 경찰서 당직실에서 기삿거리를 찾아 헤매는 사이, 집을 빠져나온 내 영혼은 잃어버린 나를 찾아 발에 티눈이 박히도록 돌아다녔다. '나의 나날은 밤에 와서 시선을 돌려준다.'던 베르코르처럼. 몽달귀신이 되었다. 밤만이 구원이었다. 짧은 외출에도 붉어지고 마는 내 눈은 밤의 일탈 후에야 생기를 찾았다. 밤의 시간 동안 반짝이던 영혼은 아침 해가 떠오르면 나팔꽃처럼 다시 시들시들해졌다. 싱크대 앞에 서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느낌이 반복해서 들었다.

 붉은 선으로 이룬 원고지 한 칸 한 칸이 밤새 내가 돌아다닌 길이었다. 아침이면 해독할 수 없는 문장들이 책상 위에 점액의 흔적으로 남았다. 달팽이가 온몸으로 써 내려간 상형문자처럼, 뜻을 알 수 없는 글씨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하기는커녕 더 선명해지는 것이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이런 은빛 문장을 보았다.

  '껍데기를 깨야 해!'

 그 일은 쉽지 않았다. 달팽이 껍질처럼 집은 내 몸의 일부였으니까. 그 사이, 첫애가 태어났다. 한 생명을 오롯이 떠맡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목이 죄어 왔다. 더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집에서 멀어지기 위해 안간힘으로 도움닫기를 시도했다. 젖먹이 아들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아버님을 병실에 둔 채로 도서관 구석 자리로 들어갔다.

 다시 날아보리라. 취업을 준비했다. 어린 학생들 틈에 끼여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었다. 몇 달 후, 날개를 펼쳤다. 추락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비행도 마찬가지였다. 집을 벗어난 내 몸은 무중력 상태를 유영했다. 추락을 거듭하는 사이에 날개는 부서지고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책상에 엎드려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나를 일으켜 세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즈음 슬금슬금 내 척추를 파먹어 가던 결핵균이었다. 나는 다시 '집'에 감금되었다.

 달팽이는 우리 집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흐트러진 데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늘 부스스한 모습으로 지켜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었다. 집채를 지고서 오체투지로 배를 밀고 가는 모습은 구도자를 떠올리게 했다. 돌부리도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그런 녀석이 걸음을 멈춘 곳이 있었다. 난간 끄트머리에서였다. 껍질 속에 몸을 말아 넣고서는 꼼짝을 않는 모양새가 추락의 깊이를 가늠하는 듯했다. 날아보지 않고도 자신과 허공 사이, 그 간극을 어찌 알았을까. 조심스레 집어 화분에 다시 놓아주었다.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살이 아직은 뜨거운 늦여름 아침이었다. 밤에만 보이던 달팽이가 이른 아침부터 눈에 띄었다. 목욕재계를 한 듯 유난히 맑은 몸새였다. 머리를 꼿꼿이 들고서 아침 바람에 더듬이를 희번덕거리는 모습이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았다. 탄탄한 근육을 움직이며 뚜벅뚜벅 내딛는 걸음새가 화단을 접수해버릴 기세였다. 등에 실린 짐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모처럼 나도 외출을 하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나선 길은 낯설기만 했다. 서점에 들러 책 몇 권을 사고, 영화를 보고, 커피숍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놓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집 생각이 나면서 달팽이가 걱정되었다.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는 전에 없던 정적이 감돌았다. 신발을 벗는 둥 마는 둥 베란다로 달려갔다. 화초 이파리를 뒤지고, 줄기를 흔들어 보아도 달팽이는 온데간데 없었다.

모종판에 담긴 검은 흙 위에 은빛 길이 나 있었다. 길은 상추 이파리를 지나 한련화 줄기를 타고 꽃송이를 향했다. 눈으로 달팽이가 갔을 길을 숨죽여 따라가다가 악!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달팽이는 뚝 끊어진 길 아래 큰 화분 뒤 타일 바닥에서 싸늘한 죽음으로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부서진 껍질을 온몸에 덮고서 몸이 바싹 마른 채로. 창틀에 걸어두었던 걸개 화분이 떨어져 내리면서 깔리고 만 것이었다. 녀석이 죽을 때 그랬을까. 숨이 할딱거려졌다. 목울대를 뚫고 외마디 소리가 나왔다.

 "아, 내 껍질. 소중한 내 집!"

 


 굳게 닫혀 있던 창을 열어젖혔다. 저무는 햇살 속으로 가느다란 은색 빛줄기 하나가 반짝이며 길을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