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멀어져 보니 알겠다 / 강천

희라킴 2019. 7. 4. 17:29


멀어져 보니 알겠다 


                                                                                                                               강천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파트 뜨락에 노랑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나지막한 잡풀만 자라고 있는 공터에 홀로 생뚱맞게 피어 간들거리고 있으니 절로 눈길이 머문다.


 그러고 보니 읍내를 가로지르는 개천 둔치도 온통 황금색 꽃물결로 일렁이고 있었다. 늘 오가며 바라보는 곳이라 한 번쯤은 가보려고 했는데 마침, 마음이 내킨 김에 개울로 나서본다. 야트막한 물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산책로가 있는 곳이다. 냇가로 내려서기 전 잠시 둑 위에서 발을 멈춘다. 하천을 따라 생겨난 구불구불한 꽃길이 오가는 사람들과 한 폭의 그림처럼 멋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올 때의 마음과는 달리 선뜻 안으로 들어서기가 망설여진다. 낯설다. 아마 아직도 다 걷어내지 못한 편견의 찌꺼기들이 낯가림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풍경을 볼 때는 마치 혓바늘이라도 돋은 것처럼 불편해했다. 자연하천을 헐어버리고 인공으로 조성한 꽃밭이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기왕이면 우리 꽃을 심을 일이지, 꼭 외래종을 심어야 했느냐는 생각도 한 몫을 거들었다. 속내가 그러하니 자연스레 이 둔치 길도 내게는 미운털이 박혀버렸다. 순수한 마음이 아닌, 각인된 미움이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인 옹졸한 처사가 쑥스러워서 이렇게 미루적거리고만 있다.


 식물을 공부하면서 특산식물이나 귀화식물을 알게 되었다. 이 땅에서만 살았으니 특산이고 예부터 같이했으니 우리 것으로 생각했다. 생태교란종이 자연에 끼치는 해악을 보면서는 도래종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토종은 무조건 보존해야 하고, 도입종은 씨를 말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생긴 분별심이다. 나도 모르게 자타를 구분하는 차별의 공간을 만들어 그 속에 자신을 가두어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생인 찔레꽃만이 진정한 꽃이고 장미는 겉멋만 들인 천박한 꽃이라 여겨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 그 편견이야 오죽했겠는가.


 물가로 끌려가는 소걸음처럼, 둔치 안으로 억지 걸음을 들여놓는다. 머뭇머뭇 길섶으로 다가가 풀꽃들과 슬그머니 눈을 맞추어 본다. 나는 앙금을 다 털어내지 못해 멋쩍은데, 고개를 끄덕이며 반겨주는 웃음이 해맑다. 꽃 무리 속으로 들어와 보니 샛노란 금계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이사이로 뒤섞인 하얀 개망초도 다정스레 어울려 있다. 물 건너에서 이주해 온 수레국화도, 토박이 애기똥풀도 한데 엉겼다. 어디서 왔으면 어떤가. 한곳에 모여 살아가는 이웃인 것을. 사람도 그러하지 않는가. 만리타향으로 이민간 사람도 있고, 낯선 곳에 와서 적응하며 잘 사는 이도 얼마든지 있으니.


 사실 눈앞의 이 꽃은 금계국이 아니라 큰금계국이라고 불러 주어야 한다. 누가 내 이름을 다르게 부르면 기분이 나쁘듯, 식물계도 제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씨나 이 씨처럼 두루뭉술하게 지칭하는 말은 자신이 없어 얼버무리는 일이라고 여겼다. 식물을 볼 때도 만남,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집안 내력을 추적하고 이름을 찾는데 더 힘을 쏟았다. 말로는 꽃을 보러 간다고 했지만, 그 속내는 따지고 분류하는 재미로 불원천리했던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산으로 달려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핑계야 많겠지만 나태해진 탓이리라.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걸음 물러서 보니 여러 가지의 갈림길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그냥 금계국이라 불러도, 꽃 자체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귀화종이건 토종이건 '삶의 의미는 다르지 않다'라는 사실도 새삼 알아가는 중이다. 게을러진 걸음을 위한 변명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외래종 꽃 한 송이를 예전처럼 푸대접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천덕구니 돼지풀이든, 얄궂은 이름으로 살아가는 큰개불알풀이든 다르지 않다. 모두가 똑같은 무게를 가진 어여쁜 한 송이 꽃이라는 사실을, 멀어져 보니 조금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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