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그럴 나이 / 최민자

희라킴 2019. 6. 30. 18:08



그럴 나이 


                                                                                                                                 최민자


산야초 발효액이 가득 든 유리단지가 산산조각으로 박살나 깨어졌다. 싱크대며 카펫에 붉은 액체가 튀고 거실 벽까지 파편이 날아갔다. 지리산 깊은 골에서 캐 온 약초를 정성스레 발효시켜 보내준 시골 조카의 정성을 개봉도 못하고 깨뜨려버린 것이다. 외마디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내가 정말, 요즘 왜 이러나.

 그렇지 않아도 어제 일 때문에 아침 내내 우울하던 터였다. 새로 생긴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주차장 턱에 걸려 절퍼덕 넘어졌다. 핸드폰은 저만치 동댕이쳐지고 무르팍은 깨져 핏물이 비쳤다. 오가는 사람들이 흘끔거렸다. 정강이에도 피멍이 올라왔지만 아파서보다 창피해서 슬펐다. 절뚝절뚝 장을 보고 서둘러 차를 끌고 나오다 그예 또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비상등을 깜박 잊고 후진을 한 내 잘못도 있지만 급하게 차선을 바꾼 상대방 잘못이 더 클 것이다. 이럴 땐 일단 쇳소리와 삿대질로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듯이 다짜고짜로 도끼눈을 뜨고 시퍼렇게 달려드는 젊은 여자 앞에서 쩔쩔매며 버벅거리다 수리 비용을 옴팡 뒤집어쓰고 말았다. 화가 나고 속이 상했다. 바꾼 지 한 달도 안 된 내 차의 벗겨진 살갗이 내 살이 까인 양 쓰라리기도 했다. 왜 나는 야물지도 당차지도 못하고 매사 허점투성이인가. 왜 말로도 힘으로도 이기지 못하고 첼렐레팔렐레 손해만 보고 살까.

사방팔방 튕겨 나간 유리 파편과 찐득찐득 엉겨붙은 즙액 자국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워야 할지 막막하고 한심했다. 마감을 넘긴 원고나 마무리하고 점심 약속에 맞춰 나가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지난주에도 사기 찬통을 떨어뜨려 박살낸 적이 있다. 왜 자꾸 일을 저지르는가. 나이 들어 주의력이 없어진 건가. 손목에 힘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나.

유리를 줍고 걸레질을 하고 오렴된 카펫을 수습하느라 한나절 내내 진땀을 흘렸다. 가까스로 시간에 맞추어 나간 나를 친구가 나지막이 다독거렸다. 그래도 몸은 안 다쳤잖아…. 그 역시 경락마사지를 받았다가 갈비뼈에 금이 가 CT를 찍고 오는 길이라 했다. 얼마 전에는 식탁 의자에 걸려 발가락이 부러지는 바람에 서너 달 가까이 깁스를 했다 한다. 동창 모임에 빠졌던 은정이도 항암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며 씁쓸한 표정으로 오금을 박듯 말했다. 우리가 이제… 그럴 나이야.

 그럴 나이라…. 면역이 약해져 자주 감기에 걸리고 순발력 집중력 기억력이 없어지고 안 하던 실수도 자주 하게 되는, 그런 증상이나 징후들이 진즉부터 빈발하고 있었음에도 총체적 증후군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연한 사고나 우발적 해프닝일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온 것 같다. 염색과 임플란트, 다초점렌즈로 감춘 나이에 남보다 먼저 자신이 속아 아직은 멀쩡한 척, 애써 안 늙은 척 주눅들지 않고 당당해했을지 모른다. 쭈뼛거리고 주춤거리다 아쉽게 놓쳐버린 세월이 허무해 인생은 저지르는 자의 몫이더라고 뒤늦게 젊은 친구들을 독려하기도 했는데, 저지르는 일마다 사고요 실수니 남은 생의 목표를 '무사안일無事安逸' 수정해야 하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일도 아무 일도 없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던 게 운문선사였던가.

 평소에는 생각 없이 지내다가도 무슨 일을 당하고 나면 방금 전까지의 무탈함이 얼마나 복된 평화였던가를 절절하게 톺아보게 된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 나이까지 무사한 것도 기쁘고 행복한 별일들이 아닌, 기억조차 나지 않는 별일 없는 날들 덕분이었다. 일상의 갈피갈피에 숨은 지뢰와 복병들이 용케 요리조리 비켜나 주어서, 궤도에서 아주 이탈해버릴 만큼 운수가 아주 사납지만은 않아서, 요행과 천운으로 살아낸 것 같다. 운명도 움직이는 과녁은 맞추지 못할 거라는 듯이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왕성하게 노익장을 과시하는 어르신들이 멋져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운명은 어쩌면 노련한 사냥꾼처럼 부지런히 움직거리고 뛰어다니는 대상에 더더욱 매혹을 느껴 물어뜯으려 할지 모른다. 무엇을 잘하려고 기를 쓰지도, 젊어 보이려 애쓰지도 않고 미운털 들키지 않게 납작 엎드려 살금살금 늙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이를 빙자해 위세를 부리거나 엄살을 떨지 않고, 나잇살만큼은 나잇값을 하며 익은 냄새도 가끔 풍길 수 있으면 좋겠다. 크게 욕먹지 않고 폐 끼치지 않고 지루하고 평탄하게 대과大過없이 연착륙할 수만 있어도 복 받은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창밖에 봄꽃이 흐드러지고 산책길 언저리마다 초록이 성큼 걸어 나와 있다. 새소리도 한결 맑고 높다. 꽃들이 순서를 잃지 않고 피는 일, 새들이 제 목소리로 울어주는 일, 많이 아프지도 고프지도 않고 그런 것들을 공으로 누릴 수 있는 일까지, 생각하면 세상에 기적 아닌 게 없다. 스키장에서 넘어져 일생 휠체어를 타는 이웃도 있고, 튀김 기름이 동자瞳子에 튀어 실명할 뻔한 선배도 있는데 깨어진 유리 파편이 눈자위에 튕겨 들지도, 발바닥을 해코지하지도 않았으니 이 또한 기적 같은 다행 아닌가. 사전적 개념적 추상어들을 구체적 감각적으로 체득시키는 시간이라는 이름의 과외 선생이 오늘도 시큰둥하게 오답 노트를 내민다. 죽은 자가 일어나고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게 기적이 아니라 별 탈 없이 지나가는 매일 매 순간이 기적 아니냐고, 다행多幸이란 불행의 최소치가 아니라 행운의 최대치라는 사실을 일생 복습해도 모르겠냐고.

 당연한 일들에 경배하고 무사한 날들에 안도하며 더러는 수굿하게 비켜 앉아서 앉은자리를 돌아봐도 괜찮을 나이, 그래 이젠 그래도 될, 그래야 할 나이다. 중력 앞에 겸허해진 익은 열매처럼 은밀하게 낙법落琺을 익혀 갈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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