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수필

[스크랩] [제12회 부천신인문학상 수필 당선작] 거리 / 최선자

희라킴 2015. 12. 14. 16:55

[제12회 부천신인문학상 수필 당선작]


거리


                                                                                                                                   최선자


 복숭아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며칠 후 꺼내보니 서로 살이 맞닿은 부분은 썩어가고 있다. 서로를 너무 깊이 알아버린 탓일까. 아니면 살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모른 탓일까. 복숭아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나 보다. 짓무른 상처에서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복숭아를 보면서 거리를 생각해 본다.

 

 나는 예순이 코앞인 나이에도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지 못한다. 아직도 설익은 눈으로 한 올의 의심도 할 줄 모른다. 그 덕에 가끔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실망하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 엉뚱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때마다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여전히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설마, 하는 믿음이 변하지 않을뿐더러 바닥이 빤히 보이는 내 사유로는 상대와 유지해야 하는 거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거리는 살을 맞대고 썩어가는 복숭아의 거리였다. 적당한 거리는 모른 채 틈새도 허용하지 않았다. 남편이니까 매사 당연히 알고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전제를 달고 나면 야속했다. 그러다 보니 상처는 늘 아물 틈이 없었다. 역지사지로 생각하지 못한 내 이기심이기도 했다.

 

 항상 내 곁에 있으면서도 멀리 있었던 사람, 나는 남편이 먼 길을 떠날 때까지 속속들이 알지 못했다. 남편도 애증에 시달리다 갔으니 나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삼십오 년을 살고도 서로를 다 알지 못했으니 우리 부부의 사랑이 부족한 탓이었으리라. 대가는 혹독했다. 복숭아의 과즙처럼 서로의 상처에서 뚝뚝 떨어지는 진물을 닦아낼 새도 없이 이별을 맞았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가슴을 난도질했다. 한동안 들판의 억새가 돼 흔들리며 바람따라 떠돌았다. 내 아픔을 안다는 듯 가을도 발자국마다 더 붉은 피를 토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세월이 약이라고, 자야 한다고, 먹어야 한다고,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번뇌에 사로잡혀 나중에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눈빛만 봐도 안다는 사랑을 역설적이게도 그의 사후에야 보고 있었다.

 

 나는 복숭아의 살처럼 주저앉아버렸다. 다행히 내 곁에는 죽비 아닌 죽비를 든 세 자식이 있었다. 아이들은 나의 마음을 죽비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모든 일상을 엄마 위주로 바꾸려고 애를 썼다. 아빠와의 이별에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내색하지 않았다.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함께 여행을 가주고,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보살펴주고 마음을 써 주었다. 어느 날 죽비에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들이 가장 힘들었을 때 감싸주지 못하고 내가 짐이 됐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했다. 아이들의 정성에 다시 일어섰다.

 

 그때 내 사고의 거리를 실감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히려 엄마와 아이들이 역할이 뒤바뀐 꼴이었다.아이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하고 슬픔의 골에서 허우적거리고만 있었다. 언제나 어리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어느새 사려 깊은 성인들로 자라있었다. 악처가 효자보다 낫다.고 했으니 남편과의 거리가 나보다 더 멀었을 수 있다. 하지만 적당한 거리가 있었으니 복숭아처럼 썩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빠와의 이별은 아이들에게도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한 획일 것이다.

 

 가족들과의 거리를 따진다면 남편과 자식 중 누가 더 근거리에 있을까. 나는 예전에는 분신이니 자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달라졌다. 자식들에게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와 한 칸짜리 방을 구하는 노인들을 직업 탓에 종종 만난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노후준비를 못 한 노인들이 끼어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현실을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노인들은 늙으면 당연히 자식이 부양해 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퍼준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외손녀가 다가와 허리를 껴안는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해서 신바람이 났다. "할머니 있잖아, 오늘 선생님은... 내 친구 강주는... 수영이 생일 선물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죄다 말해준다. 별들이 사는 손녀의 눈에는 세상이 온통 틈새 없는 거리다. 나는 이야기 속에 빠져 잠깐 천국에 다녀온다. 손녀와의 거리에는 바람도 지나가지 못한다.

 

 우정의 거리에 가끔 가슴이 뭉클할 때가 있다. 나는 삶에 쫓기다 보니 친구들과의 교류도 원만하게 못 했다. 그런데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아주 가까이 다가와 준 친구들이 있다. 지면에 실린 내 글을 보고 많이 울었다는 친구는 내가 어려서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것을 두고 어느 날 나보다 더 서러워했다. 작년 연말이었다. 새해 인사 문자를 보내면서 한 친구가 느닷없이 통장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 다리를 다쳐서 한동안 가게에 못 나가고 있었더니 걱정됐다며 백만 원을 보내왔다. 딸이 엄마도 여유가 있다면 친구처럼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어서 솔직히 못 한다고 대답하고 부끄러웠다.

 

 가도 가도 아득한 막막했던 거리, 내가 가야 할 거리도 사람 사이의 거리도 가늠하지 못하다 보니 뒤돌아보면 회한으로 얼룩진 삶이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틈새가 전혀 없는 거리는 상처뿐이었다. 흉터는 몸 안에 옹이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다시 복숭아를 본다. 물러진 살 아래 차돌 같은 씨앗에서 싹이 돋아난다. 연분홍 복사꽃이 활짝 피어난다.

 

 


<심사평>

 

진실한 탐구와 문학적 상상력

 

 2015년 제12회 부천신인문학상 수필 부문엔 35명의 투고자에 총 67편의 작품이 들어왔다. 심사를 하면서 응모작 대부분이 수필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썼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필을 지나온 이야기나 생각하고 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작품이 제법 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문학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수필이 체험에서 얻은 이야기를 통해 교시적 메시지 전달이 있어야 하고, 체험에서 문학적 상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폭설>은 집안간의 사랑을 잔잔하게 잘 그렸고, <장롱을 부탁해>는 전통 장롱을 통해 어머니의 정과 사랑 그리고 인연에 대한 아련함과 사라져가는 장롱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썼다.

 

 <승강기>에서는 엘리베이터라는 일상 소재를 통해 인간의 폐쇄성과 개방성, 자아와 사회의 변화와 성장이라는 화두를 잘 교직해 놓은 수작으로, 글에 대한 태도와 탄탄하고 위트 있는 문장력이 돋보인다.<굳은 살>은 공황장애를 앓는 화자가 삶과 관계를 묻는 진지한 일기체 수필이다. 해격되지 않는 인간관계의 문제를 아버지라는 매개를 통해 진정성 있게 접근함으로써 불안조차도 사랑하고 아끼며 굳은 살이 박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주는 울림이 크다. <이름>은 청소부를 미화원이라 달리 부른다고 본질이 달라지는 것이 아님을 본인의 체험을 통해 현장의 경험이 잘 묻어나 있으며, 주장하는 바를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있는 핍진한 작품이다.

 

 <거리>는 맞닿은 복숭아를 비유해 남편이나 가족간 또는 친구간의 거리를 교시적으로 잘 표현했다. 주제 돌출이나 작품성에서도 우수한 작품이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동일한 분의 작품 <기억의 창을 열다>또한 어린 시절 체험 속에 사람과 풍경과 사건이 잘 어우러진 수작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흉>은 성적과 돈과 미모와 체력으로 서열을 매기는 이 시대에 상처의 공유와 참다운 위로가 무엇인지를 날카롭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조건적인 타인의 상처가 아닌 상처가 아물고 난 후의 흉터자국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이 작품의 주제가 본인의 학창시절과 사회 체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진실은 반드시 꽃봉오리처럼 꾸민 미문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자신의 체험에 너무 빠져서 객관성을 잃거나, 주장이 지나쳐 주체의 체험이 헐해지는 것을 경계하였다.

 

 동일한 투고자의 작품인 <대한민국에서 예쁘지 않는 여자로 살아가기>또한 '예쁘지 않아 보이는' 자신의 부정적 체험을 유머러스하게 서술한 수작으로 작가로서의 가는성이 높아 보이는 작품이다.

 

 <오 다리> <나는 그(글)을 사랑한다> <빵을 대하는 자세> <잠방> 등의 작품들도 각기 자기 성찰, 글에 대한 절실함과 당당함, 빼어난 관찰력과 묘사력, 탄탄한 서사적 구성 등에 있어서 장점을 보였다.

 

 '붓가는대로 쓰는' 수필을 감상적인 잡문으로 인식하는 통념과 고정관념 속에서는 본인이나 이웃들이 경험하는 생활현장의 이야기나 르뽀적인 성격의 글이 나오기 힘들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글을 제한된 상자 속에 집어넣어서는 글 쓰는 자를 성장시키고 해방케 하는 과정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생활 글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호사 취미를 중심주제로 삼아 미문에 집착하는 한 타자와 공유하는 울림을 주는 글을 낳기 힘들다.

 

 이 지면을 빌어 당부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쓰는 글들이 자신과 이웃과 이 시대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반추하고 뒤집어서 생각하면서, 글을 통해 나와 세상을 재구성하고 창조해 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점에서, 당선작으로 뽑히건 안 뽑히건 <지화자 소통이 있어 행복한 송내동을 꿈꾸며>나 <독 딸기> <자궁을 빌려줍니다> 등의 글들은 지역신문이나 인터넷 혹은 신문 지상에 실려도 마땅하고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좋은 칼럼이라고 확신한다. 나를 더 살맛나게 하고, 이 세상을 보다 살맛나게 하는 분투와 성찰로서의 좋은 수필이 생산되기를 바라며 건필을 빕니다.

 

심사위원 김해자 (시인, 산문작가), 이예지 수필가, 경기도문인협회 회장)

 

 

<당선 소감>

 

분꽃 씨앗이 여름 장마철에야 늦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파종 경험이 없어서 너무 깊게 심은 탓이었지요.

싹이 자라서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종종 걸음을 치던 분꽃나무는 뒤돌아서는 여름의 옷자락을 잡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채송화의 키를 벗어난 채였지요.

무서리가 흠뻑 내린 중년의 끝자락에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갈 길이 바빠진 탓인지 다행히 분꽃나무를 닮아 갑니다.

살금살금 울타리 곁에 다가가도 고추잠자리는 어느새 쪽빛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단발머리 소녀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지요.

이제야 고추잠자리를 잡은 기분입니다.

꽃을 피우기까지 햇살과 바람, 비가 되어준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담금질 하시며 저를 다듬고 계셨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소질을 발견하시고 문학의 길을 열어주신 정진명 선생님 감사합니다.

배준석 선생님, 정목일 교수님 감사합니다.

기회를 주신 부천시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알고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를 일으켜 세워준 두 딸과 사위,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축하를 아끼지 않은 주위의 모든 분들도 감사합니다.

 

 

출처 : 『제12회 부천신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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