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당선 수필

[스크랩] 2010,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모음

희라킴 2016. 4. 20. 11:55

 

  2010,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모음



  <매일신문>



 흉터   / 최윤정


  눈보라가 치는 밤이었다. 머리에 버짐이 번져 머리카락이 숭덩숭덩 빠지는 걸 보다 못한 어머니가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오던 길이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들르는 마을버스는 일찍 끊겨 버렸고, 눈보라를 맞으며 한 시간은 족히 걸어가야 집에 갈 수가 있었다. “춥제?”하고 자꾸만 물어보시던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도 못하고 눈보라와 씨름하던 그때, 내 나이 아홉 살이었다.


  걸음을 걷는 다리조차 감각을 느끼지 못할 만큼 온몸이 꽁꽁 얼어 집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지 집이 깜깜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찬 바람이 확 덮쳐왔다. 아버지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더듬거리며 불을 켜자 아무것도 없는 빈 방이 눈에 들어왔다. 멍하니 방안에 서있으려니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어왔다. 나는 어떡하느냐고 자꾸만 어머니의 바짓자락을 잡아 흔들었다. 목석이 된 듯 말이 없던 어머니는 황량한 방만큼이나 공허해 보였다.


  겨울밤 같은 날들이 지나갔다. 어둡고 매섭고 살을 에는 하루하루를 견뎠다. 고름이 나던 머리를 어찌하지 못해 아버지가 쓰던 면도기로 집에서 머리를 밀었다. 염증이 번질까봐 소금을 뿌리는 것이 어머니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치료였다. 몇 년 후 내 머리에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 뒤로 사람들의 앞에 서면 누군가가 내 머리의 흉터를 볼까봐 신경이 쓰였다. 움푹하게 파인 흉터는 나를 항상 구석진 자리로 몰았다. 습관적으로 흉터를 머리카락으로 덮는 버릇도 생겼다.


  어머니는 가끔씩 이름 모를 연고들을 사오곤 했다. 잠든 척하던 내 머리맡에 앉아 말없이 연고를 발라주셨다. 그런다고 머리카락이 다시 나지도, 함몰된 두피가 솟아오르지도 않을 터인데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쓴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정말 약효가 있어 머리카락이 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약을 발라주시던 어머니는 종종 나를 꼭 안아주기도 했는데 그런 밤이면 어머니보다 먼저 잠들지 못했다. 민둥산처럼 휑한 어머니의 삶이 나를 밤새 불안하게 했다.


  중, 고생 시절 단발로 자른 내 머리카락은 움직일 때마다 저절로 가르마가 타져 오백 원짜리 동전만한 흉터 두 개가 드러났다. 친구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내보인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흉터처럼 부모님은 내게 가려야만 하는 존재였다. 돌아온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도, 너무 쉽게 아버지를 용서하는 어머니를 이해하는 것도 힘들었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들려주신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먼 나라의 전설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10살을 갓 넘긴 아버지를 두고 떠나버렸다는 할아버지는 오래되지 않은 흉터처럼 툭 불거져 밤마다 나를 간질여댔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난 다음부터 어머니는 이상한 연고들을 더 이상 사오지 않았다. 아예 잊으신 듯, 내 머리의 흉터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신다. 마음속에서 그 일을 사위에게 넘기신 건지 아니면 이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시는 건지는 모르겠다. 오래 전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온 내게 아버지가 내밀던 발모제를 나는 오랫동안 가방에 넣고 다녔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머리카락을 길러 묶으면 된다고 말했지만 가끔씩 나는 일부러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연고를 바르곤 했다. 내 머리를 낫고자 함보다는 아버지의 마음속 상처에 연고를 발라드리고 싶었다. 끝까지 돌아오지 않은 할아버지가 아직도 아버지의 가슴 속에서 생채기를 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등 뒤에서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와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웃어 보였다.


  나는 이제 내 머리의 흉터가 부끄럽지도 않고 일부러 가리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흉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내게 존재했던 것처럼 그것은 내가 나임을 말해주는 표식이 되기도 한다.


  흉터는 잊지 못할 이야기 하나가 오롯이 남아있는 자국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연히 다른 사람의 흉터를 보게 될 때면 거기에 담긴 사연을 상상하게 된다. 상처의 크기만큼 마음에도 피가 나고 진물이 난다. 딱지가 앉아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아픈 기억들은 스멀스멀 기어 나와 흉터를 간질인다. 그 흉터가 자기 몸의 일부로 완전히 스며들 때까지 순탄치만은 않았을 그 사람의 지난날들을 생각한다. 사연의 반흔이 깊고 클수록 애잔해져 나도 모르게 손으로 쓰다듬어 주고 싶기도 한다. 저 흉터가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누군가 다른 사람도 내 흉터가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줄 것만 같다.


  유난히 추운 겨울밤에는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온다. 당신의 마음이 시려서, 내 마음도 시릴까 봐 전화를 하신다. 통화할 때마다, 아버지 마음에 난 흉터의 크기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항상 고민스럽다. 오늘 밤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온다면 내가 가진 흉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들 그런 표식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산다고 말하고 싶다. 이젠, 아버지의 완전히 아문 상처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한번 들어보고 싶다. 어릴 적 외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듣던 옛날 이야기처럼 늘 외롭던 내 마음을 달래줄 것 같다. 스르르 잠든 내 머리를 따뜻한 손으로 쓰다듬어 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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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


 426편의 응모작 중에서 이정순의 ‘보름새’, 정경진의 ‘찻잔 앞에서’, 이문수의 ‘어느 잡부의 자동차’, 최윤정의 ‘흉터’, 4편을 최종심에 올렸다.


  제 목소리, 빛깔, 향기를 지녔는가. 소재가 자신의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가. 청신한 자신의 존재 확인과 인생을 발견하는 과정을 어떻게 드러내었는가. 문장, 구성, 문학성은 어떠한가를 살폈다. 최윤정의 ‘흉터’가 가장 근접했다.


‘흉터’는 정황 묘사가 뛰어나다. 화자의 심상과 장면들을 눈에 보이듯 그려냈다. 또한 단락들의 연결고리가 탄탄하여 줄거리의 전개가 명료하다. 흉터라는 소재가 전체를 관통하며 주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흉터를 인식하면서 ‘나’ 의 흉터는 치유되고 화해가 이루어진다. 더 나아가 ‘다들 그런 표식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산’ 다에서 개인의 아픔은 인간의 보편적 상처로 의미가 확장된다. 이것이 인생의 발견이다.


 ‘보름새’는 상당한 필력이 느껴지는 역작이다. ‘찻잔 앞에서’는 문학적 향기가 짙고, ‘어느 잡부의 자동차’는 울림이 크다. 맞춤형 가구처럼 너무 잘 짜인 작품은 참신함이 덜하다. 중첩된 서술, 복잡한 구조는 경계해야 한다. 동일 혹은 비슷한 작품을 공모전마다 출품하는 일도 생각해 볼일이다. 응모하신 모든 분들의 정진을 빈다.


 첫발을 내디뎠다. 천천히 걸어가기를 당부한다. 진정성을 잃지 않는 작가 정신이 맨 앞인 까닭이다. 역량 있는 수필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당선을 축하드린다.


  -  정목일(수필가) 허창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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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구석  /  허효남



  아이와 숨바꼭질을 한다. 술래인 엄마를 뒤로하며 녀석이 은신처를 찾아 나선다. 이 방 저 방 네모난 미로 사이를 달려가다 드디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고양이마냥 살금살금 녀석의 꼬리를 밟아간다. 도대체 못 찾겠다고 엄살을 부리며 아들의 비밀 장소로 다가선다. 내 발소리가 가까워오자 녀석은 까르르르 웃음을 연발하면서 제가 먼저 장롱에서 뛰쳐나온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깔 숨이 넘어가도록 웃다가는 저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발끝에 4분 음표를 달고 팔랑거리며 앞서가는 아이를 다시 뒤쫓는다. 이번에는 소파와 벽 사이에 난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아이는 평소에도 구석을 참 좋아했다. 택배 박스의 작은 배를 타고 해외 유람을 하고, 장난감 바구니를 엎어 자동차를 만들고는 전국 일주를 즐긴다. 그림책을 병풍처럼 세워 아늑한 자신만의 집을 만드는가 하면, 빨랫바구니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강아지 흉내 내기도 즐긴다. 열 달 동안 태 안에서 느끼던 작고 좁은 구석이 주는 아늑함 때문인지, 아니면 제 어미의 구석 사랑을 물려받은 유전적 습성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사실 나도 아들만큼이나 구석을 즐기는 편이다. 아니, 즐긴다기보다는 구석에 길들여져 이제는 구석을 내 운명인 양 받아들이고 산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나는 아들처럼 뛰어놀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수줍음이 많아 혼자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며 조용히 놀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어디에서든 자연히 눈에 띄지 않아,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쩌다 동창생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면 지금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게다가 뭐 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게 없다 보니 언제나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굳이 숨바꼭질을 즐기지 않아도 나는 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안전하게 숨어 있었다. 누군가의 인생에 잠시 스쳐가는 그림자였고,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는 관현악단 단원의 한 명에 불과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귀퉁이의 삶에 불평을 품어 보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내 운명이라 여겼다. 네모나고 각진 모서리에 닻을 내리고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며 조용히 지내는 것이 내 팔자려니 하면서 말이다.


  이런 구석 습관이 몸에 익어서인지 어딜 가나 나는 구석부터 찾는 버릇이 생겼다.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할 때도 늘 외진 곳에 자리를 잡고, 지하철을 타면 항상 출입구 쪽의 끝자리부터 눈길이 간다. 어느 모임에서건 앞서서 감투 쓰기를 꺼리고, 그냥 머리수나 채워주는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한다.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나가도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보다는 조금 외지고 한적한 곳을 찾는다. 가운데 자리의 수선스러움을 피하고 싶고, 구석이 주는 익숙함이 편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공원에서 아이와 숨바꼭질을 하다가 불현듯 또 다른 구석에 있는 나를 만났다. 헌책과 곡식들, 자질구레한 잡동사니가 가득한 다락방에 어린 내가 있다. 심심하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 늘 그곳에 들어가서 나는 혼자놀이를 즐겼다. 고모와 삼촌들이 보던 낡은 책을 보다가 심심하면 엎드리고 앉아 다락방에 난 작은 창을 통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들은 나를 볼 수 없지만 나는 세상을 훤히 볼 수 있었다. 비록 중심은 아니었지만 먼발치에 서서 전체적인 윤곽과 구도를 훑어 내리며, 구석자리였기에 가장 정확히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창밖을 내려다보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연극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구마당에는 고무줄놀이를 하는 친구들이 있고, 한창 힘겨루기를 벌이다 골목길 뒤로 퇴장하는 형과 동생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점차 무대가 어두워지면 해거름에 논둑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매일 똑같이 전개되는 일상의 연극에는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었다. 비중이 크든 작든 정해진 분량만큼의 대본으로 연기했고, 아무도 불평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다락방의 나를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구석자리의 나는 작은 풍경 하나 하나를 무심히 흘려버릴 수 없었다. 암표를 구해 다락방에서 훔쳐보는 삶의 연극이기에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유유상종이라고나 할까. 본연의 내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 혹은 애처로움과 동정의 심정 때문이었을까. 언제나 구석진 자리에 있을 때가 많았던 내가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도 어쩌면 구석 팔자의 운명 때문인지도 모른다. 크고 화려하게 빛나서 무대의 중심에 서기보다는 단역이나 조연으로 제 몫을 해내는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스스로를 연마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들꽃들이 모여 숲을 이루며, 그들이 없으면 온전한 숲과 들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늘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아니, 그것은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이다. 또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자 구석 인생에 대해 스스로가 거는 최면이기도 하다.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이 존재하기에 세상은 모서리와 모서리가 맞닿으며 나름의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닐까. 누구나 세상의 한가운데에 서고 싶어 하며, 뒷전으로 물러나 있는 것들보다는 항상 눈에 보이는 앞자리를 원한다. 구석구석의 작은 것들이 모여 세상의 큰 틀을 이루며, 때로는 외지고 후미진 구석이 세상을 그려내는 꼭짓점이 된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찬란하게 빛날 누군가의 삶을 위해 구석의 주춧돌이 필요하다면 나는 그 구석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구석에서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갈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구석을 사랑하며 인생을 꾸며 갈 것이다.


  아들 녀석이 다시 숨바꼭질을 하자고 손을 잡아 이끈다. 얼마나 구석이 좋았으면 양수가 터지고도 하루가 지나도록 나오지 않아 수술로 겨우 세상 구경을 한 아이다. 어느 구석을 그리도 찾아 헤매는지 모르겠다. 나도 따라 나선다, 숨바꼭질 같은 인생에서 내가 정착할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서.


  *



   <심사평>


  이번 신춘 문예에는 젊은이들보다는 나이가 든 응모자들이 많았다. 그들의 삶이 녹아든 내용 또한 담담하면서도 교훈적이며, 젊은이 못지않은 ‘문학에의 열정’이 담겨 있었다. 많은 응모자들이 나이를 잊어가며 밤잠을 설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수필은 남녀노소 모두를 관통하는 국민문학 내지는 시민문학의 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평생교육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대학중심의 문학 강좌의 영향 때문인지 글쓰기의 수준이나 소재를 다루는 솜씨가 기성작가의 그것을 능가하는 수준작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문학을 지도해준 선생들의 첨삭(添削)이 이루어진 것들이 아닌가 의심이 가기도 한다. 신춘문예 심사자로서 당혹스런 대목이 여기에 있다. 모작(模作)이나 대리작(代理作)을 걸러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송구영신의 아쉬움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시기에는 우려와 불신보다는 믿음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다음의 다섯 편을 골랐다. 김정남의<골목풍경>, 권윤홍의 <길>, 배단영의 <못>, 전옥선의 <무좀>, 허효남의 <구석> 등이다. 아쉬운 작품들이 몇 편 더 있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각 작품들은 일상의 흔한 소재들을 가지고 ‘가볍지 않은 삶의 통찰’이나 ‘과거의 추억/기억들’을 결합하여 수필의 묘미를 음미하게 해준 수준작들이다. 이 작품들 중에서 허효남의 <구석>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허효남의 <구석>은 ‘술래인 엄마를 뒤로하며 은신처를 찾아나서는 아이와의 숨바꼭질’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유난히 구석을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자기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나/엄마의 직업선택도 그러한 자신의 성향과 관련된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구석, 혹은 모퉁이’라는 소재를 통해 세상을 깊이 있게 성찰하며 구석진 그곳을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읽어내는 솜씨는 일품이다.


  누구나 세상 한가운데에 서고 싶고, 뒷전에 밀려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이 존재하기에 모서리와 모서리가 맞닿으며 세상이 나름의 모양을 만들어 간다. 우리는 외지고 후미진 구석이 세상의 꼭지점이 된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그러나 찬란하게 빛날 누군가의 삶을 위해 구석의 주춧돌이 되려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하면서 남은 인생을 꾸려나가려는 응모자의 인생관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당선을 축하하며 좋은 수필로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혀주는 문학인으로 성장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  전정구 (전북대 교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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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일보 >



  누드   /   문솔아


 

  모두들 옷을 벗고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걸 부끄러워하긴 커녕 깔깔대며 웃는 소리까지 들린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내연산 수목원, 화단에 핀 야생초들이 모두 누드다. 구절초, 꿩의비름, 물옥잠들이 나체로 피어 저마다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꽃들뿐만이 아니다. 울타리처럼 둘러선 물푸레나무, 서어나무, 오동나무들도 모두 나체다. 수목원 연못으로 흘러드는 시냇물 소리도, 화단가에 잠든 고양이털을 슬쩍 만지고 가는 바람도 누드다. 지금 막 덤불 위로 날아오르는 새들이며 백양나무 꼭대기 위로 흘러가는 솜털구름, 이 모든 것들이 누드다. 지금 이곳에서 누드가 아닌 것은 나뿐이다.


  한때 누드열풍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누드화장품, 누드폰, 누드속옷. 너나없이 누드를 표방하며 상품화했다. 누드가 풍기는 약간의 에로티시즘과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이 상품구매 욕구를 야기시킨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누드에 열광했으며 다투어 누드상품을 구매했다. 그건 어쩌면 문명화된 현대인들이 문명 이전의 원시를 그리워하는 마음의 발로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리가 분명해져 어떤 것에도 혹함이 없어야 한다는 불혹지년(不惑之年)을 몇 해 전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욕망과 허영의 덩어리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인들의 모임에 갔다 온 날에는 끊임없이 마음에 물결이 일기 일쑤이다. 오래간만에 만난 반가움보다는 건네받은 명함의 지위에 따라 품격이 달라지는 것 같아 자리가 불편하다. 걸치고 있는 보석, 들고 있는 가방이나 입고 있는 옷에 따라 묘한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살고 있는 거주지와 집의 크기, 타고 온 차의 종류에 따른 생활상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씁쓸해진다. 출발은 똑같이 했건만 이미 속한 세계도, 생활상도, 성취의 결과도 확연히 달라진 친구들을 보며 인생의 성패에 대한 성급한 판단과 그로인한 열패감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너무 많은 옷을 입고 있다. 하나도 모자라 여러 겹의 옷을 덧입고 있다. 어디 옷들뿐이겠는가. 몸을 치장하고 있는 장신구며, 학벌, 명예, 권력, 아이와 남편에 대한 욕심까지. 나는 너무 두꺼운 가식과 위선의 옷으로 나를 휘감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내가 슬며시 부끄러워진다.


  존클리어의 걸작인 '레이디 고디바'는 고디바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하얀 말을 타고 가는 그림이다. 고디바의 남편 레오프릭은 11세기 중엽 영국의 백작으로서 지방 영주였다. 당시 그는 농노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매기기로 악명이 높았다. 꽃다운 열여섯 살의 고디바는 남편의 세금정책을 과감히 비판하고 세금을 낮추어달고 요구했다. 백작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면 세금 감면을 고려하겠다.'라고 빈정댔다. 그녀는 정말 그렇게 했다. 주민들은 그날 창문과 커튼을 닫고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애벌레의 몸을 벗지 않으면 나비는 자신을 완성하지 못한다. 뱀은 일생동안 여러 차례 허물을 벗는다고 한다. 누드는 이처럼 제 자신을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어서 본래의 자연 상태인 자신을 회복하는 일이다. 법정스님은 무소유의 철학을 이야기했다. 무소유란 모든 번뇌와 욕심으로부터 자신을 덜어내는 일이다. 무위자연의 도(道)를 설파한 노자도,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루소도 결국은 누드에 닿아있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나는 요즘 벗는 연습을 자주 해본다. 손톱의 매니큐어를 벗겨낸다든지, 집안의 잡다한 장식품을 떼어내고 빈 공간을 많이 만든다든지, 살림살이를 조금씩 줄이는 일이 그것들이다. 그건 일견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겠지만 작은 것들을 비워내야만 큰 것들도 비워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성적을 위하여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학원으로 내모는 일이며, 더 높은 지위를 위하여 남편을 다그치는 것들도 요즘은 조금씩 자제를 한다. 그러다 문득 비워낸 공간에 다른 것들이 들어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빈 벽으로 빗살무늬처럼 비쳐드는 햇살이며, 출렁이며 창을 넘어 오는 노을이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남편의 사랑이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것이었다.


  김미루는 누드사진작가이다. 폐쇄된 기차역, 버려진 건물, 지하철, 터널 같은 도시의 폐허 속에서 자신의 누드를 직접 촬영한 작품들로 개인전을 열었다. 그녀는 문명의 더께를 벗고 벌거벗음으로써 오히려 자유로웠고,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동양화에선 여백을 중요시한다. 화폭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때문이리라. 수묵화법도 먹의 농도를 풀어 풍경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사물의 본래 모습을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 누드열풍이 사라진 것이 개인적으론 무척 아쉽다. 누드열풍을 조금 더 연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누드학교, 누드국회, 누드정상회담. 이처럼 갈등과 분쟁이 있는 곳에 누드를 놓으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개인과 개인, 나라와 나라, 종교와 종교 간의 거리가 훨씬 줄어들 것이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평화와 화해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환경운동가들이 모피반대 시위를 벌였다. 거리에서 전라(全裸)의 몸으로 시위를 하는 데모대의 모습을 본다. 인간의 벗은 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가 이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거리로 나서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스스로 높은 지위에서 내려온 고디바처럼 이들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지구보호라는 큰 이익을 위해 옷을 벗은 것이다.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저만치 수목원을 뛰어다닌다. 꾸미지 않은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이야말로 누드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내게 꽃들과 나무와 바람이 손을 내민다. 나는 하나 둘 옷을 벗는다. 어느새 나도 누드가 되어 있었다. 어느 시인은 민둥산에서 옷을 벗고 구름의 자식들을 낳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지금 수목원에서 옷을 벗고 꽃의 자식들을 낳는다. 나무와 바람의 자식들을 낳는다. 훌쩍 커버린 꽃과 나무와 바람들이 내 젖꼭지를 빤다. 어느덧 나는 꽃이 되어 있었다. 나무와 바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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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   전일환, 김용옥


  문솔아의 <누드>를 심사위원의 의견일치로 당선작으로 뽑았다. 축하한다.

  <누드>는 수필문학의 조건과 장점을 두루 갖췄다.


  수필은 지성과 교양과 사유의 글일 때 읽을 맛이 난다. 회화적인 제목과 자연이라는 흔해터진 소재와의 신선한 연결, 현실성을 끌어들이는 삶의 현장성과 문장의 함축미가 당선에 도움이 되었다.


  야생초목을 누드로 인식하는 건 일종의 독창성이다. 예술은 결국 언어인지에 의해 생산되고 이해되는데, 주로 미술용어로 쓰이는 누드라는 단어를 문학적으로 해석한 점이 독특하다. 게다가 정서를 말살시키며 문명의 신에 사로잡혀 생활이 풍족해진 현대인의 속성에 대하여 회의하는 과정이 철학적이다. 간접경험 곧 학(學)으로 타 예술과 소통하는 방법과, 자연 속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연결도 편안하고 부드럽다. 기승전결의 기본 작법과 구성도 매끄럽다. 한 가지 더. 문학성의 최대장점인 상상을 통해 누드아파트, 누드학교, 누드정상회담이란 어휘를 끌어낸 점이 미학적이다. 같이 보내온 <붉새>도 고른 수준이다.


  총 응모 460편 중에서 본심에 올라온 15명 45편에 전북의 응모작이 없어 서운했다. 전북일보의 신춘문예가 전국의 수필가 지망생의 관심을 끌고 있어 대단히 기쁘긴 하지만 문도(文道) 또는 문향(文鄕)이라는 전북의 수준작이 한 편도 본심에 오르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수필은 경험문학이라는 단견 때문인가. 대부분의 작품이 자기경험 곧 소재를 이야기하는 데 그치고 인식과 사유를 통해 인식하는 체험으로 승화시키는 문학성이 적다. 이야기꾼은 많으나 문학적 미학을 드러내질 못했다. 최아란의 <이음>, 이정순의 <인생소묘>가 최종심에서 탈락한 이유다.


  아깝게 밀쳐놓은, 정진규의 <생 날 것 그대로의 진실>은 내려놓기 아까웠다. 개인잡기 같은 글들 속에서 심리적이고 분석적인, 수필의 다양성에서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수필은 사색적이나 대중적인 지성의 이미지가 강한 글이다. 일반적이고 대중적이어야 하는 신문의 신춘문예가 아니라면 기꺼이 선했을 것이다. 정진규씨가 정진하여,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중수필로 인정받는 수필가로 만나게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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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지저깨비   /   조현태


  웅장한 조각품 앞에서 입이 딱 벌어졌다. 간단하게 구경만 하기는 너무 미안한 작품들이었다. 책 속에서 흑백사진으로 보던 얼굴을 화강석 조각품으로 마주하니 더 그러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작품 중에 훌륭한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큰바위얼굴 조각공원은 국내외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얼굴전시장이었다. 그토록 흠잡을 데 없는 인물로 남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다듬었으며, 잡다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버렸을까 싶었다.


  내게는 석수장이 친구가 있다. 그 엄청난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친구가 조각하던 현장에서 보았던 일이 떠올랐다. 채석장에서 나온 원석이 작게는 몇 톤, 크게는 수백 톤이나 되는 것도 있다고 했다. 원석에다 쪼개고 싶은 부분에 먹줄을 놓고 정으로 작은 홈을 여러 군데 팠다. 그 홈에다 ‘야’라고 이름하는 쇳조각을 하나씩 끼워놓고 큰 해머로 차례차례 번갈아가면서 두들겼다. 신기하게도 집채만큼 큰 돌이 맥없이 쩍 갈라졌다.


  조각품을 다듬기에 알맞은 크기로 쪼개졌을 때 모서리와 면을 뜯어내고, 파내고 하여 전체적인 윤곽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더 세밀하게 다듬고, 갈고, 광택도 내고 해서 거의 실물에 가까운 형상을 갖추어갔다.


  석수장이가 돌로 조각하는 과정을 보면 쪼개고, 뜯어내고, 파내고, 갈고, 광내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바꿔 말하면 어떤 형태로든 뜯겨 나가기만 했지 덧대거나 붙이는 일은 없었다. 정과 망치로 모양을 잡아가는 작업은 대단히 많은 날 동안 계속되었다. 서두르지도 않았고, 실수하여 재 작업하는 경우도 없었다. 어느 부분을 어떻게 쪼아내고 갈아야 할지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행하는 것이 곧 조각하는 과정이었다.


  완성된 조각 작품 주변에는 크고 작은 돌 부스러기와 가루가 너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이 모든 부스러기들을 일본식 명칭으로 ‘곱바’라고 했다. 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들었으나 이제 다시 생각난 이 외래어가 무슨 뜻인지 알고 싶었다. 비슷한 의미의 우리말을 찾아냈다. 지저깨비. 그것은 조각품을 이루는데 전혀 쓸모없는 부분을 뜯어내 놓은 허섭스레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네 인생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올바른 모습을 갖추어가는 것이 아닐까. 한 삶을 결정지을 분야가 설정되기에는 거대한 꿈으로 획을 긋고 그 선을 따라 생의 갈래를 정한다. 획에서 빗나가지 않게 열과 성을 다하여 꿈의 테두리를 만들고 미리 그려둔 투시도에 맞춰 열심히 인생을 조각한다. 생채기가 나고 헐어진 자국에 크나큰 충격도 받아가며 한사람의 바탕이 마련될 것이다.


  삶을 다듬기 위하여 쪼아내고 갈아야 할 인생조각 작업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쓸모없는 부분을 뜯어내고 후벼 파는 일이다. 게다가 더 아름다운 모습이 되기 위해서 갈고 닦는 훈련은 물론이요, 필요에 따라서 반짝반짝 광택도 내야 한다. 방망이에 맞은 충격이 큰 공을 홈런볼이라 했던가. 이 모든 과정들은 결코 아픔이 없이는 불가능하리라.


  나도 아파하며 몹쓸 것을 떼어낸 경험이 있다. 언젠가 나를 찾아온 손님에게 불쑥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농기계를 가지고 와서 고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농기계 수리점에 와서 농기계를 고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왜 할까 싶었다. 나는 슬며시 화가 났다. 하찮은 기술로 수리하다 망가뜨리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투로 들렸던 것이다. 더 세밀히 말하자면 경운기 같은 소형 기계나 고치는 실력으로는 대형 트랙터나 콤바인 같은 기계를 재대로 정비하지 못하리라는 의구심이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그렇게 기술이 못미더우면 시내 믿을 만한 전문 정비업체로 갈 일이지 여긴 무어하러 왔느냐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손님에게 과민반응을 보이며 대드는 태도는 영업에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니 당장 고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가만히 되새겨 보았다. 솔직히 고칠 수 있느냐는 질문도 할 수 있고, 내 기술을 믿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뭐 그리 대단한 기술이라고 목을 곧추세웠는가.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빌 수밖에 없었다. 또 앞으로 이런 태도는 보이지 않겠노라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 화가 났을 때 아팠고, 부끄러우면서 아팠고, 빌면서 또 아팠다. 아파서 버리지 못했다면 조각되지 않은 생에서 오점으로 영원히 남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어쩌면 내가 지니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알량한 자존심을 떨쳐버리도록 손님이 나의 지저깨비에 정을 들이대고 과감한 망치질을 했는지도 모른다.


  불편하고 쓸모없는 부분일지라도 스스로는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나쁜 것은 자신에게 붙어 있지만 좋지 않은 것인 줄 모르는 점도 조각품과 견주어 볼 수 있다. 누군가가 판단하여 흉한 점이나 못된 습관을 지적하고 버리기를 강요하면 상처받아 아파하고 속상해하기 일쑤다. 하지만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허접한 모습을 버리지 않고서는 좋은 삶으로 평가받지 못할 것이다.


  나쁜 것을 얼마나 깨끗하게 버렸느냐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얼마나 남았느냐와 같다. 큰바위얼굴 조각공원에 있는 그 많은 인물도 지저깨비를 다 떨쳐버리지 않았는가. 작은 흠집까지도 찾아내어 빠짐없이 버리고 다듬어 올바른 면모를 갖춘 조각품들이 지금 여기저기에서 노려보고 있다. 지저깨비를 잔뜩 붙이고 있는 나를 향해 훌륭한 인물들이 무엇을 버렸는지 깨우쳐 보라는 눈짓이었다.


*


  <심사평>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156편의 수필 응모작품들이 대체로 높은 수준이었다. 경박하여 가는 이 세태에 그래도 이런 삶의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는 수필에 천착하는 이들이 많이 있음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간이역(대구·임만빈)’은 작품으로서 짜임새가 있고 수필의 품격도 갖추고 있어 가장 훌륭한 작품이다 싶었는데 그만 알고 보니 이미 수필집도 두 권이나 발간한 신경외과 의사 수필가로 이름이 나 있었다.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이 인기가 있어선지 전에도 대구에서 수필 강좌를 열고 있는 기성 수필가가 몇 번 참여한 적이 있었으나 신인을 발굴한다는 신인상의 뜻에 걸맞지 않아 당선작에서 제외시킨 적이 있어 이번에도 부득불 뺐다.


  ‘소금(남원·이순종)’은 저자가 중수필이라고 강조하듯 재미를 주는 경수필과는 다른 중후한 멋을 풍기며 소금에 대한 식견과 철학을 펼친다. ‘소금은 바다의 사리다’, ‘우리 민족이 소금의 문화라면 서양은 설탕의 문화다’라며 나름의 견해를 피력한다. 함께 보낸 ‘씨검사’, ‘비병’도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글로 글솜씨가 돋보였다.


  ‘풀무질과 담금질(청주·이창옥)’은 일상적인 평범한 삶에서 소재를 잘 소화하여 작품으로 만들었다. 남편의 부상과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는 인생살이에서 슬기로움을 발휘하며 사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대장간의 풀무질과 담금질을 인생사 시련과 결부시킨 점이 좋았다. 흠이라면 직설적이고 세련되지 않은 문장이 거슬리긴 하나 건강한 삶의 자세가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


  ‘지저깨비(경주·조현태)’는 돌 조각작품을 보고 군더더기를 깎아내리며 작품을 만드는 것과 인생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을 잘 대비하고 있다. 아픔을 견디고 잘못을 깨우치고 나쁜 점을 고치며 자신을 추스르며 훌륭한 인생을 지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삶을 다듬기 위하여 쪼아내고 갈아야 할 인생조각 작업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쓸모없는 부분을 뜯어내고 후벼 파는 일’이라며.


  위 세 작품 중 진지한 삶에 깊은 생각을 기울이며 건전한 삶에다 글을 이끌어 나가는 힘이 ‘지저깨비’에 있다고 보아 당선작으로 민다.


  ‘바람이고 싶어라’는 너무 유려한 문장에만 치중하여 알맹이가 좀 부족하고, ‘가마솥’도 좀 더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빛이 난다는 점에 유의했으면 한다.


 

 - 심사위원 : 조성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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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소금   /   김원순


 

  간수가 모조리 빠져나간 소금자루는 바위처럼 단단했다. 언젠가 세면장 바닥을 바르고 남은 시멘트 포대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던 것처럼. 국산 천일염 100%라고 쓰인 붉은 글씨가 없었더라면 그것이 소금자루인지 얼른 알아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오며가며 나는, 바윗덩이 같은 소금자루를 발로 툭툭 차거나 옆구리를 쿡쿡 쑤시곤 한다. 조금씩 부숴 놓아야지 배추나 생선을 절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틈 하나 없이 엉겨붙은 소금들이 은근히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세상이란 바닷물에 여태 부대끼며 살아왔지만 소금처럼 한데 엉겨서 살아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마 내 삶의 간수들이 나를 가둬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의 아픔을 보고도 외면하거나 건성으로 대했던 일이며, 남의 불행을 보면서 마냥 행복해 했던 일들이 모두 간수가 되었을 것이다. 무엇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나를 뒤돌아보기보다 남을 먼저 탓했으니, 내 삶의 간수는 얼마나 짜고 쓴 맛일까. 간수로 가득 찬 내 가슴은 텅빈 염전처럼 쓸쓸하기만 하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소금자루는 부른 배를 더욱 내밀고선 마음껏 장난을 쳐보라고 한다. 나의 짓궂은 장난에도 싫은 내색이 없는 소금자루를 보고 있으면, 무심코 던진 남편의 말 한마디에 곧잘 상처를 입던 내 모습이 떠올라 씁쓸해진다. 소금자루처럼 간수를 버리고 나면 상처도 어느새 아물어 굳은살이 되는 것일까. 굳은살이 되지 못한 상처들이 내 몸 곳곳에 소금쩍처럼 피어 아직도 나를 아프게 하고 있다. 세월의 강이 얼마나 더 흘러야 소금자루처럼 단단해질까.


  소금자루를 풀고서 가만히 소금을 들여다본다. 소금도 놀랐는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이 음습한 곳을 언제쯤이면 나갈 수 있느냐며 묻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나를 절여버릴 것만 같은 소금 한 알마다 열정과 맥박이 느껴진다. 어디라도 스며드는 소금을 따라 가보고 싶었다.


  내 젖은 신발보다 낮은 곳에서 태어나 신발보다도 낮게 엎드린 채 살다가는 소금을 먹기가 왠지 망설여진다. 팍팍한 세상을 부드럽게 절여주기도 하고 알맞게 간도 맞춰 주다가 썩는 곳이면 어디라도 달려가는 소금 같은 사람이 생각나서 일까.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을 서슴없이 해내는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묵묵히 떠받치며 소리없이 끌고가리란 생각이 든다. 지금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는 나를 태우고서.


  음습한 내 움막집에서 세 번째의 겨울을 맞이하는 소금자루다. 그 지루하고 막막한 시간을 건너는 동안 몸 속에 쌓인 찌꺼기들을 남김없이 버리고 또 버렸다. 내가 미처 버리지 못한 자만이나 이기심 같은 것들도 미련없이 버렸을 것이다.


  버릴수록 투명해지는 한 알의 소금이 되기 위하여 모진 땡볕과 해풍도 견뎠을 것이다. 거대한 빙산이 녹고 남해의 멸치 떼가 동해로 몰려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제 길을 묵묵히 걸어 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상의 소금이 되기 위하여 무엇을 견뎠으며 사막화 되어가는 육지의 신음에 몇 번이나 귀 기울여 보았던가. 벽에 기대 선 소금자루가 거대한 바위산처럼 느껴졌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참 많은 소금을 먹었다. 내 몸 속엔 소금자루보다 많은 소금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수가 제대로 빠지지 않아서 장을 담거나 채소나 생선을 함부로 절이지 못하고 있다.


  소금도 아니면서 소금인 채 살아온 내게 소금이 넌지시 말을 건넨다. 이제 삶의 간수를 조금씩 버리며 살아가라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한 알의 투명한 소금이 될 것이라고. 그래, 소금이 되지 못하면 소금밭이라도 되어야지. 모진 땡볕이면 어떻고 거친 해풍이면 또 어떤가. 너무 쉽게 소금을 만나고 버렸던 나를 아직도 버리지 않는 소금은 오늘도 나를 끊임없이 절여주고 있었다.


  간수란, 소금이 공기 가운데 습기를 머금고 있다가 녹으면 분리되는 짜고 쓴 맛이 아닌가. 두부를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맛이기도 하다. 짜고 쓴 맛들이 그 무엇에게 소중한 맛이 되듯이, 내 삶의 간수도 누군가에게 귀한 맛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살면서 인생의 온갖 맛들을 보게 되는데, 간수처럼 짜고 쓴 맛들이 내 삶을 지탱해 준 것 같아서 지금도 가끔 그 맛이 그리워진다. 짜고 쓴 맛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거나 업신여겨선 안 될 일이다. 삶의 상처를 씻어내 새 살을 돋게하는 신비스럽고도 오묘한 맛이기 때문일까. 세상살이가 단맛만 있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간수이기도 하다.


  소금이 바다의 눈물이라고 했지만. 요즘 들어 소금이 바다의 뼈란 생각이 자꾸만 든다. 몸의 물기란 물기는 모조리 버리고 난 뒤 남게 되는 하얀 결정체들. 그것은 마치 손발이 묶인 채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뼈만 남은 친정아버지 같아서 목이 메여온다.


  그날 임종을 지켜보던 내게 앙상한 갈비뼈를 들썩이면서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던 아버지셨다. 드디어 한 많은 이승의 끝자락을 조용히 놓으신 아버지는 소금처럼 그렇게 떠나가셨다. 꽉 움켜잡으면 바스라질 것만 같던 아버지의 하얀 뼈를 안고 간수보다 진한 눈물을 쏟고 또 쏟았다. 나는, 소금처럼 하얀 시트 위에서 자는 듯 누워 계신 아버지의 가늘고도 긴 하얀 뼈들이 내 삶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것을, 소금처럼 나를 끊임없이 절여주고 있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이제 아버지의 손과 발은 더 이상 묶이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고 계실 것이다. 소금처럼 웃고 소금처럼 담담하던 아버지가 오늘 밤 내 꿈길을 찾아오실 것만 같아서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때로는 소금이 바다의 사리란 생각이 들곤 한다. '인생'이란 화두를 안고 살다가신 큰스님의 몸에서 나온 사리처럼, 내가 잠든 사이에도 '삶'이란 화두를 안고 고뇌하다 멍이 든 바다가 소리없이 쏟아내었기 때문이다. 그 사리들을 겁도 없이 먹으면서 내 속에도 저런 사리 하나쯤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염치없이 해본다.


  꼭 장을 담지 않더라도 소금 한 자루쯤 곁에 두면 좋을 것이다. 흘러내리는 간수를 바라보면서 삶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팍팍했던 일상을 다지거나 설익은 생각과 말과 행동들을 절여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질곡의 삶을 살다간 소금을 보며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어서다.


  돌아오는 새 봄엔 꽁꽁 묶인 만삭의 소금자루를 풀어줄까 한다. 벌써부터 내년 장맛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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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올해 부산일보 신춘 수필부문 응모작품은 500편이 넘었다.


  수필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삶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나무의 겉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속에 품고 있는 목리문(木理紋)을 보는 일이다. 하나의 체험과 느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갖는 발견과 깨달음과 사상을 보는 일이다. 반짝거리는 솜씨보다도 마음과 인생의 경지를 엿보는 일이다.


  종전보다 수필의 지평이 넓어지고 수준도 안정돼 있음을 느낀다. 젊은 층의 응모가 늘어난 것도, 주제와 소재의 폭이 확대된 일도 긍정적이다. 신인이라면 개성과 독자성을 보여야 한다. 기성의 틀과 형식을 깨고 자신만의 존재 양식과 빛깔과 향기를 보여야 마땅하다. 아직도 이런 패기와 실험정신이 미흡한 점이 아쉽다.


  당선 작품 후보로 일생의 집중력과 경지가 실린 작품을 우선적으로 골라내었다. 적어도 일생의 무게와 사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김원순의 '소금', 배단영의 '못'을 두고 정독을 거듭 한 끝에, '소금'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못'도 무게와 경지를 엿볼 수 있는 수작이지만, '소금'은 주제의 일관성, 구성의 효율성, 주제의 의미부여 등에 있어서 단연 두드러진 작품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정진을 당부한다


  -  심사위원 : 정목일(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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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신문 >




  못 / 배단영


 


  못을 뺀다. 낡은 벽장을 수리하기 위해 못 머리에 장도리를 끼우고 낑낑거리며 못을 뽑았다. 못은 야무진 벽을 뚫고 들어가 긴 세월 동안 제 역할을 다했다. 제 크기의 수십 배, 수백 배도 더 되는 무게를 견디느라 얼마나 힘에 부쳤을까. 무엇을 얹거나 걸면 못은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억지로 끌려나온 못이 허리 굽은 아버지를 닮았다.


  여느 때와 같이 아버지는 해가 뉘엿할 때 들판으로 논물을 보러가셨다. 아침저녁으로 들판을 돌보시는 아버지의 눈에는 벼들의 성장이 푸짐하게 차려진 잔칫상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아버지의 다리가 허방을 짚는 듯하더니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다. 좁은 논둑은 아버지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쪽으로 흙을 밀어내며 내려앉았고 그 바람에 논바닥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넘어진 아버지가 쉬 일어나질 못하자 동네 친척이 업고 나왔을 때는 사위가 제법 어두워져 있었다. 동네 의원으로 모시고 가야 한다는 사람들의 웅성임 속에서도 아버지는 손사래를 쳤다.


  “하룻밤 자고 나면 될 것을 무에 번거롭게…….”


  흙탕물에 젖은 옷은 아버지의 몸에 붙어 잘 벗겨지지도 않았고 머리 밑까지 머드팩을 한 듯이 구석구석이 흙덩어리가 끼여 말끔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는 아픔을 억지로 견디려고 입을 꼭 다물었지만 신음소리는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빨리 약방에 가서 진통제와 파스를 사오라고 대문 밖으로 나를 내몰았다.


  어둠은 앞산에서 시작해서 마을 전체를 상보처럼 덮고 있었다. 개구리 소리는 그날따라 더욱 청승맞게 들렸다. 달이 없는 하늘에는 견우성과 직녀성이 멀리서 마주보며 그리움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밤은 깊어 가고 있었다.


  약과 파스의 효력을 못 본 아버지를 설득해서 진찰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사고로 허리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아버지는 의자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겨우 통증을 참아냈다. 다친 부위의 검사와 치료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지자 아버지는 괜찮으니 주사나 한 대 달라며 말꼬리를 자르셨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자신의 병이 가족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못내 껄끄러우신지 우리를 외면하고 돌아앉아 계셨다.


  아버지는 부러진 뼈를 치료하기 위해 못을 박아 두 개의 뼈를 고정해 하나처럼 움직이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허리를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두 개는 그만한 기능을 위해서 필요한 숫자였지만 어느 날부터 하나로 살아야 한다는 특명이 내려진 것처럼 항명이 불가능해졌다.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병원에는 아버지와 비슷한 병으로 입원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단한 못이라고 생각했던 몸이 나이 든 사람들을 배신하는 듯이 보였다. 노년의 서글픔마저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아버지는 들판에서 자라는 곡식들이 걱정된다며 몇 번인가 집으로 가자고 입원 중에도 고집을 부리셨다. 병원에서 제시한 퇴원날짜보다 앞당겨 나오셨지만 돌아오신 아버지는 사고를 당하기 이전처럼 많은 일을 하실 수가 없었다. 어이없이 발생한 사고에 비해 치유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허리뼈가 거의 완치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꼬리뼈가 다시 말썽을 일으켰다. 휘어진 척추와 금이 간 뼈 그리고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근심들은 노년의 아버지를 자유로움에서 멀어지게 했다. 신체적인 고통은 너그럽고 이해심 많던 아버지를 사막처럼 건조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작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동네사람들은 사람이 변하면 오래 못 산다며 뒤에서 말들이 많았다. 나는 못들은 척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평생을 농사꾼으로 사신 아버지는 땅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논 중에서도 가장 작고 볼품없는 논에 대한 개간 계획을 갖고 계셨다. 가족들이 무리한 일이라고 말렸지만 아버지는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그 논은 구릉과 구릉 사이에 끼여 정사각형도 직사각형도 아닌 삐뚜름하게 생겨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였다. 양 옆으로는 작은 개울과 구릉이 자리를 잡고 있어 논은 더욱 작아보였다.


  아버지는 논을 반듯하게 만들겠노라 선언하시고는 밤낮없이 논에서 살다시피 했다. 거친 자갈밭과 바위들이 아버지의 손길을 거부했다. 굵은 칡뿌리는 잘라내어도 뿌리를 내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땅과 한판 승부를 낼 듯이 곡괭이로 땅을 뒤지고 돌을 주워 버렸다. 바로 옆 개울가는 아버지가 버린 돌들로 흙탕물이 되기 예사였다. 흐드러진 아카시아 꽃향기조차 아버지의 땀 냄새를 덮을 수는 없었다.


  논은 조금씩 넓어졌다. 구릉에는 잡초와 잔나무들이 사라진 거친 자리를 대신해 모내기한 모들이 푸르게 자리 잡곤 했다. 모내기를 하던 첫 해에는 땅이 거칠어 일을 하던 아낙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수확량은 생각보다 아주 작았다.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친 추위를 이겨내고 거둔 성과는 논이 조금씩 커져가는 만큼 나타났다.


  무리한 개간은 오남매의 뒷바라지는 가능하게 했지만 아버지의 몸은 휘어지고 내려앉아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을 가득 짊어진 못이었다.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뼈가 옆으로 휘어지는 통증에 고통스런 시간도 보냈으리라.


  그나마 허리뼈를 못으로 고정해서 일상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아버지에게 이 막의 인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서 살아온 인생을 자신을 위해 살아 볼 수 있는 기회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회가 좋은 것이라고만 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흙에서만 살던 아버지가 농사를 접고 여가를 보내는 것이 행복할 수만은 없었다. 흙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들이 아버지 본인의 삶 자체라고 생각하는 분이었기에.


  필요한 것을 걸기 위해서 다시 못을 박는다. 아이들의 커 가는 모습이 액자에 담겨져 한두 개씩 늘어난다. 큰애의 백일 사진이 돌 사진으로 바뀌고 둘째가 언니와 함께 찡긋 윙크하며 찍은 사진이 덧붙여진다. 단단한 못에 의지해 가족들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


  웃음꽃이 피어나는 곳에는 겸연쩍게 물러나 계신 아버지, 가족에게는 늘 힘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이 든든한 못을 배경으로 세상에 한 발자국을 내디딜 힘을 얻는다.


  자신의 책임을 무던히 견뎌 주던 아버지는 내게 늘 휘어진 못으로 오래토록 기억에 남아 있다.




*



  < 심사평 >


  응모작 총 300여편을 읽었다.

  올해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응모한 작품 경향은 예년에 비해 수필에 대한 진지성과 사유의 깊이, 주제와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 확대성이 엿보였다.

  또한 회고, 토로, 고백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문제 의식의 반영과 주제와 소재의 다양성, 젊은 의식이 나타나는 등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수필은 체험과 느낌을 형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체험의 사회적 확대가 이루어져야 하며 삶에 대한 발견과 의미 부여가 있어야 한다.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나열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일생의 집중력과 경지가 담긴 작품을 보여야 한다. 일생의 집중력과 역량을 보이는 본격성이 드러나야 한다. 한 체험을 통한 부분적인 발견과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소한 체험일지라도 작가만의 관점으로 청신하고 독특한 개성과 표현력을 보인 작품들이 있는가를 살폈다. 신인이라면 패기와 역량이 담겨야 한다. 안정과 보편성을 얻기보다는 선명한 빛깔, 향기, 모습이 있어야 한다. 기성의 형식과 틀을 깨는 용기와 개척성이 아쉬웠다.


  눈에 띄었던 ‘옹기’와 ‘풍구’ 두 작품은 주제는 뚜렷했으나 내용이 다소 진부한 것이 흠이었다. 최종심에 오른 ‘못’과 ‘인생연주’를 놓고 숙고한 끝에 ‘못’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인생연주’는 삶의 체험 중 여러 현상들을 악기의 연주에 비유한 점이 좋았으나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이에 비해 ‘못’은 못과 아버지의 삶을 심도 있게 형상화했을 뿐 아니라, 인생 경지와 의미 부여가 두드러져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 : 정목일, 서현복>



출처 : 보리수필문학
글쓴이 : 무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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