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포항스틸에세이 은상]
삶을 용접하다
김소윤
냉수를 끼얹으며 달궈진 몸을 식히고 있다. 유난히 더운 여름, 아침부터 내리쬐는 태양열에 먼저 예열된 몸을 종일 불 속에 밀어 넣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견뎠다. 집에 올 때쯤엔 이미 벌겋게 익은 얼굴이다. 문 열자마자 뛰어나와 반기는 아이를 들어 올리면 쿵쿵 심장이 망치질 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불 속, 또 한 번 그를 밀어 넣어야 하는 이유가 있기에 묵묵히 찬물을 들이 붓는다.
나는 욕실 앞에 벗어놓은 남편의 옷들을 정리하며 그 속에서 하나를 주워든다. 용접사인 남편이 땀으로 젖은 작업복을 벗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벗어들고 온 러닝셔츠다. 한번 짜낸 모양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려있다. 영원히 반복될 인생의 멍에, 그 속에 젖은 그의 흔적. 이렇게 묻혀 온 것만이라도 내 손으로 보듬어 준다. 더 흡수하지 못해 어디론가 떨어졌을 그의 땀의 행방을 되짚다 그만두었다.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 버린 소금기 가득한 바다의 넓이를 내 능력으론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플랜트라 하면 푸릇한 식물만 떠올렸다. 이런 나보단 나았지만, 남편에게도 생소했던 플랜트 용접에 발을 들인지 8년째다. 발전소용 압력용기를 만들기 위해 두꺼운 철판을 둥글게 말아둔 관속에 들어가 압력을 전달할 노즐을 용접한다. 속에선 천도가 넘는 불꽃이 일어나고, 밖에선 온도 차이로 인한 균열을 막기 위해 불을 지펴 가열한다. 그야말로 불길 속, 갑옷 같은 작업복과 투구 같은 마스크로 겨우 막아선다. 검은 렌즈를 사이에 두고 불꽃을 응시하다보면 용접봉 끝에서 파란점 하나 어른거릴 뿐이다. 출구는 뻥 뚫린 양옆이 아니라 바로 그 빛 속에 숨은 작은 점에 있었다.
접합부의 틈새에 빈틈없이 쇳물을 녹여 채워 넣는다. 집채만 한 것은 일을 다 끝내는데 시간은 걸렸지만 몸을 움직일 공간이 확보가 되어 그나마 나았다. 차곡차곡 쇳물을 녹여 넣어 완성된 거인 같은 놈을 보며 어딘가에서 뜨겁게 숨
쉴 것을 상상했다. 차를 타고 가다 비슷한 시설물이 보이면 아이들에게 ‘아빠가 저런 거 만들어’ 하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몸이 겨우 들어갈 만한 원통 속에 몸을 밀어 넣을 땐 짧은 시간이지만 견디기 힘든 숨 막힘도 견뎠다. 코앞에서 불꽃을 튀겨가며 겨우 완성한 것을 바라보면 회의감이 목구멍까지 치솟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땐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고단함을 토닥여주고 때론 쏟아내는 한숨을 받아주는 게 내가 해야 할 수 있는 일의 다였다. 남편이 보이지 않는 몸부림으로 삶을 용접할 때 난 이렇게라도 마음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었다.
결혼이란 것은 달콤한 사랑의 결합인 줄만 알았다. 불장난 같게만 보이던 우리의 사랑을 아버지는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사랑이 밥까지 먹여주지 않는다는 말에 남편은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장래 희망란을 채우던 일이 현실에선 쌀독을 채워주지 못했기에 결심을 했다. 기술을 배워 생활을 안정시키려는 생각은 요즘 세상에 구식이라 할지 모르지만 그에겐 항등식이었다. 결혼에 관한 모든 문제가 풀어질 수 있는 답을 선택하는데 힘들고 위험한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자신의 사랑을 가장 뜨거운 방법으로 증명한 뒤에야 나는 그와 이어졌다.
각오는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처음부터 노련한 용접사가 될 거란 걸 바라진 않았지만, 잔심부름으로 하루를 채우고 나면 허망함이 밀려왔었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는 탓에 엄격하기까지 한 작업장의 분위기에 쉽사리 녹아들지 못했다. 귀마개를 뚫고 들어오는 소음은 판단력까지 흐리게 했다. 종일 먼지와 쇳가루 속에서 헤매다 돌아온 그의 러닝셔츠엔 땀에 산화된 쇳가루가 녹물로 번져있었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쌓아온 남편은 밤이 되면 하루의 피로가 봉인해제 되었다. 잠이 들었다가도 움찔거리며 깼고, 숨겨둔 울분을 잠꼬대로 내질렀다. 하루도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작은 소리에도 뒤척였기에 절로 나도 예민해져야 했다. 남편이 자는 시간에는 집의 모든 불을 꺼야 했고 어린아이들이 밤중에 칭얼거리며 깨면 재빨리 젖병을 물려 울음소리가 새나가지 않게 해야 했다.
불은 쇠를 단련시키고 역경은 사람을 단련시킨다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며 부딪히는 현실은 철옹성같이 단단했다. 맞서고 뛰어넘는 것은 어린 시절에야 도전이란 이름으로 미화될 수 있지만 나이가 들고 식솔들이 있기에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했다. 견디고 참아내며 예민한 감성은 뭉툭한 경성(硬性)으로 변해갔다. 더는 연약하지 않았기에 자신에게 이어붙이는 현실과 단단히 타협해 나갔다.
정식 용접사가 된 후에도 안주하지 않았다. 일한만큼 책정되는 월급은 남편에게 충분히 동기부여가 되었다. 동료들이 모두 퇴근한 공장을 혼자 남아 지켰고, 동료들이 피하는 밤샘 작업도 자진했다. 달 보고 출근하고 달 보고 퇴근하며 집에선 잠만 자는 생활이 이어졌다. 주말도 회사에서 보내는 남편은 어쩌다 한번 쉬는 날엔 늦잠의 유혹을 떨쳐내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만 집에 들어오는 탓에 행여 유대감이 약해질까봐 시간이 날 때마다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뜨겁게 탄생한 철은 이어붙이는 과정을 거친 후에 진가가 드러난다. 그 과정의 중심에 있는 남편이다. 희생이란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혼자서 꿈을 좇아 계속 나아갔다면 에펠탑처럼 고고한 자아실현을 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쌓아 올리는 것보다 이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자신의 손끝에서 쇠를 녹여 거대한 발전소의 한 축을 담당하듯 자신을 녹여 인생의 기틀을 단단히 붙여낸 것이다. 삶을 용접하는 그의 손끝에서 비로소 인생은 이어져 갔다.
아침이 되어 깨끗한 러닝셔츠를 침대 위에 올려 둔다. 한여름의 태양은 벌써 떠올라 대지를 데우고 있다. 남편은 준비를 끝내고 출근길을 재촉한다. 땀이 배어 나오는 이마가 반짝인다.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발걸음은 향한다. 자신을 녹일 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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