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생각하다
정성화
승선하기 며칠 전, 남편은 내게 작은 봉투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집을 한 채 마련하라고. 그 집은 ‘수필로 짓는 집’을 의미했다. 변변히 해외여행 한 번 못 가 본 아내를 위해 몇 년째 마음먹고 모아 온 승선 수당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그를 따라다녀서인지 봉투의 가장자리는 많이 닳아 있었다. 그리운 것들은 죄다 수평선 위에 한 줄로 늘어놓고 사는 사람, 그래서 한시도 수평선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 그는 어느새 자신의 수평선 위에다 아내의 수필집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두었던 모양이다. 갑판 위에다 낙지의 빨판 같은 다리를 붙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내게 말할 때는 배를 타는 것이 마치 세발 자전거를 타는 것만큼이나 쉬운 것처럼 둘러대는 사람. 그런 그가 정말 ‘억지로 벌어 온 돈’을 나에게 내민 것이었다.
만만치 않은 출판 비용 때문에 수필집 내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을 때, 문득 서머셋 몸의 「인간의 굴레」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났다.
“나는 돈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들은 위선자이거나 바보다. 돈은 여섯 번째 감각이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오감을 온전히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적당한 양의 돈이 없다면, 어느 인생이든 그가 지닌 가능성의 절반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 돈이란 강아지의 목에 매달아 놓은 줄과도 같다. 그래서 줄의 길이만큼만 자유가 허락되며, 그 줄의 길이보다 더 멀리 가려 하면 어김없이 줄은 목을 조여 오게 된다. 줄이 묶여 있는 곳으로 되돌아올 때의 쓸쓸함이란, 딱히 잃어버린 게 없다 하더라도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상실감에 빠져들게 한다.
미련이란 미련한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것, 나는 수필집을 내고 싶었던 마음을 애써 정리했다. 그가 수필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그 즈음이었다.
내게 있어 수필집이란, ‘집 한 채’라는 거창한 의미보다는 ‘나만의 방 한 칸’을 의미했다. 단칸방에 살다가 방 두 칸에다 마루까지 딸려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방 한 칸이 더 생겼다는 게 실감나지 않아, 자다가도 몇 번 마루에 나와 어둠 속에서 방 두 칸을 번갈아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남편으로부터 수필집에 대한 권유를 들었던 그날도 잠이 쉬 오지 않았다. 새로 갖게 될 그 방에 무엇을 들여 놓아야 할지, 어떻게 그 방을 꾸며야 할지, 또 벽에는 어떤 액자를 거는 게 어울릴지 등을 생각하느라, 나는 내 마음속 전등을 밤새 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감격한 것은, 그가 내민 오천 달러의 액수가 아니라 어떻게 그가 내 속마음을 알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궁금해 하는 내게 그는 말했다, 강바닥 들여다보듯 당신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노라고.
어쩌면 그는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는지 모른다. 강바닥도 때로는 흐르는 강물이 부러워 제 바닥을 긁으며 흙물을 일으킬 때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품고 있던 수초와 돌멩이, 오래 전에 떠내려와 하루에도 몇 번씩 물 속에서 빈 바퀴를 돌리던 녹슨 자전거 등, 그런 것들을 껴안고 거침없이 흘러가 보고 싶었던 내 속마음을 그는 일찌감치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해풍에 눅눅해지고 생선 비린내가 푹 배인 그의 돈을 받아 들면서 나는 연상하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을 향해 수초(水草)의 줄기를 빌려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는 강바닥의 마음을.
부부라는 글자의 앞뒤를 바꾸어 봐도 여전히 부부이듯, 부부란 원래 자신의 배우자를 위해 스스로 그의 뒤에 서려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어느 한 쪽이 강물로 흐르고자 할 때, 다른 한 쪽은 얼른 몸을 낮추어 강바닥이 되어 주는 게 아닐까. 강바닥만큼 강물을 아껴 주는 것도 없으며 강물만큼 강바닥을 선명히 들여다보는 것도 없다. 또 강바닥이 깊지 않으면 강물은 제대로 흘러갈 수가 없고, 강물이 흐르지 않는 강바닥이라면 그 어떤 것도 품을 수 없게 된다. 그러고 보면 강물과 강바닥은 서로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배경인 것이다.
강물 속으로 휩싸여 들어온 돌멩이가 무거워 바닥에 내려놓고 싶어질 때, 강바닥은 다소곳이 그 돌멩이를 받아 품는다.
피라미 떼 햇살에 반짝이고 저녁이면 은어가 돌아오는 강물, 그리고 어린 다슬기와 조개를 품어 기르며 강모래 속으로 파고드는 모래무지의 등을 조용히 쓰다듬는 강바닥이라면, 무엇을 더 욕심내랴.
얼싸안고 흐르는 강,
강물은 늘 강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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