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파리의 변 / 신성애

희라킴 2017. 9. 21. 19:37



파리의 변  


                                                                                                                                   신성애


 무더운 여름 서늘한 숲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나는 그늘을 피해 따뜻이 데워진 건물 벽에 기대어 오수를 즐긴다. 마른바람에 섞여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저쪽 주방에서 손님을 부르고 있다. 갑자기 시장기가 몰려와 날개를 파닥이며 길을 나선다. 불청객이지만 늦으면 국물도 구경 못한다. '칫 칫' 압력솥이 돌아가며 맛있는 냄새가 창문으로 새어나오고 있다. 방충망 사이로 들어갈 곳을 찾아보지만 여의치 않다. 더운 열기가 환풍구를 빠져나와 허공으로 흩어진다.


 도마 위에 무언가를 썰고 있는 커다란 손이 보인다. 빠끔히 열린 출입문을 기웃거리며 들어갈 기회를 노리다 사람이 한눈파는 사이 잽싸게 들어간다. 요란하게 돌아가던 압력솥 추가 멈추고 한쏘끔 뜸을 들리더니 공기를 빼고 뚜껑을 열고 있다. 뜨거운 열기에 눈앞이 부옇게 흐려진다. 어디쯤에 앉아 주린 배를 채울까 두리번두리면 사방을 살핀다. 순간 길쭉하고 편편하게 생긴 물건이 냅다 다가온다.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니 친구가 널브러져 있다.


 윙윙 여기저기 날아다니니 눈에 보이는 족족 기다란 파리채가 뒤쫓아 온다. 고까짓 병아리 눈물만큼 맛을 보겠다는데 왜 이리도 야박하게 구는지. 철퍼덕 내리치는 채에 하마터면 짝꿍이 큰일 날 뻔했다. 입맛을 다시며 황천길로 갈 뻔했으니 음식 앞에서는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 천장에 올라갔다가 바닥으로 내려왔다가 창가로 날아가 틈을 노린다. 먹을 것을 두고서는 양보란 없는 법인가. 먹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가 팽팽한 눈치 싸움을 한다. 손을 내젓는 사람에게 좀처럼 허점이 보이지 않는다.


 냉장고 위에서 망을 보다 가스레인지 뒤에 찰싹 붙어 몸을 숨긴다. 수직으로 내리꽂아 한입 먹었으면 참 좋으련만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색다른 음식을 맛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물러설 우리가 아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이 땅에 터를 잡아 대대손손 살아왔다는 자부심 하나로 쉽게 기죽지 않는다. 작고 여리다고 업신여기지만 우린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땅 위를 걷는 인간과 달리 유리창 위를 수직으로 기어갈 수 있고 천장에 매달려 있을 수도 있다. 위험을 느끼는 순간 날개뿐 아니라 다리도 동시에 반응해 튀어 오른다. 시력은 좋지 않지만 사천 개에 달하는 렌즈가 결합된 겹눈을 갖고 있다. 주변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알아채는 능력은 그 무엇도 따라오지 못한다. 덩치로 보면 인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작디작은 몸이지만 공중 사랑 한 번에 수백 개의 알을 낳아 손이 끊어질 리 만무하다.


 조물주가 우리를 지상에 내려보낼 때는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일 게다. 성가시고 하찮고 더러운 것이라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어디든 앉으면 어김없이 앞발을 치켜들고 단장에 여념이 없다 티끌 한 점 있을세라 쓸고 닦아 촉촉하게 마무리한다.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미끄러운 곳에 앉기 힘들다. 미각이 있는 다리 앞부분은 수시로 비비고 세밀하게 손질한다. 사람의 잣대로 해충이라 눈살 찌푸리니 딱히 무슨 말로 대꾸해야 막힌 속이 시원할까.


 날렵하게 쉼없이 움직여야 살아남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 멈춰 서는 순간 뒷덜미를 낚아채는 손길에 여지없이 압사를 당한다. '탁' 하는 파리채, '찌익' 뿌리는 방충제에 우리는 몸 둘 바를 몰라 허둥거린다. 힘에 부쳐도 멀찍이 떨어져 아래를 굽어보는 게 살길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이 우리를 잡으려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면 그때부터 온통 우리들 세상 아니던가. 드르륵 문을 닫고 헛손질하던 큰 그림자가 밖으로 사라진다.


 냠냠, 쩝쩝 구수한 냄새만큼이나 배가 그득해진다. 산과 들의 꽃에 모여들어 중매쟁이가 되는 꽃파리. 꿀벌처럼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숲속에 사는 대모파리, 해충을 잡아먹는 기생파리는 바지런한 이웃들이다. 달고 신 냄새가 나면 어김없이 몰려드는 쪼끄마한 초파리는 번식력이 좋아 유전학 실험에 자주 등장하는 파리 중에 으뜸이다. 입맛을 끌어당기는 냄새를 좇아 날아온 우리는 수많은 먹이사슬에서 청소부 역할을 자처한다. 알고 보면 우리 족속도 괜찮은 구석이 없는 게 아니다.


 사람 같지 않은 인간쓰레기를 똥파리라 부른다지. 제 몫의 생을 바삐 살아내는 우리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가. 감히 쓰잘머리 없고 치사스러운 인간에게 우리 이름을 붙이는 건 어불성설이다. 맛있는 냄새가 나면 저절로 발길이 가는 건 오랜 습관이라 고치기엔 애당초 글렀다. 세상 미물 어느 것도 자기 뜻대로 살아지지 않지만 하나뿐인 목숨에 가볍고 무거운 것이 어디 있으랴. 결코 해코지할 맘이 없는 우리에게 지레 호들갑을 떠는 건 사람들의 지나친 처사다. 밉살맞지만 눈 질끈 감아주면 눈치껏 먹고 곁에서 멀어지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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