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자라
임만빈
지하철을 내리는 할머니를 보았다. 등에는 한 짐 가득 플라스틱 통들을 보자기로 싸서 지고 있다. 뒤에도 역시 많은 플라스틱 통들을 보자기로 싸고 끈으로 묶어 한 손으로 끌며 가고 있다. 짐을 끌지 않는 손은 조그만 막대 지팡이를 짚고 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의 얼굴이 등짐에 가려 잘 보이지가 않았다. 허리를 굽혀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니 안경이 코끝에 걸려있다. 등에 진 짐이 자라의 등딱지처럼 보였다. 등짐 때문에 가려진 할머니의 얼굴과 목이 등딱지와 배딱지 사이로 집어넣어 보이지 않는 자라의 머리와 목 같았다. 뒤에 끌고 가는 짐은 자라의 꼬리처럼 보였다. 짚고 가는 지팡이는 엉금엉금 기어가는 자라 발처럼 땅에 끌려가다가 집히곤 했다.
보자기 사이로 들어난, 할머니가 지고 가는 플라스틱 짐을 들여다보았다. 동그란 구멍에 음료수 병이나 술병을 꽂아 나르는 플라스틱 용기였다. 자라가 목을 빼서 주위를 한번씩 둘러보고 기어가듯 할머니도 한번씩 등짐 밖으로 목을 빼어 주위를 둘러보곤 걸음을 옮겼다. 자라가 어기적어기적 기어가 듯 할머니도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자라가 늪의 물 위로 솟아오른 바위 위로 오르다가 포기하듯이 할머니도 지하철 역 돌계단에 한 발을 올려놓다가 오르기를 포기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등에 큰 짐을 지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모습이 바다의 큰 파도를 타고 두둥실 휩쓸려 멀리 바다로 떠나가는 자라같이 보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플라스틱 짐들의 무게는 단순한 통들만의 무게는 아닐 것이다. 병들이 들어가도록 만든 동그란 빈 공간에는 천근보다 더 무거운 삶의 하중이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다. 내가 출근하는 이른 아침에 몇 푼 안 되는 저 짐들을 지고 끌어야 하는 고행(苦行)은 열반의 고급스런 꿈을 꾸며 자학하는 구도(求道)의 길 떠남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저 짐 속에 감추어진 머리 속에는 앞가림 못하는 자식에 대한 슬픔으로 채워져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짐들을 판돈으로 손자 손녀들에게 용돈을 주었을 때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쾌락에 젖어 있을지도 모른다.
짐을 지고 가는 인간 자라인 할머니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자라의 대부분은 하천이나 호수, 늪에 서식한다고 하는데 인간 자라인 할머니는 왜 겁도 없이 바다 같은 세상 속으로 어기적거리며 발을 들여 놓고 계신가? 자라는 알을 낳을 때를 빼고는 거의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데 인간 자라인 할머니는 겁도 없이 왜 저 거친 파도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는가?
문득 금강 강가에서 매운탕 집을 하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영동에서 옥천으로 가는 국도 옆, 굽은 국도가 금강에 접해 있던 자리에 있던 음식점이었다. 명절 때 고향을 찾아갈 때면 자주 그 음식점에 들려 쏘가리탕을 즐겼다. 그때 우리가족을 맞아주던 음식점 주인 할머니, ‘멋 자랑 맛 자랑’이란 제목으로 방송된 방송 사진에 한복을 곱게 입고 ‘용봉탕’의 요리 솜씨를 자랑하던 할머니였다. 자라와 닭, 그리고 쇠고기, 전복, 잣, 참기름, 표고버섯 등 여러 가지 몸에 좋은 것들을 함께 섞어 푹 끓여 고았다는 보혈(補血)음식, 나는 한번도 그 음식을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음식에 대한 할머니의 자부심과 용봉탕에 대한 설명서를 읽고 그 효능을 의심한 적이 없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 음식점 앞을 지나던 굽은 국도가 직선화되었다. 국도를 달리는 차들은 더 이상 그 음식점 앞을 지나지 않게 되었다. 우리 가족도 그 매운탕 집을 그대로 지나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 할머니가 생각났고 쏘가리 매운탕의 맛이 그리웠다. 남아 있는 옛날 굽은 길을 따라 그 음식점을 찾았다. 할머니 대신 젊은 음식점 주인 부부가 우리를 맞이했다. 음식 메뉴에서도 ‘용봉탕’과 ‘쏘가리 매운탕’의 이름은 사라졌고 대신에 ‘장어요리’와 ‘메기 매운탕’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쏘가리 매운탕은 안 됩니까?”
“요즈음 쏘가리가 잡히지 않아요. 대신 메기 매운탕을 합니다. 메기 매운탕도 맛이 좋으니까 잡숴보세요.”
“용봉탕도 안 합니까? 전에 계시던 할머니는 어디 가셨습니까? 보이지가 않으시네요.”
“어머님은 3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들인 제가 음식점을 물려받아 경영하고 있습니다. 국도가 직선화되어 손님이 줄어들자 어머니는 무척 마음 아파했었습니다. 평생 몸 바쳐 경영하던 음식점이고 온 정성 다하여 준비하던 요리였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자부심을 갖던 용봉탕도 메뉴에서 뺐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자라가 들어간 음식을 먹습니까? 저희들도 용봉탕을 어머니만큼 잘 끓이지도 못하고·····.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 혀끝의 맛이 변하고 그리고 기호가 바뀌는 데······.”
우리는 결국 할머니 아들 내외가 끓여주는 쏘가리 매운탕 대신 메기 매운탕을 먹었다. 그 후로는 다시 그 음식점을 찾으려고 흔적처럼 남아있는 꾸불꾸불한 국도를 달리지 않았다.
그 후 언젠가 그 음식점 근처의 직선화된 국도를 달리다가 도로 옆에 새로 생긴 큰 규모의 불고기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불고기 집 주인이 된 매운탕 집 할머니의 아들 내외를 다시 만났다. 그 이후로는 고향에 갈 때면 그저 직선화된 도로를 달려 그 지역을 지나치곤 했다.
금강 옆 매운탕 집 할머니는 마지막 자기 자신을 끓여 용봉탕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들 내외가 그 보혈로 자본을 삼아 직선화된 도로 옆에 커다란 불고기 음식점을 내고 경영하여 먹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생 자라를 요리하던 할머니는 자라를 너무나 정성들여 끓이고 자라요리에 혼신의 혼을 불어 넣다가 자신이 자라가 된 것이다. 인간 자라가 된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와 인파 속으로 사라진 할머니도 지금 자기 몸을 끓여 용봉탕을 만드는 인간 자라인지도 모른다. 등 굽은 몸을 끓여 얼마 되지 않는 피와 살이라도 자식이나 손자, 손녀한테 주고자 엉금엉금 기어가다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인간 자라, 그 숭고한 영물들은 오늘도 세상 늪 어디엔가 숨어 희생의 본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 찾아보면 싶게 찾아지는 그런 깊지 않은 늪에 숨어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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