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불빛 / 임만빈

희라킴 2017. 2. 10. 20:13





                                                                                                                                                임만빈


 어린시절 고향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남폿불이나 등잔불로 주위를 밝혔다. 집은 초가집이었고 방문은 한지로 발랐다. 그래서 밖에서 창호지를 통해서 비치는 불빛들을 바라보는 일이 흔했다. 그럴 때면 어제나 어머니의 가슴속 같은 포근함을 마음속에 느끼기도 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에는 목화솜 속에 파묻힌 듯한 아늑함까지도 즐겼다.

 

 겨울에는 그 불빛 속에서 교차되는 두 개의 움직임을 자주 보곤 했다. 똑딱똑딱 울려대는 소리도 그 속에서 흘러 나왔다. 다듬이질의 그림자와 소리였다. 자식들이 잘되라고 빌어대는 어머니의 마음속처럼, 장독 옆 돌 위에 올려놓은 정화수처럼, 순수하고 맑은, 모습과 소리였다. 두 사람이 만드는 야들야들한 조화의 모습과 한스런 여인들의 속가슴에서 튀어나오는 억제할 수 없는 넋두리의 울림이 숨어있는 듯도 했다.

 

 곳간에 곡식이 꽉 찬 늦가을 밤에는 꽃의 모양을 한 그림자가 창호지에 비쳤다. 밝지 않은 등잔불 밑에서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어머니 주위에 둘러앉은 몇 개의 조무래기들의 머리들이 만든 모습이었다. 꽃술은 등잔불, 꽃잎은 머리통의 그림자들이었다. 살짝 살짝 문풍지 흔드는 바람소리처럼 어머니의 목소리는 청아하고 단아했다. 옥단춘전이 읽혀지고 박씨전이 읽혀졌다. 박색의 박씨가 허물을 벗고 절세미인으로 되는 대목에서는 졸음으로 꾸벅거리던 우리 조무래기 형제들의 목에 힘이 들어가 갑자기 꼿꼿한 자세를 취했다. 바람에 흔들거리던 꽃잎들이 제자리를 찾은 듯도 했다. 졸음에 가물대던 어머니의 목소리도 힘이 나서 갑자기 높아지곤 했다.

    

 그렇다면 한여름 밤은 어떠했던가? 석양의 햇살이 서산 너머로 넘어가면 어둠 속에서 불빛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그것들은 대부분 등피를 뚫고 나온 남폿불 불빛이었다. 하루의 농사일로 지친 몸을 씻고 마루에 올라서면 처마 안 천장에 걸려있는 남폿불은 시커먼 그을음을 등피의 목을 통해 내품으며 늦게 차려진 저녁상을 밝혔다. 불빛이 가려지지 않아 고즈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낭만은 있는 법이었다. 벼논의 피는 언제 뽑고, 농약은 언제 마지막으로 치며, 그리고 밭에는 언제 배추씨를 뿌릴까 이야기 하다가 사랑하는 몸을 안고 쓰러지곤 했다.

 

 그렇다면 늦봄의 불빛은? 농촌에서 맹렬하게 울어대던 맹꽁이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연인을 찾아 울어대는 그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처절한지. 등잔불 밑에서 책을 읽다가 그들의 아우성에 이끌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입안으로 힘껏 밀려 들어오던 는개 입자들, 는개 비를 맞으며 맹꽁이들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가 뒤돌아 본 순간, 창호지를 뚫고 은은하게 비춰 나오는 등잔불의 불빛, 꿈에도 잊혀지지 않는 연인의 모습이 그 속에서 소리 없이 다가오는 듯한 환상을 경험하게도 된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는 순간 ‘너는 맹꽁이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연인을 찾아 헤맨 적이 있는가?’ 라는 말만 남겨놓고 사라지는 잔영, 이는 나만 경험한 추억인가?

  

 해빙이 되는 봄의 초입, 불빛에 비친 창호지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있다. 여러 그림자들 속에서 이장의 힘찬 목소리가 사랑방의 창호지를 뚫고 흘러나온다. ‘언제까지는 못자리를 만들어야 혀, 언제까지는 논을 갈아엎어야 혀, 언제까지는 보리밭에 거름을 줘야 혀, ····.’ 이장보다 농사일을 더 잘 안다고 자부하는 촌로는 그냥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래야 동네가 통솔이 되는 법이다. 그래야 자기도 연로한 분이라고 대접을 받는 것이다.

    

 지금 나는 의사가 되어 옛날 고향의 집들에서 보았던 그런 불빛들을 보지 못하는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방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에 대한 애착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퇴근할 때면 언제나 얼마동안은 병실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들을 망연히 뒤돌아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

 

 추운 겨울, 텅 빈 주차장에서 뒤돌아 바라보는 병실의 불빛들, 그것들은 무겁고 우울한 느낌을 준다. 어떤 때는 삶의 의미를 묻는 소리가,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 불빛 속에서 환청처럼 들리기도 하고, 언뜻언뜻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따뜻함과 희망이라는 빛을 본다. 절망적인 환자라도 회복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기도드리고 있는 환자 가족들의 모습이, 환자들을 살리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인들의 모습들이, 그 불빛 속에 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운 겨울이라도, 차가움보다는 따뜻함을, 절망보다는 희망을, 그 병실의 불빛 속에서 보고 느끼는 것이다.

 

 가을의 퇴근길에서 바라보는 병실의 불빛은 어떠한가? 붉게 물들은 단풍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불빛은, 낮이라면 나뭇잎 색깔보다 묽게 보이는 색이지만, 밤이면 어둠이라는 배경의 도움을 받아 한껏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떨어지는 낙엽은 그 불빛 속에 한 번씩 선을 긋는다. 이제는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붉은 단풍처럼, 고개 숙인 벼처럼, 인생의 수확을 걷은 후에는 물러가는 것이 자연의 도리라고, 손사래를 치고 있는 모습 같다. 그렇지만 그 불빛 속에 한 평생 가족이라는 짐을 지고 가다 이제는 병이라는 하찮은 것에 등을 굽히고 무릎을 꺾는 부모들에 대한 자식들의 깊은 안쓰러움과 존경스러움이 숨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늦가을이라도 병실의 불빛 속에서 우울함과 쓸쓸함 대신에 애틋함과 따뜻함을 느끼는 것이다.

 

 여름 밤 병실이나 그 주위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은? 한 여름 태양이 머뭇머뭇 서산 너머로 사라진 후 저녁 늦게 병실에 켜지는 전등불들, 그때서야 인위적인 냉방에서 자연의 시원함으로 무더움을 이기고자 병실을 나서는 사람들, 얼마 안 되는 눅눅한 바람에도 환자복의 단추를 푸는 그들,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일지라도 몇 마디 이야기만 하면 그들은 십년지기보다 더 친숙하게 된다. 각자의 가슴속에 한 없이 풀어놓아도 다 풀어놓을 수 없는 한과 아픔의 덩어리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어디가 안 돼서 왔소?”

 “아이고, 안 되었네. 그 병은 잘 안 낫는다고 하던데····. 그런데 어디가면 용한 사람이 있어 그 병을 용케 잘 고쳐낸다는군.”

귀가 솔깃하다. 이런 땐 왜 의사의 말보다 이런 사람들의 말이 머릿속에 팍팍 새겨지는지 모르겠다. 무심히 하늘을 쳐다본다. 바라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별들의 숫자는 늘어난다. 자신이나 가족이 아프기 전에는 정신없이 사느라고 잘 바라보지 않던 밤하늘이다. 잃어버렸던 아름다운 별들을 다시 찾은 듯한 기분도 든다. 강철처럼 느껴지던 아버지의 마음도 자기와 똑같이 여리다는 것을 자식은 깨닫는다. 아픈 아버지에 대해서 측은함과 동료애를 느낀다. 망각했던 귀중한 것을 찾고 깨달은 감도 든다. 그래서 한여름 밤 병실이나 그 주위의 불빛 속에는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들을 찾아주고 깨닫도록 해주는 것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들이 움트고 싹트는 이른 봄에 보는 병실의 불빛은 어떠한가? 가장 눈에 띄는 불빛은 산실과 신생아실에서 비춰 나오는 불빛들이다. 산실의 불빛은 탄생의 환희를 품고 있다. 주차장까지 들리는 산모의 환희와 고통이 뒤범벅이 된 울림이 지속된 후 한순간 적막처럼 조용해진 산실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 그 짧은 침묵은 긴박한 긴장을 품어내서 내 가슴까지 옥죈다. 그러다가 뒤따라 앵앵 울어대는 신생아의 울음소리, 그리고 신생아실에서 뻗어 나오는 분홍색의 따뜻한 불빛, 아이를 낳아 본 사람이나 키워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불빛들이 얼마나 신기하고 사랑스러웠었는지. 지금은 밉살스럽게 다 커 버린 아들일지라도 그때는 그가 얼마나 환희에 찬 기쁨과 희망의 빛을 자기들한테 보내 주었었는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도 남을 것이다.

 

 방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을 사랑한다. 과거 고향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속에서는 엄마의 품속 같은 포근함을 느껴서고, 지금 병실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 속에는 연민과 함께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힘이 들어있어서다. 나는 어느 계절, 어느 곳이던 불빛만 새어나오면 그곳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뜻함과, 평화스러움과, 그리고 사랑도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방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을 무조건 사랑한다. 짝사랑일지는 몰라도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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