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닭 시집살이 / 이금태

희라킴 2017. 2. 10. 19:52





                                               닭 시집살이                                                   

                                                                                                       금태

 



 하고많은 말들 중에 하필이면 그 말이라니. 시간이 지날수록 난감하다.

 “닭 잡아 묵지 마라.”

유언으로 새겨듣기엔 찜찜하나, 그 말씀이 당신께서 이승에 남기신 마지막 당부여서 무시하고 지나치지도 못하겠다.


 병아리에서 2년쯤 자란 닭은 사람으로 치자면 중년쯤 되리라. 매부리코 모양 휘어진 주둥이 끝은 시멘트 마당에 갈아 날카롭기가 송곳 끝 같다. 맨드라미꽃을 닮은 왕관을 왕이 된 것 마냥 고고하게 쓰고 서 있는 자태는 놈이 중년이 된 것을 제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자존의 태도이다.


 녀석의 눈방울이 놀랄 정도로 빤히 쳐다볼 때는 아버지의 혼이 실린 것 같아 나도 정자세를 하고 마주 쳐다본다. 오랜 눈싸움 끝에 내가 그만 질려 버리고 만다. 꺾어지게 우는 소리에도 사연은 있을 것이나, 내가 다만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녀석의 눈 속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모이를 던져주는 나를 알기나 할까? 태어나 같은 종을 보지 못한 녀석은 운우지락을 나눈 적이 없어, 어리전에 있는 닭 장사에게 줘 버릴까도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글쎄, 그 멋진 때깔이 사람들 눈에 들어 팔려 버릴까 두려워 그 일도 못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놈은 내 신발에서 암내를 맡아서인지 욕구 배설을 한다. 아예 신발 하나를 녀석에게 주어 버렸다. 놈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하다. 한갓 집에서 키우는 날짐승이라기보다는 적적한 집안에 어엿한 가족으로 존재하고 있다.


 꼬끼오~, 몇 마디의 울음소리로 신계와 인계를 어우르고 하늘이 주신 시간이란 무형의 흐름을 좌우하는 너, 누가 너를 일러 짐승이라 하랴! 자세히 보라, 어떤 동물이건 눈꺼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감지, 위로 감아올려 눈을 감는가. 유독 닭이란 종족만이 거기서 벗어나 있지 않느냐. 이렇듯 신령스러운 동물이기에 닭은 하늘을 향하여 목을 길게 빼고 목청을 돋우는 것이다.


 당신께서 이승을 떠나시는 날까지 이슬처럼 맑은 정신을 잃지 않으셨음은 애오라지 놈의 공이 아닌가 싶다. 외로이 누워 계시는 이에게 아름다운 천상을 노래했음인지, 가신 분은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밝은 표정을 잃지 않으셨다.


 이상한 일이었다. 거짓말 같은 사연이어서 믿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던 모이를 입에 대지 않았다. 예사로 보기가 안쓰러워 잘 먹는 지렁이도 사다 주었지만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던 놈이, 삼우제를 지나고 나니 다시 모이를 먹지 않는가.


 산사람은 살아야지, 꾸역꾸역 먹어대던 나를 녀석이 부끄럽게 했다. 천년만년 아버지가 사시는 것은 아니기에 이별 후의 그리움은 앙금으로 남겠지만 그래도 몸은 홀가분할 줄 알았다. 당신은 떠나시고 닭은 남아 있는데, 이승에서 끔찍이 귀애하시던 놈을 분명 딸에게 당부하고 가신 거다. 닭은 마당에서 소리를 하고 당신은 방에 누워서 화답하며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지 않았던가. 말 못하는 짐승을 두고 어찌 켕기시지 않았으리.


 업둥이처럼 받아들여 동거하게 된 놈은 이제 버젓이 집주인 행세를 하려 든다. 모임에서 늦은 저녁에 돌아오면 끄르륵 거리는 소리가 탐살로 들려 괜히 눈치가 보인다. 왜 이제 들어와 날 거두지 않느냐며 나무라는 것 같다.


 아침마다 알곡을 뿌려 놓은 마당에는 보기 어려운 새들이 놈의 사이에 끼어들어 눈치를 보며 먹어댄다. 간혹 서로 다툼이 일 때도 있지만, 덩치 큰 것이 작은 것에게 양보를 하는 것 같다. 들어오는 복은 있어도 나가는 복은 없다고, 내 집에 들어와 먹고 가는 날짐승도 다 내 복이려니 생각했다.


 신과의 교접이 가능하여 유명한 무당엔 유달리 닭띠가 많다. 인간과 모든 축생들에게 시차(恃差)의 계율을 심어 천지신명의 대명을 충실하게 지켜가는 닭, 지상에서 인간과 나눈 정만으로도 우리 집의 이놈은 자신의 업보를 사(赦)하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만의 관계에만 정이 생기겠는가. 이렇듯 짐승과 느껴 일어나는 마음이야말로 오히려 거짓이 없고 깨끗한 정일는지도 모른다. 멀리 사는 동기간과 일가붙이에게 보낸 정보다 더 깊은 정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녀석의 명이 다하면 무엇에 마음 한자리를 내어주나 벌써부터 걱정이다.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던 폭염 속 나뭇잎이 놈의 길게 뽑는 홰 소리에 후루루 소리를 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이름 모를 새가 날아간다. 꼭끼요오~, 짙은 닭 울음소리가 한낮의 정적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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