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약과 독 / 박경주

희라킴 2017. 1. 20. 20:52






약과 독

                                                                                                                                                                       박경주

 
  "이것아, 궁합이 나빠."
  "궁합이 나쁘면 어때. 좋아 죽겠는데, 어떡해." 


  스물다섯 살이던 해, 내가 좋아했던 사람의 부모님이 마련한 상견례 장소에 아버지는 아니 오시고 어머니만 따라 나오셨다. 몹시도 반대하는 결혼이었기에. 밤새 꾸중을 듣고 울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흰 투피스를 입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점잖게 생긴 그의 부모님 앞에 앉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날씨가 추워 꽁꽁 언 두 손은 둘 곳이 없어 무릎 위에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오 제발 합격하게 해 주소서, 하느님께 빌었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도 아랑곳없이 엄마는 그분들 앞에서 아직 딸을 결혼시킬 준비가 안 되어서 이만 일어나겠다고 하시며 차도 마시지 않고 앞장서 나가셨고 나는 황급히 그 뒤를 따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방을 데굴데굴 구르고 울며 시위했지만 부모님의 허락은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 후, 그는 나의 첫인상에 대한 그의 어머니의 말을 대신 전했다.
  "처녀 손이 그렇게 삐쩍 마르고 가늘어서야, 원. 도대체 밥이나 해먹겠냐. 당장에 그만둬라."
하셨단다. 그렇게 해서 그와의 혼인은 아쉽게 깨지고 말았다.


  세월이 흐르자 사랑의 상처는 아물어갔지만, 내 손이 밉상이라던 그의 어머니의 말은 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손에 대한 열등감으로 손을 감추는 버릇이 생겼고, 그 다음부터 선을 볼 때마다 얇은 장갑을 끼기도 했다. 


  이듬해, 맞선으로 남편을 만날 때도 흰 레이스 장갑을 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결혼 후, 남편은 내 손이 참 예쁘다고 어루만져 준 적이 많았다. 남편은 나의 지난 상처를 마치 알기라도 한 듯 곧잘 내 손을 추켜올리곤 했다. 주부습진에 걸린 내 손을 '사랑의 손', 숭고한 손이라며 오히려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그런 남편도 이미 타계하고 숱한 세월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나는 손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만큼 가파른 삶이었다.


  얼마 전 문학기행에서였다. 그날은 길이 막혀 모두 버스 안에서 잡담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내 손이 눈에 띄어 화제가 되었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참 작고 고운 손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젊었을 땐 참 예쁜 손이었을 것이라는. 나는 긴 악몽에서 깬 듯 기쁘고 신기했다. 그동안 나는 손이 밉다고만 여기고 살았다. 나의 '손'에 대한 남편의 지난 찬사도 그저 격려사로 들었을 뿐이었다. 


  지금 내 손이 예쁘든가 말든가 그것은 정말 중요하지 않다. 같은 햇빛에 독수리의 눈은 뜨이고 부엉이의 눈은 먼다. 똑 같은 손도 보는 사람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약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독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 <에세이문학 작가회 동인지> 제19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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