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흙과 불춤 / 김기철

희라킴 2017. 1. 15. 21:54





흙과 불춤


                                                                                                                                        김기철

 

 도자기를 한다는 것이 불과의 전쟁이라 할지, 밀월이라 할지 아직은 어림을 잡을 수가 없다. 다만 불과의 관계가 이보다 더 숙명적으로 절대적인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나는 무던히도 이 칼날보다 더 매서운 놈하고 손을 잡고 사이좋게 태산준령을 넘어가자고 갖은 정성 다 쏟아가며 애걸복걸하건만 뭐가 심에 안차 그럼인지 툭하면 발칵발칵 심통을 부려 눈앞을 캄캄하게 해놓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알 수 없는 것은 어쩌다 변덕이 나면 갓 시집온 고운 아씨처럼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하기야 인간들도 변덕이 팔죽 끓듯 하는 세상에, 너 불길만은 사람을 닮지 말고 티 없는 어린 양 같아야 한다고 주문을 해본들 내 쪽이 너무나 모자라니 죽으나 사나 불평 한마다 못 내뱉고 달래가며 살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도대체 불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태곳적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온통 세상에 그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쓰고 야단법석을 떠는지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에겐 어릴 적부터 만만한 게 불이었다. 아무 때나 그어대는 성냥불이며 어른들이 뻐끔대는 담뱃불이 대단할 리 없었다. 더구나 사위어가는 화롯불은 죽은 아이 콧김만도 못하지 않은가. 아궁이 불이나 모닥불이라고 해 봐야 그저 그렇고 심지어 산불이나 남의 집 불난 것을 봐도 쥐불놀이나 횃불장난을 멋대로 해대며 뛰고 놀듯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신바람이 났다. 그러기에 불이라는 것은 죽으라면 죽고 알몸으로 춤을 추라면 추는 내 입 안의 혀나 다름없이 마구 부려먹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던 불이 하룻밤 사이에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로 입을 딱 벌리고 내 앞에 버티고 앉아 있을 줄이야…. 사실 도자기에서 불은 최후의 심판자이다. 사람들은 눈만 뜨면 불을 가지고 별별 짓들을 다 하고 있지만 정작 불의 정체가 어떠하다는 것을 강 건너 불처럼 대수롭지 않게 알고 있는 것이다.

 

 설령 세상 끝 날에는 하느님의 불의 심판이 내려 못된 짓 일삼고 착하게 살지 않은 인간은 여지없이 멸망을 시킨다는 소리를,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무궁토록 그 속에서 고통을 겪는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도 나 같은 사람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보통 곤란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이 아닌 장작개비를 태워 도자기를 심판하는 불만 하더라도 짚동 같은 불길이 사람을 집어삼킬 것 같은데 하늘의 불은 오죽할 것인가. 도자기라는 것이 사람보다 못해 그런지 더 나아 그런지는 몰라도 그 무서운 불의 심판을 두 번씩이나 받고 나왔다는 점은 인정해줘야 한다. 그것은 초벌구이라는 예비심판을 통과한 다음에 또 한 번의 결정적 심판이 내리는데 이때야말로 불의 위력이 어떻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마치 괴물이 아가리에서 내뿜은 분노의 불길이라 할까, 갈고리 같은 마귀의 혓바닥이 휘둘러대는 광풍이라 할까, 아니면 소용돌이치는 탁류처럼 온통 가마를 휩쓸어갈 듯 한 열병 걸린 암흑의 사자들이라 할까, 아무튼 기세등등하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것이다.

 

 우리가 가마에 불을 지핀다는 것은 마치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빚어 모아두었던 피조물들을 한꺼번에 가마에 넣고 불을 때자면 만반의 준비가 끝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가다듬은 다음 단단한 각오가 뒤따라야 한다. 오랜 기간 정성들여 만든 내 분신들이 성공적으로 훌륭히 태어나도록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기도하는 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일곱 개의 칸막이 굴이 단 몇 개월도 아닌 순식간에 만삭이 돼서 그 거대한 몸집이 꿈틀대는 것처럼 헐떡헐떡 불길을 내뿜기 시작하면 아무리 육지 같은 용가마라도 숨이 터지는지 몸부림을 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정사정없는 것은 사람 쪽이다. 가마야 견디다 못해 반쪽이 나든 말든 봉통 아구리가 터지게 나무를 우겨 넣어야 한다. 이때야말로 일대격전이 벌어진 불과의 싸움이다. 우리는 요 때가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아주 지지 밟아 굴신을 못하게 해놓아야지 섣불리 사정을 봐주다간 꼼짝없는 당하고 만다. 결국 가마 칸의 불구멍마다 검붉은 피거품을 토해 내듯 검은 연기가 빠져나오며 풀이 꺾이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암흑의 장막은 서서히 걷히고 몇 칸 다음 불구멍에서도 벌겋게 불기가 내비치기 시작한다.

 

 그래도 안심은 금물이다. 그러나 가마 속 가운데로부터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다.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던 불길은 고삐가 잡히고 연한 저녁노을 빛깔의 차분한 흐름은 수천수만 가닥의 비단실이 물결을 따라 하늘거리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불이 끝난 봉통 속은 온통 황금비늘을 깔아놓은 듯 나머지 몸을 이글이글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놀랍다. 단 일순간을 반짝하고 날아가 버리는 저 무수한 불의 정령들! 저 놈들은 다 어디로 살러 가는 것일까. 오직 최후만은 화사한 빛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가마불은 이제부터 절정에 이른다. 불길은 자욱한 안개인 양 가마 안에 가득히 고여 있다. 그러나 살아서 춤을 추는 것이다. 정지된 듯 움직이는 그 흐름은 살풀이나 승무의 곱디고운 선을 숨바꼭질하듯 둥글게 이어가고 있다. 누가 저 가마 칸을 가득 메우고 도자기를 감고 도는 희다 못해 파르스름한 물안개 같은 흐름을 불길이라고 하겠는가. 아니다. 분명 다른 세계이다. 저 빛깔! 깊은 산속 밤새 내린 눈꽃이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설경이 바로 저 불빛인 것이다. 나는 몇 번이고 저 안이 극락이 아니면 천당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 속에 의젓이 앉아 있는 존재들, 어찌 보면 하나하나가 다 신비스런 모습을 띠고 의연하게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 이 세상 같으면 물고 뜯고 악다구니를 해가며 난장판을 벌이겠지만 너무나 편안하고 조용한 것이다. 그렇기에 밤이 깊어 풀벌레 소리마저 잠들 때가 되면 죽음과 같은 적막 속에 오직 장작불 제 몸 사르는 소리만 바지직바지직 들리는 것이다. 누구라도 세상이 잠든 삼경에 저 세상 같은 가마 속을 들여야 보면 더 없이 맑고 평화로운 생각을 지니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가마 속에 앉혀놓은 갖가지 형상들도 환상적인 모습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놈들은 흙이 녹고 유약이 흘러 말캉거리는 홍시나 다름없이 살짝만 건드려도 그대로 무너져버릴 것 같은 상태이다. 그러나 무던히도 버티고 앉아 하나의 완성품이 되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는가 하면 그렇지 못해 비극으로 끝나는 것도 허다한 것이다.

 

  한 번은 우는 닭 두 쌍을 몰아넣었더니 처음에는 새카만 털이 푸스스하고, 다음엔 피가 돌듯 발개지는가 했더니 어느새 황금 닭이 되었다. 그리고 좀 있으니까 은백색의 아름다운 닭으로 나타났다. 그런 다음에는 어느 틈에 얼음을 깎아 빚은 것 같은 환상적인 상아빛 형체가 어른거리며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놈은 뽑아 올린 목을 더 지탱하지 못하고 앞으로 옆으로 각각 늘어뜨리고 말았다. 결국 상상도 못했던 뜻밖의 닭 두 마리가 한 놈은 부러진 목을 처박듯 처참한 몰골로, 또 한 놈은 귀엽게 애교를 부리며 꼬꼬댁거리며 나오는 것 같은데 두 팔을 벌려 껴안고 환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변이라는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걸작품이, 웃음과 해학을 자아내는 희귀한 것이, 그리고 마음을 아리게 하는 못난 놈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을 땔 때면 어쩔 수 없이 반 무당이 되는 모양이다. 뭐라도 되려면 몽당 빗자루 귀신이라도 돌봐줘야 된다는 소리가 있는 것처럼 자칫 가마 신의 비위를 덧들이면 어쩌나 싶어 공연히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다. 어떻든 그 도자기 귀신인지 가마 터줏대감인지를 달래자면 막걸리 사발이라도 부어놓고 거기다 북어 두어 마리, 때로 형세가 좋으면 돼지머리를 높직이 올려놓고 넙죽넙죽 절을 해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별안간 먹장구름이 몰려 닥치고 천둥 번개가 치면서 장대비가 퍼부을 때가 있다. 이렇게 되면 마음은 급해지고 겁이 더럭 난다. 이거 무슨 액운이 끼었기에 그런 것인지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아 선무당이라도 불러다 푸닥거리를 해대야 할 것 같고 우선 급한 대로 좁쌀죽이라도 끓여다 네 길 바닥에 끼얹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무슨 기적이 일어나지 않나 목을 빼게 되고 하릴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바람 부는 방향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운명을 걸고 비장한 각오로 가마에 불을 달았는데 하늘에서 물벼락을 내리는 것은 분명 무슨 동티가 나도 단단히 난 것이다. 뭐가 잘못돼서 그런지는 몰라도 물의 신과 불의 신이 하필이면 남 불 때는 날을 잡아 서로 점잖지 못하게 희롱을 하는 것인지 죽기 살기를 무릅쓰고 엉겨 붙어 결판을 내자는 것인지 그러지 않아도 뼈만 남은 사람을 말려죽일 작정인가. 아마도 이들 위력 앞에선 가마신 따위는 쪽도 못 펴는지 그렇게 위해 바쳤는데도 웅크리고 엎드려있다는 것은 호랑이 앞에 생쥐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 들통이 난 셈이다.

 

 그러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물 불 싸움에 가마등이 터지는지 그 속에서 요동쳐 나오는 불길의 난무는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좀 과장하면 화산이 터지는 장관이라 할까, 무당이 창과 칼을 뻗쳐 들고 잔뜩 신이 올라 뛰어대는 춤이라 할까.

 

 무서운 불춤! 고통을 못 견디어 발광하는 듯한 불의 요동! 하기야 무수한 생명이 태어나자면 이 정도의 진통을 겪지 않고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곤죽 같은 흙물이 강철보다 더 강한 물질로, 인간이 만든 가장 단단하고 영구불변한 물체로 태어나는데 그 몸부림치는 용의 몸체가 만신창이가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가마 뱃속까지도 인과응보의 철저한 윤회가 작용했음인지 나오는 놈들마다 고르지가 못하다. 그 동안 마음 잘 쓰고 열심히 땀 흘린 놈은 잘 태어나고 못된 심보로 남을 괴롭힌 놈은 그 죗값을 치르는 모양이다. 그런 것은 제발 우리 인생을 닮지 말고 하나같이 귀하게 태어나 제 몫을 했으면 좋으련만 그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대개 마지막 칸을 땔 때쯤 되면 앓는 자식을 떼어놓고 떠나 있던 어미가 헐레벌떡 달려와 죽어가는 자식을 끌어안듯 눈부신 햇살은 열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가마를 어루쓰다듬는다. 그러나 참고 있던 노여움이 폭발함인지 검붉은 불길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는다. 당장 용의 꼬리에는 불기둥이 서는 것이다. 불길은 원한의 태움인지, 제 어미의 나라를 향해 훨훨 날아감인지 끝없는 창공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저 무서운 힘! 그러나 너울너울 승천하는 비천상과 같은 고요함, 티 없는 하늘 위에 마지막 순간의 춤사위는 참으로 장엄하다.

 

 마침내 불은 끝나고 봄 아지랑이 같은 열기가 아쉬운 여운으로 가마 둘레를 감돌며 아른거린다. 나는 그 옛날 흥부의 박 속에서 갖은 금은보화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듯이 이번만은 귀한 옥동자들이 줄줄이 얼굴을 내밀고 나오리라는 기대에 나의 마음 한 구석은 저 불 아지랑이처럼 잔잔히 피어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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