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괘종시계 / 김희자

희라킴 2017. 1. 14. 20:01





괘종시계

김희자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인다. 따가운 햇살에 붉은 고추가 때깔 곱게 마르고 평상 아래 고양이가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바지랑대의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자 괘종시계의 종이 댕댕거리며 열두 점을 친다. 맑은 영혼을 울리며 톱니바퀴에 열 오르는 시간이다. 아버지는 괘종시계 앞에 서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태엽을 감는다. 그 모습을 몰래 보던 나는 시계가 늙어서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속웃음을 친다.

 

 향촌에 오면 가장 정겨운 것이 괘종시계의 종소리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변해 사라진 것은 많지만 괘종시계는 지금도 안방에서 똑딱거리며 가고 있다. 괘종시계는 추가 좌우로 흔들림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태엽이 풀리며 시곗바늘이 움직인다. 시침과 분침이 정시와 삼심 분을 가리키면 종을 쳐서 시간을 알려준다. 새벽 다섯 시가 되면 사위의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며 종을 다섯 번 울리고 일 곱시 반이 되면 '!'하고 종을 한 번 친다. 종소리만 들어도 몇 시인지 대중할 수 있다. 식구들이 깊은 잠에 빠져 꿈나라에 있을 때도 괘종시계는 밤을 지키는 파수꾼이 된다.

 

 안방 벽에 붙어사는 괘종시계는 내가 첫울음을 터뜨리던 해에 들어와 한자리를 차지하는 키다리 시계이다. 知命을 코앞에 둔 나와 또래이니 팔순을 넘긴 아버지와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정이 든 골동물이다. 노쇠한 아버지의 골진 모습처럼 시계도 감색되고 흠집이 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똑딱거리며 좌우로 추를 흔드는 모습이 부모님 사이에 오가는 정같다. 훤칠한 시계처럼 바늘도 길고 굵다. 괘종시계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고 돌아가야 태엽을 걸고 넘어가듯 아버지는 세월과 이를 맞추며 팔십 고개를 넘어왔다. 긴 허리를 구부정하게 꺾고 태엽을 돌리는 뒷모습이 마치 낡은 시계를 닮은 듯해 가슴이 시리다.

 

 이태 전에 팔순을 넘긴 아버지는 느려진 시계만큼이나 동작이 굼뜨다. 괘종시계를 장만할 때만 해도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젊었다. 쉬지않고 완벽하게 가는 시계처럼 아버지는 팔팔하고 매사에 빈틈이 없었다. 내일을 향해가는 시계처럼 농사일뿐만 아니라 바깥세상에도 눈과 귀를 열었다. 오지나 진배없는 고향의 개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고 정치에도 종종 발을 붙였다. 아버지는 지게보다 안경이 더 잘 어울렸다. 주어진 틀에만 안주하지 않고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열었다.

 

 유년시절부터 시골집에는 신문이 왔다. B도시에서 오는 신문은 일 주일에 세 번 우편집배원이 배달을 했다. 더 넓은 세상에 호기심이 많았던 아버지가 받아보는 뉴스였다. 애틋한 정이 넘치거나 너그러운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안경 너머로 신문을 보는 모습이 박식해보여 멋있었다. 때로는 괘종시계의 태엽이 풀리듯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탓하며 맥없이 주저앉았지만 밥을 주면 되살아나는 시계처럼 느슨해진 정신을 긴장시키며 다시 일어섰다.

 

 삶의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던 아버지가 이제는 노환으로 청력을 잃어간다. 세월에 부대낀 등뼈도 닳아 구멍이 숭숭하다. 골다공증이 깊은 아버지는 이태 전 언덕길에서 경운기를 이기지 못해 척추를 다쳐 수술을 했다.후유증이 남은 몸으로도 곡식을 거두어 나눠주셨건만 올 들어서는 영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가을에 심겠다며 마늘씨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 의지마저 허물어질지 모른다.

 

 소학교에 다니던 시절 한 달에 한 번 시계의 밥을 주는 일은 내가 도맡았다. 괘종시계는 사람과 같이 배가 부르면 왔다갔다 추를 흔들다가도 밥심이 떨어지면 멈추기 십상이다. 풀어진 태엽을 감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기운을 잃은 시계를 다시 살리는 일이기도 했지만 내일을 알려주는 시계가 고마웠기 때문이다. 재봉틀 의자 위에 까치발을 하고 서서 T자형 쇠막대를 시계구멍에 넣어 돌리면 태엽 감기는 느낌이 좋았다. 태엽을 감는 일은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내일은 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때부터 시간 조율하는 법을 익혔는지 모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새벽잠이 없었다. 조용한 새벽녘 눈을 뜨고 작은 방에 누워 있으면 괘종시계의 종소리가 들리곤 했다. 시계의 종소리가 다섯 번 울리면 우리 집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바지런한 부모님은 전날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허리를 펴며 하루를 열었다. 일분일초도 느리지 않는 시계처럼 하루도 늦은 적이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동이 트기 전 동네 우물가로 보리쌀을 씻으러가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노상 붙어 다녔다. 그때부터 배인 습관 때문인지 나는 남보다 일찍이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하루는 25시이며 지금도 내일로 가는 시계처럼 꿈을 꾸며 살아간다.

 

 오늘 아침에도 고향집은 다섯 시에 하루가 시작되었다. 장이 서는 날이라며 어머니는 동이 트지 않은 마당을 건너 대문을 나섰다. 아버지는 대문을 활짝 열고 마당에 쌓인 어둠을 싹싹 쓸어내었다.

 

 소싯적 마루에 걸터앉아 섬집아기를 부르며 바다에 간 엄마를 기다리듯 아버지와 나는 장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시계만 쳐다봤다. 무거운 추를 좌우로 흔들며 느려지는 괘종시계를 보니 측은했다. 언제 정지할지 모르는 저 시계추처럼 불시에 어떤 일을 겪을지 모르는 부모님이라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아래채의 그림자가 마당 반절을 덮고 장대의 그림자가 길게 드러눕는다. 내 시계는 이미 오후 세 시가 넘었건만 괘종시계는 또 뒷북을 친다. 시계의 생명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건만 괘종시계는 이제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 반백에 이른 세월 동안 자신을 소모시켰으니 어찌 낡지 않고 성할까. 닳아빠진 아버지의 등뼈처럼 톱니바퀴가 마모되어 태엽이 자꾸만 풀어진다. 어머니를 기다리던 아버지가 윗목에 몸을 누인다. 금이 갔던 등뼈 때문인지 바로 눕지 못하고 모로 눕는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내 뼛속까지 아려온다. 아버지의 젊음이야 다시금 돌릴 수 없겠지만 퇴화된 육신도 태엽처럼 감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일을 향해 쉼 없이 가던 괘종시계가 날로 쇠해 간다. 아버지는 시간이 자꾸 느려진다고 투덜거리지만 시계의 탓이 아닌 세월의 탓임을 삼척동자도 알 만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괘종시계는 굼벵이 천장하듯 느려지겠지만 부모님이 사는 동안에는 멈추지 않기를 소망한다. 가끔 옛 둥지를 찾아오면 추억을 되살려주는 정다운 소리도 되고 내일을 알려주는 시계였으면 한다. 아버지는 내일도 괘종시계 앞에 서서 태엽을 감을 것이다. 가는 세월을 붙들기라도 하듯 내일을 감고 또 감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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