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필 당선작]
먹감나무
신정애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진다. 시간이 응축된 결 사이로 먹빛 농담들이 그윽하게 번져 있다. 백년의 세월 속에 잠시 머물렀던 시간들이 망설이듯 멈춰 섰다간 일필휘지 굽이쳐 흘렀다. 마을회관을 지으려고 빈 집을 허물면서 베어진 감나무였다. 차탁으로 귀히 쓰인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찾아간 자리였다. 반으로 자른 단면을 손으로 쓰다듬으니 아릿한 기억들이 묻어나온다.
감이 주렁주렁 달린 시골마을이 열두 폭 병풍처럼 펼쳐진다.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이면 담장을 넘어온 가지마다 홍시가 탐스럽게 익었다. 초가집 일색인 마을에서 단 하나 뿐인 기와집이 할머니의 집이다.
고샅길 막다른 곳에 이르면 솟을대문이 어린 나를 압도했다.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증조할아버지가 아래채에 기거했고 본채의 큰 방이 할머니 방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문고리가 달린 방문이 열리며 긴 곰방대를 문 할머니의 무표정한 얼굴이 담배연기와 함께 앉아 있었다. 무거운 침묵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살가운 큰어머니가 부엌에서 뛰어 나와 반겨주었다. 그럴 땐 아래채와 본채 사이로 등이 굽은 작은아버지가 설핏 그림자처럼 지나가곤 했다.
아름드리 감나무 속에 검은 무늬가 들어간 것을 먹감나무라고 한다. 먹감나무는 탄닌 성분이 많아서 오래 묵은 심재일수록 무늬가 더 검다. 감을 딸 때 가지를 함께 꺾게 되면 이 때 생긴 상처를 타고 빗물이 나무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스며든 빗물이 나뭇결을 따라 추상적인 무늬를 만들어 낸다. 나무 안에 먹물을 들인 것 같은 자국은 상처가 크고 깊을수록 더 아름다워진다고 한다. 스스로의 고통을 치유하며 자연이 만들어낸 담채화이다. 그런 먹감나무는 기품이 있고 아름다워 조각이나 가구 등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작은아버지는 선천적 척추장애다. 늘 땅만 보고 걸어 다녔다. 철없는 동네 아이들이 곱사등이 흉내를 내고 다니면 할머니는 아궁이속에 지피던 솔가지 연기로 눈물을 감추었다. 제 때 호적에도 못 올려 소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고 나서야 몰래 출생신고를 했었다. 증조할아버지는 곱사등이 손자를 부정하고 싶었겠지만 할머니에게는 평생 품어야할 가슴 아픈 상처였다. 손이 귀한 종가였다. 아들 셋을 낳고도 집안에 병신자식을 두어 가문에 흠집을 남겼다는 이유로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마음을 닫아버렸다. 어쩌다 손자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도포자락 제키며 돌아앉아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커다란 바위를 안고 살얼음판을 걷는 시집살이였다.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있던 할머니는 세월이 흐르면서 장수하신 당신의 시아버지와는 등을 돌리며 살았다. 아래채에서 기침소리가 나면 본채에서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아들을 업고 할머니는 용하다는 곳이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침술과 한약방을 찾아다녔다. 발품을 판 보람은 없었지만 덕분에 작은아버지는 냄새만으로도 약초를 구분했다. 침과 뜸을 뜨는 것을 몸으로 익혔고 나중에는 한약을 조제해서 직접 달여 먹었다.
그 당시 시골에 약이라고는 빨간 옥도정기와 종기에 바르는 고약 따위가 전부였다. 마을에서 급체라도 나면 환자 가족들이 찾아와 작은아버지를 업고 갔다. 때로는 이웃마을에서 침을 맞으러 오기도 하였다. 집안에 침쟁이를 두었다는 역정이 잦아지면서 용하다는 소문도 담을 넘어 퍼져나갔다. 싸늘한 도포자락에 서릿발이 날려도 할머니는 집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을 애써 막지 않았다.
재주가 많고 돈이 있어도 꼽추에게 시집 올 처녀가 없었다. 가끔씩 혼담이 오갔지만 병신이라는 결점 탓에 번번이 깨어졌다. 낙담한 할머니의 가슴속에 멍만 깊어져 갔다. 하는 수 없이 꼽추라는 것을 속이고 먼 곳에서 처녀를 사오다시피 데려와 혼사를 치렀다. 놀란 숙모가 도망이라도 갈까봐 할머니는 매일 밤 문밖에서 잔기침을 하면서 밤을 새웠다. 친정집에 논 세마지기를 안겨주고 시집온 숙모는 행랑채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다. 해마다 시아버지 눈을 피해 찢어지게 가난했던 사돈집으로 소달구지에 쌀가마니를 실어 보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없는 날이면 장애를 안고 홀로 남겨질 아들이었다. 못마땅한 혼사로 망신스럽다는 집안의 냉대가 먹감나무에 빗물이 스며들 듯 가슴에 젖어들어도 묵묵히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그 이듬해 한약방을 차려서 작은아버지 내외를 분가시켰다. 장애가 죄인이 아니건만 땅만 보고 살던 아들을 새처럼 훨훨 세상 밖으로 날려 보내준 것이다. 뒷마당에 자라던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를 베어 거기에 ‘감나무한약방’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살림나던 날, 큰절 올리는 작은아버지 등을 만지며 할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작은아버지는 먹감나무의 상처 속에 스며든 당신의 소중한 수묵화였다. 눈물과 회한과 아픔과 고통이 어우러진 세상에 하나 뿐인 그림이었다.
검은 멍 자국이 무늬가 되기는 어렵다. 나무는 고통을 제 안으로 온전히 껴안은 후에라야 비로소 한 폭의 수묵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시아버지의 냉대와 동네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멸시가 힘들어 비루한 목숨을 아들과 함께 놓아 버리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할머니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힘으로 한 많은 운명을 극복했다. 오늘날 작은아버지의 성취는 오롯이 할머니의 지극정성 때문이었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조개는 제 살 속을 파고든 모래를 감싸 안아 오랜 시간 고통을 감내한 뒤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낸다. 장애아들은 할머니의 살 속에 파고든 모래알이었다. 고통을 참으며 자신 안의 상처를 조개처럼 감싸 안았다.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작은아버지를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으로 세상에 내어놓은 것이었다. 상처를 승화시켜 만든 할머니만의 진주였다.
상처받고 힘들었던 날들 속으로 스며든 빗물은 내 삶에 어떤 무늬를 그려 놓았을까?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빗물이 새어 들지라도 참고 견뎌낸다면 언젠가 나만의 무늬가 새겨지리라. 상처가 깊을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먹감나무처럼.
길게 가로누운 나무 위에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다. 검은 무늬 사이로 그 옛날 할머니 집으로 가던 고샅길이 떠오르고 감나무 잎 사이로 바람소리가 들린다. 정갈하게 가르마를 쪽진 할머니가 곰방대를 물고 미소 짓는다. 햇살아래 펼쳐진 수묵화가 일순 환해진다
'문예당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년 인천시민문예대전 수필 수상작] 기다리는 나무 / 조현숙 (0) | 2016.12.30 |
---|---|
[2016 동서문학상 수필 은상] 글자를 품은 나무 / 이정화 (0) | 2016.12.26 |
[2016년 신라문학상 수필 대상] 풀매 / 신정애 (0) | 2016.12.19 |
[2016 제13회 동서문학상 수필 금상] 단아한 슬픔 / 김진순 (0) | 2016.12.12 |
[2016년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필 동상] 물 한 잔 / 김광규 (0) | 2016.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