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일출(日出) / 반숙자

희라킴 2016. 11. 21. 09:37


일출(日出)


                                                                                                                                          반숙자

 

 이상한 물체들이 숨죽이며 이동한다. 이 깊은 밤 어느 집을 습격할 무리들인가. 질서정연한 걸 보면 취객은 아닌 성싶고 큰 길에는 지나는 차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만난 첫 장면이다. 먼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각은 오전 두 시 반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에 스무 명 정도 넘어 보이는 사람이 모여 있었다. 어둠 속에서 지켜보았다. 이런 습성은 어수선한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만이 지니는 특별한 관심일지도 모른다.


 노동자 모습의 사람들이 이른 새벽에 모여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어느 노조의 단체가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장소치고는 너무 외곽이고 머리에는 붉은 띠를 두를 터인데 눈에 뜨지 않는다. 바로 그때였다. 나의 관심을 밀어제치며 트럭 한 대가 와 멈췄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순식간에 올라타고는 떠나버렸다.


 설성교 다리목에 조립식 건물이 들어섰다. 농작물을 심은 귀퉁이라 경지정리도 되지 않아 허술한 건물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새벽 미사를 갈 때면 지나는 길이라 환하게 켜진 사무실에 저절로 눈이 갔다.


 어떤 날은 새벽 운동을 하러 가는 길에 만난다. 그런데 도깨비 시장처럼 한 때 반짝하고 운동에서 돌아올 때쯤에는 썰물 빠진 갯벌처럼 적막이 고이는 것이다. 그 적막 속에 그들이 타고 온 자전거나 오토바이, 트럭들이 한 폭의 정물화가 된다.


 이런 풍경과는 달리 내가 걷는 길에는 시골 서정이 넘친다. 물안개 자욱한 개울에서 두루미가 힘차게 솟아오르거나 평곡 들녘에 펼쳐지는 계절의 색깔은 모네의 그림처럼 아련하다. 쑥부쟁이부터 망초꽃이 꽃사태를 이루다가 어느 날 새벽부터는 달맞이꽃이 이슬에 옷고름도 못 여민 채 나를 맞이했다. 그 중에서도 발목을 잡는 것은 촌색시 같은 메꽃이다. 다른 풀잎 뒤에 몸을 감추고 부끄러운 듯 배시시 피어나는 모습이 정겹다. 미적대던 아침 운동은 탄력이 붙었다.


 말복이 지나고 나서 피서 철도 끝났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와 일을 시작하는 무렵 비가 내리는 새벽이었다.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선 나는 예의 그 다리목에서 커다란 군중을 만났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수로는 최고 같았다.


 가게는 불이 환하고 활짝 열린 미닫이문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과 담배를 피우며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섯 평도 안 돼 보이는 가게 안이 꽉 찬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비는 내리고 추녀가 없는 건물이니 어디서 비를 피할 수 있으랴. 아침 여덟 시가 되자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내가 용기를 내서 가게 안으로 들어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가게 안은 썰렁했다. 땟국이 흐르는 소파가 벽 쪽으로 늘어서 있고 사무용 책상 하나와 정수기 한 대 그리고 커피믹스가 수북한 쟁반과 종이컵이 전부였다. 남아 있던 두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때마침 울리고 있는 전화벨 소리와 나 사이를 오갔다. 젊은 사람이 책상 서랍에서 봉투 하나를 내어 중년 남자에게 건네자 황송한 듯 받아들고 문을 나섰다.


 거두절미하고 새벽마다 모이는 도깨비 같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가를 물어보았다. ‘개미용역’이라 했다. 개미처럼 모여서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근로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일로 일감은 농사로부터 건물 철거와 잡부 그리고 벌초대행까지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 개미용역에 적을 두고 있는 근로자는 사십여 명이고 연령층은 삼십 대에서 육심 대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담배를 따는 일은 새벽 두 시 반부터 출근을 하고 보통은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면 일감을 찾아 다 떠난다는 것이다. 하루 일당은 농사 일은 육만 오천 원이고 건물철거나 잡부는 십만 원인데 젊은이들이 먼저 뽑혀나가고 육십 대 사람들은 어떤 날은 공을 치기도 한다. 이들은 처음부터 일일 근로자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절반 가량은 사십 대에 일터에서 밀려난 사오정도 많다. 정부에서는 일자리 창출에 전력을 다한다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모양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또는 자식들의 학자금이 필요해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공통된 특징이 아주 낙천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자산은 건강한 몸뚱이 하나다. 몸이 아프기 전에는 쉬는 때가 없는 사람들로 개미용역에 맞는 사람들이다. 가끔 가다가 조금 전에 그 분처럼 집안에 우환이 생겨서 병원비를 가불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루하루 삶에 최선을 다하고 일할 수 있는 건강을 감사한다는 말을 들을 때 이들을 도깨비 같다고 생각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이들이 서리를 맞을 때도 있었다. 바로 구제금융 시기였다. 일당 육만 오천 원하던 임금이 실직자가 늘어나자 하루아침에 이만 원으로 떨어졌다. 그 이만 원을 벌기 위해 벌떼처럼 몰려오는 사람들이 그냥 돌아설 때면 라면 값이라도 쥐어 주며 마음이 먼저 울었다고 했다.


 이들에게는 토요 휴무제도, 공휴일도 없다. 사람들이 바다로 산으로 피서를 간다고 떠들썩할 때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나와 노동을 통해 이용할 양식을 벌어간다. 일확천금을 기대하거나 노년에 받는 연금 수혜자도 아니다. 그러나 남이 누리는 호사를 시샘하지 않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땀을 먹고 사는 정직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 여름 개미용역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의 희망을 길어 올린다. 어둠 속에서 북을 치며 해를 불러올리던 흑인 고수 올훼를 떠올리며 바로 이들이 해를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지 싶은 것이다. 세상에 큰일을 한다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자동차의 엔진이라면 이들이야말로 그 엔진을 이루는 부품임을 다시 생각해본다.


 올 여름은 비가 잦다. 벌써 들녘에는 벼이삭이 패서 가을을 예고하는데 오늘도 비가 듣는다. 하루를 허탕 칠 개미용역 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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