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풋울음 잡기 / 노혜숙

희라킴 2016. 11. 6. 11:57




풋울음 잡기 


                                                                                                                                         노혜숙

                                                             

 온몸에 맷자국이 흡사 꽃처럼 흐드러지다. 나자마자 매로 맞고 담금질 당한 신세 같지 않게 기품이 있다. 세상에 무슨 팔자가 평생 두들겨 맞으며 노래를 불러야 한단 말이냐. 그렇게 터득한 득음 덕일까. 제대로 곰삭은 징의 울음이 깊은 골을 휘돌아 나오는 바람 소리 같다.

 시작부터 너무 꼼꼼하게 살피는 바람에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세 시간째 혹사당한 눈이 슬슬 꾀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정작 이벤트가 열리고 있는 민속박물관 3층의 전시물 관람은 건성이었다. 대강대강 목례만 건넨 채 마무리를 서두르고 있는데 홀연 생뚱맞은 이름 하나가 발목을 붙들어 세웠다. '풋울음 잡기'. 그 뒤로는 징이 적잖은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고 좌정해 있었다. 그와 더불어 한 시절을 풍미했을 징채도 꾀죄죄한 몰골로 징에 기대어 있었다. 무슨 까닭으로 '풋울음 잡기'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박물관에 다녀온 후 나는 한 동안 풋울음이라는 단어에 집착했다. 검색을 통해 '풋울음 잡기'가 징의 완성 단계 이전, 소리를 조율하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언어를 매개로 하는 기억의 재생은 엉뚱하게 비약적이었다. 풋울음이란 단어가 걸핏하면 눈물을 찍어내던 사춘기적 내 모습과 겹치면서 징은 더 이상 예사로운 눈인사로 지나칠 수 없는 악기가 되었다. 불현듯 망치질 아래 풋울음이 잡혀가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싶었다. 수소문 끝에 안성에 있는 유기 공방을 찾아갔다.

 섭씨 1300도의 도가니 속에서 징의 원재료인 구리와 주석이 하나로 섞이고 있었다. 불길은 맹렬했으나 불꽃의 중심은 투명하도록 맑고 고요해서 고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을 연상케 하는 뜨거운 헌신이었다. 이윽고 혼절하듯 한 몸이 된 쇳물을 쇠판에 올려놓고 '앞매꾼', '전매꾼', '센매꾼'이 번갈아 메로 두드려 도듬질을 했다. '방짜'란 의미 그대로 징은 후려쳐 만들어야 하는 악기였다. 불질과 담금질을 반복하며 천 번이 넘는 곰망치질을 해야 했다. ​

 도듬질 후에는 냄질, 싸게질, 부질, 담금질, 트집잡기 등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는데, 특히 마지막에 풋울음을 조율하는 재울음잡기는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마무리 과정이었다. 그 과정은 예민하고 섬세해서 단 한 번의 망치질로도 구멍이 나거나 소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잠시도 한눈을 팔아선 안 되었다. '가락의 판단자'라는 징소리의 고명한 훈장 뒤에는 그토록 지난한 내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공방 주인의 안내로 뒤쪽에 있는 유기박물관엘 들렀다. 박물관은 공방을 처음 연 윗대 어른의 염원에 따라 그 자손들이 개관한 것이었다. 들어가면서 바로 단청걸이에 걸린 상사징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얼른 봐도 단단한 맷집을 지닌 지름 두자 너비의 대정大鉦은 수많은 동심운을 가슴에 품은 채 광휘로웠다.


 경이로운 눈길로 대정의 몸체를 쓰다듬으며 인고의 극치를 달려왔을 그의 지난 시간들을 위무했다. 무릇 징은 정중앙을 쳐서 소리가 고루 퍼져나가게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숨을 가다듬고 조심스레 징의 한가운데를 쳤다. 부드럽고 묵직한 소리의 고즈넉한 여운이 가슴으로 밀물져 왔다. 단순한 가락에 얹힌 수많은 곡절의 깊이가 넉넉히 헤아려지는 듯싶었다. 과연, 뜨거운 불길과 담금질을 감당하며 쟁여온 징의 장중한 소리는 '모든 소리를 감싸는 포용의 울음'이라 할 만했다.

 풋울음을 우는 것이 비단 징 뿐이겠는가. 우리네 삶도 어쩌면 굽이굽이 풋울음을 잡는 망치질의 연속인지 모른다. 지명의 고개를 넘는 동안 내 삶에도 제법 맷집이 생겼지만 아직 재울음의 언저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돌아보건대 고통에 대한 성찰보다는 원망이 더 깊었다. 가풀막에서 자라는 나무가 처지를 비관하여 자라기를 포기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던가. 어쩌면 나의 회한은 주어진 척박한 토양보다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조차 갖지 않았던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것일 수 있다. 그 어느 것에도 뜨겁게 헌신한 적 없이 시늉만 하면서 언감생심 삶의 득음을 탐냈던 ​것일까.

 울 테면 방자 징처럼 제대로 울 일이다. 언제까지 사춘기적 풋울음을 울 참인가. 두들겨라. 두들기고 또 두들겨 패서 한번​쯤 저 징의 깊디깊은 진짜 울음을 울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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