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사탑斜塔
옥화재
몇 년을 씨름 중이던 허리 통증이 살짝 줄어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허물어져 자리보전상황으로까지 이어졌었는데 병원으로, 운동으로 집중 치료를 하면서 조금 회복된 것이다. 말로는 그냥 받아들인다면서도 모르는 사이 아픈 몸짓은 때때로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도 하고 이기적인 방패막이가 되기도 했다.
80세의 부음은 좀 빠르다는 일반적인 인식은 빠르게 의술이 발달하고 영양이 좋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사방에 널려있는 건강정보로 스스로 자기관리를 잘 하는 것으로 인한 것이리라. 노력하면 어느 정도 수명연장이 가능해진다는 증거다.
국민복지사업으로 도시와 농촌 곳곳에 체육시설이 마련되었다.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지고 체육관이, 산책로가 준비되어 마음만 두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
서울이 가까운데다 산과 강이 아름다워 많은 은퇴 도시인들이 모여 사는 양평지역 역시 노인인구가 많아졌다. 이곳 수영장은 항시 만원이다. 특히 아쿠아로빅이라 불리는 수중 운동시간은 수시로 수용인원보다 많은 사람으로 넘쳐난다. 강사의 몸짓을 따라 수십 명이 동시에 움직이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음악의 흐름대로 물은 요동하고, 발길질과 함께 동시에 내지르는 기압소리는 천정을 들었다 놓는다.
사우나에서 시작되는 우스갯말에 마음은 이미 열려지고, 한 시간쯤 펄펄 뛰고 나면 잠시 동안은 나이도 잊는다. 언뜻보면 몸짓도 크고 활발해 모두 펄펄 뛰는 젊은이로 보이지만 첨벙거림이 가라앉은 후에 보면 절반쯤은 칠십 노인들이다.
양쪽 무릎에 수술자국이 선명한 사람도 고관절부분을 수술한 사람도 함께 물속에서 춤을 춘다. 등허리에 길게 상흔을 지닌 사람들도 음악소리에 함께 어우러진다. 예전 같았으면 고려장 시기를 넘긴 연배들이 물속에선 청춘이다.
열심히 따라하는 나도 이미 기울어있다. 척추 협착증이 너무 진행이 되어 수술의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진단에 절박한 심정으로 수영장을 찾았었다. 심하게 기울어가던 자세가 일단 멈춘 느낌에 바쁘게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피사의 사탑’을 기억하란다.
사탑斜塔은 기울어진 탑을 일컫는다. 이탈리아 피사 대성당의 종탑은 1173년에 시작해 약 200년간 만들어졌는데 공사가 끝난 후에 바로 기울기 시작했단다. 반대편 기둥에 납을 다는 등 기술과 과학을 이용해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했었지만 오래 전부터 5.5도 기울어진 지금의 모양새로 멈춰있다. 중세 7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되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기울어진 탑이 새로운 존재의미로 내게로 다가선다.
땅덩이를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나이 들어가는 육신을 어이하랴. 기울어진 모습을 사랑하자며 날마다 내게다 주문을 외운다. 두 팔을 한껏 벌려 나를 안아준다. 엇비낀 팔 안에서 예전의 내가 환하게 웃고 있다.
요즘 물속에서도 때때로 행복해서 웃는다. 내 속에 아니무스가 날로 강성해져 조신한 여자의 모습에서는 살짝 비켜났지만 아내자리는 여전히 지키고 있다. 간간이 치기를 보일 때도 있지만 어미역할 또한 비슷하게는 감당한다싶은데다가 때가 이르러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 기쁘게 응할 마음까지 얻었으니 행복할 밖에.
낡아진 곳이 어디 허리뿐이랴. 물속 여기저기에서 사탑들이 춤을 춘다. 때때로 물 안과 밖에서 서로 엉기기도 하지만 살아온 날 수만큼 쌓인 지혜로 풀고는 곧 허허로이 웃는다. 빨간색 수영모자로 하나 됨을 과시하면서.
기울어진 채로 몇 백 년을 견뎌오는 피사의 사탑에 견줄 수야 없겠지만 수십 년을 자기 습관대로 움직여 좌우로 또는 앞뒤로 기울어진 몸들이 물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자식들 애먹이지 않으려 열심히 따라하는 저네들이 오늘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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