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30초에 건다
임선희
세기의 미녀 마릴린 몬로의 영상과 함께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존 휴스톤이 감독한 갱영화 <아스팔트 정글>의 라스트 신. 살인을 저지른 한 사나이가 필사적으로 달려서 국경선까지 도망쳐간다. 국경만 넘어서면 이제 잡힐 염려는 없다. 그는 약국을 발견하고 그곳에 들러 숨을 돌리며 커피를 마신다. 약국에서 한 발자국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그곳엔 자유의 땅이 기다리고 있다. 한 잔의 커피를 다 마신 다음 그는 문득 곁에 있는 주크박스에 눈을 던진다.
순간 음악을 들었으면 하는 충동이 인다. 그는 10센트 짜리 동전 한 닢을 넣고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파랗게 갠 국경의 하늘에선 새들이 지저귀고, 바람이 불 때마다 햇빛을 받은 나무이파리가 반짝인다. 사람을 죽여서까지 손에 넣은 돈은 평생 쓰고도 남을 거액이었다.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그리움으로 한 곡을 다 들은 다음 그는 의자에서 일어선다. 그때 사나이 곁으로 한 명의 형사가 수갑을 들고 다가선다. 그는 자유를 바로 눈앞에 두고서 체포된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태양을 볼 수 없는 콘크리트의 담장 속으로 끌려간다.
문 앞에서 그는 잠깐 발을 멈추더니 점원에게
묻는다.
“이 한 곡의 레코드는 몇 분이
걸렸지요?”
“3분 반쯤일 걸요.”
겨우 레코드 한 곡에 해당하는 짧은 휴식. 인간다움을 되찾았던 그의 3분 30초가 일생을 걸었던 대사업(?)을 날리고 만 것이다. 그는 레코드 한 곡을 듣는 값을 세상에서 제일 비싸게 지불한 사나이였다. 3분 30초라는 시간이 참으로 인간의 한평생을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인가 하는 관객의 회의 속에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소녀들이 열광하는 라이오넬 리치와 다이에나 로스의 이중창 <Endless Love>는 3분 50초에서 끝이 나고, 조용필의 노래도 대체로 3분이면 한 곡을 마친다. 노래 한 곡을 듣는 이 짧은 시간에다 인생을 건 사나이의 숙명은 무모하고도 슬픈 것이었다. 노래 한 곡을 듣는 3분 30초. 이 사이에 우리들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누가 더 빠른지 내기를 한다고 쳐서 라면 두 그릇을 먹거나, 노트 한 장에 70개의 단어를 적거나, 혹은 엄마를 설득해서 일금 3천원을 뜯어내거나 하는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일상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시간이 남아서 주체할 수 없는 사람, 혹은 매일 똑같은 것을 되풀이하면서 권태에 빠진 사람, 이들에게 있어 3분 30초란 쓰레기통에 쑤셔박아도 아깝지 않은 부스러기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찮은 시간에다 일생을 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면서 그들은 길가의 돌멩이를 차듯이 차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짧은 시간에 도전하는 일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3일이 걸려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는 3분 동안에 느끼는 편이 참으로 삶의 찬란한 영광과 참담한 고통을 선명하게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급히 사는 삶의 충만함이라고 할까? 3분간의 피나는 대결. 한 라운드, 한 라운드에서 전 생애와 목숨까지를 거는 권투선수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무하마드 알리가 소니 리스튼 선수를 쓰러뜨리고 처음으로 헤비급 세계챔피언이 되는 데 소요한 시간은 3분이 채 안 되는 2분 몇십 초였다. 그 후 게임을 가질 때마다 몇십 억의 전 지구 가족을 같은 시간에 같은 흥분 속으로 몰고 간 그에게 미국이 가장 위대한 사나이로 칭송한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80년의 동아방송국, 82년의 KBS에서 도합 23개월을 나는 매일 아침 3분30초짜리 <여성컬럼>을 방송했다. 마이크 앞의 시계에서 찰칵찰칵 초침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정확하게 3분30초의 방송을 위한 7장의 원고를 준비하느라고 종종 밤을 새웠다. 혹은 새벽 서너 시의 어둠 속에 앉아서 빈속에다 진한 커피를 몇 잔씩 연거푸 마시기도 했다. 그 3분 30초 속에서 보다 치열하게, 보다 왕성하게 살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3분 30초는 나의 에너지가 압축된 하루하루의 하이라이트였다.
지난 크리스마스 무렵, 나는 젊은 여성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조그맣고 예쁜 구슬지갑이었다. 그리고 지갑 속에는 10원짜리 동전 2개가 동그마니 처량하게 들어있었다. 선물의 주인이 잊어버리고 그 속에 떨어뜨린 것일까? 그렇지만 케이스에 넣어서 정성껏 포장한 것으로 보아 실수라고 간주하기는 힘드는 일이다. 무슨 뜻이 들어 있을 텐데 그 뜻이란 무엇일까. 과연 동전 2개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껌 한 통, 사탕 한 알을 살 수가 없고, 일반버스 한 번을 탈 수도 없는 돈이다.
잠시 후 나는 “알았다, 알았어!” 속으로 외쳤다. ‘이건 전화 한 통을 걸 수 있는 돈이다.’ 선물을 보내 준 여성의 의도는 구슬지갑이 아니라 실로 3분간의 대화에 있었던 것이다. 구슬지갑은 그 3분간의 대화를 담은 포장지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 것인가. 그건 너무 평범한 일이고... 마침내 나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과 3분간만 대화를 하라’는 의도로 해석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어느 잡지사의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원고 마감을 하루 늦춰 달라는 부탁을 했다. 내가 만약 10대의 소녀였다면, 그래서 지금 한참 고통과 그리움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 2개의 동전은 훨씬 더 의미 있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이 멋진 선물이 되었을 텐데. 보내준 사람의 알뜰하고도 재치 있는 마음에 나는 조금 죄스러움을 느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하루 24시간 중 나를 연소시키는 시간을 3분30초만 날마다 가졌으면 하고, 그리고 그 3분30초를 메들리로 엮어서 한 해의 마지막 날에 결산해 봤으면, 마치 TV에서 일 년 동안 방영된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만 뽑아서 메들리로 보여주듯이 그렇게 해 봤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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