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흠 / 윤승원

희라킴 2016. 9. 26. 17:44



                                                                                                                                            윤승원


 코를 대자 작은 분화구들에서 물씬 단내가 난다. 올해도 어김없이 동생은 백도 한 상자를 보내왔다. 한해의 수확을 받아드는 내게 동생의 어눌한 웃음이 떠올랐다. 복숭아의 흠 같은 표정 속에서 싱그러운 향내가 풍긴다. 끝물의 복숭아에는 군데군데 흠집이 나 있다.

 최상품의 백도는 둥글고 흰빛이다. 동생이 보내온 백도는 형태가 조금 삐딱하다든지 껍질에 주근깨가 있다든지, 멍 자국이 있는 정도다. 과일을 따고 선별작업을 하는 중에 껍질이 살짝 벗겨지는 경우도 있다. 백도는 혹, 사이처가 생길세라 애지중지해야 상품의 가치를 제대로 받는다. 흠이 있는 과일은 하품으로 제값을 받기가 어렵다. 그러나 맛은 일등품에 뒤지지 않는다.

 동생은 나이 마흔에 홀아비가 됐다. 형제 중에 체격이 가장 왜소하고 키는 보통의 여자보다 작다. 머리카락은 차분하지 못하고 하늘로 솟구친, 뻣뻣한 붉은 갈색이라 돌연변이라고 했다. 묻는 말엔 항상 단답형이고 말귀가 어두운 편이라 대화가 좀체 어렵다. 그런 둘째 동생이 가엽다면서도 형제들은 서로 책임지고 싶지 않아 대책을 세워 볼 엄두를 내지 않는다. 동생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겁다. 그런데도 가끔씩 친정에 들리면 뭐라도 챙겨주려고 이것저것 봉지봉지 담아준다. 마땅히 해준 게 없어 미안하지만 그 마음을 알기에 고맙게 받아 온다.

 아버지는 세상과 이별하기 전에 둘째 동생 걱정을 많이 했다. 엄마는 혼자 살아가게 될 동생 걱정에 하늘이 무너져라 한숨이다. 요즘처럼 피임을 쉽게 할 수 있었더라면 낳지 않았을 자식이라고 할 땐 저절로 마음이 찡해진다. 둘째 동생을 임신하고 아버지가 많이 편찮아서 석 달을 입원헀다. 아버지 병간호를 하느라 엄마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거기다 입덧까지…. 그래서인지 출산 후 젖이 돌지 않아 미음을 먹여 키웠다. 젖을 먹지 못하고 자란 동생은 병치레가 잦았다. 엄마는 농사일을 하면서도 밤에는 호롱불을 켜고 홀치기를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동생에게 사물탕, 녹용, 총명탕 같은 보약을 꾸준히 먹였다. 엄마의 정성으로 동생은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한 건 방위병 근무를 할 때였다. 방위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구타를 당했는지 온몸에 멍이 들어 병원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영혼까지 멍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 후 사회생활을 못하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것들도 저 나름으로는 한두 개의 흠을 가지고 있다. 그렇듯 정형화된 딱딱함보다는 약간 흐트러짐을 가진 일탈이 좋다. 사람도 마찬가지도. 완벽하고 매사에 정확한 사람보다는 가끔씩 실수를 하는 사람이 매력적이다. 흠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고 허물을 덮어 줄줄 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를 하게 되므로 상대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이다.

 동생을 장가보내기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농부라는 것과 부족함이 많은 것을 이유로 포기할 일은 아니었다. 비슷한 상대를 골라 여러 번 선을 봤지만 동생은 거절했다. 자신은 못났지만 색시는 예쁘고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러다보니 맞는 상대를 고르기란 쉽지 않았다. 유교사상이 깊은 아버지는 고심苦心끝에 베트남 며느리를 들이자고 했다. 그러나 국제결혼을 한 동생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말이 안 통하니 소통에 문제가 있었고, 음식문화가 맞지 않으니 밥을 먹지 못하는 색시가 가엽다고 헀다. 2년을 기다렸지만 적응을 못하니 얼마나 고생이겠냐며 보내주자고 했다. 그러던 차에 새 식구는 가출을 했고 결국 이혼을 했다.

 일본의 정원사는 균형미를 이룬 정원의 한쪽 구석 잔디밭에 민들레 몇 송이를 심고, 이란에서는 아름다운 문양으로 섬세하게 짠 양탄자에 의도적으로 흠을 하나 남겨 놓는다. 그것을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한다. 완벽한 것이 주는 강압보다는 흠을 만들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다. 또 인디언들은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 때 깨진 구슬 하나를 살짝 꿰어 넣고 그것을 '영혼의 구슬'이라고 불렀다 한다. 흠의 의미를 제대로 천착한 것이리라.

 동생의 일상은 단조롭다. 소를 기르고 땅을 일구며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또래 친구가 없는 시골에서 외롭고 지루할 텐데 내색을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은 따로 있다. 동생의 삶이 가여워 보인다고 대신해 줄 수가 없다. 남들은 불쌍하게 볼지 모르지만 동생은 천사 같다. 도리어 다른 형제들을 걱정한다. 매 끼니마다 소에게 먼저 먹이를 주고 나서야 밥을 먹는다. 자신보다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질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가졌다. 동생은 자신이 키우는 소처럼 묵묵하고, 복사꽃처럼 심성이 곱다. 그런 동생의 진가를 알아주는 좋은 인연을 만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옹이는 나무의 흠이다. 그러나 옹이가 있으므로 더욱 아름다운 무늬의 가구가 되거나 건축의 재목材木으로 쓰인다. 마릴린 먼로의 입술 위의 점은 완벽한 미모엔 치명적인 흠이다. 그러나 먼로의 점은 많은 사람들이 따라 그릴만큼 매력적이고 섹시하다. 기울어진 탑을 세웠다는 것은 건축가에겐 커다란 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사의 사탑은 기울어진 흠을 가졌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하니 관광명소가 되었다. 흠이 있다고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흠으로 인해 더 독특한 개성과 매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음이다.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동생이 그런 셈이다. 형제들 다 떠난 고향을 지키고 엄마를 모시며 아버지 빈자리를 대신한다. 비록 두드러진 흠을 가졌지만 장점도 많은 동생이다. 백도를 한입 깨문다. 심성 좋은 동생의 웃음이 입 안 가득 향기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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