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으로 살아가기
최민자
신문을 읽는다. 하루라도 안 보면 큰일이 나는 듯 아침마다 엎드려 신문을 읽는다. 텔레비전을 켠다. 자고 나면 일어나는 아귀다툼에, 가 본 적 없는 이국 풍물에,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얽히고 설키는 미니시리즈에 습관처럼 눈을 맞춘다.
장 구경을 간다. 좌판 앞에 쪼그려 앉은 노파, 순대를 숭덩숭덩 썰어대는 실팍한 아낙 사이를 이리저리 배회한다. 현란한 세일광고로 사람을 끄는 백화점 안을 서성이기도 한다. 새록새록 생겨나는 문명의 이기와 화려한 물질의 성채 안에서 나는 가끔 길을 잃는다.
영화를 보거나 전시회장을 찾는다. 밋밋한 일상에서 도망치듯 빠져 나와 어둠 속에 느긋하게 기대어 앉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추상화 앞에 멍청하게 서 있어도 본다. 그것이 나에게 말 걸어 주기를, 어떤 울림으로 나를 당겨주기를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이다.
안방에 앉아, 시장으로, 전시장으로 세상 구경을 다니면서 나는 생각한다. 왜 이렇게 떠돌고 있는가. 모두들 바쁘게 제 삶을 꾸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두리번거리는가.
나는 그다지 치열하게 살아본 기억이 없다. 무엇을 간절히 추구해 본 적도, 안 되는 걸 붙잡으려 안간힘 해 본 것 같지도 않다. 주어지는 대로, 살아지는 대로, 세월아 가거라 나도 흐른다 그저 그렇게 덤덤하게 살아왔다. 진땅을 덜 밟고 이 나이까지 살아온 게 미안할 만큼, 노력보다는 요행으로 살아온 셈이다.
책을 읽고, TV를 보고, 공연이나 전시회를 찾는 일은 남의 삶을 구경하는 일이다. 남의 장단에 북 치고 장구 치며 내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다. 독자가 되고 시청자가 되고 관객이 되는 들러리의 삶, 내 역할은 그런 것일까. 초반전에 일찌감치 기권을 하고 열심히 싸우는 다른 선수들을 뒷짐지고 느긋이 관전하거나,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 저만치 떨어진 다리 위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사는 게으른 방관자 역할이 내게 주어진 배역이었을까.
전업주부라는 허울 밑에서 '백수'로 살아가는 내 팔자를 부러워하는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의사로, 훈장으로, 보험 모집인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너 참 한가하구나, 부럽다 야, 사는 것 같이 산다.... 사는 것 같이 사는 게 어떤 것일까. 험한 세상 헤쳐나가는 힘겨운 투사 역을 몽땅 가장에게 떠넘기고서, 할랑할랑 떠다니며 삶의 무의미를 외쳐대는 파렴치를 그렇게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사는 것 같이 사는 것은 그 친구들이다. 터를 다지고 단을 쌓아 착실하게 존재의 집을 짓느라 곁눈질 한번 하지 않는, 꽉 찬 그들의 일상이 부럽다. 그들은 적어도 가슴 밑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휑한 바람소리에 때없이 내몰리지는 않을 것이다.
여학교 때 선생님이 정년을 맞아 반창회 겸 저녁모임을 가졌다. 이십 팔 년 전 단발머리 시절 친구들을 지천명의 마루턱에서 상면한 것이다. 스무 명 남짓한 친구들 중에 집에 있는 친구는 나까지 서넛 뿐, 대부분이 거대한 조직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부지런히 돌고 도는 작은 톱니들로 살고 있었다. 학창 시절 단골 지각생이었던 아무개와, 출석부로 뒷머리를 얻어맞던 누구, 선생님 몰래 극장 구경 갔다가 근신처벌을 받았던 누구누구도 바깥 세상 한 귀퉁이에 제 자리를 정하고 그럴듯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적당한 관록과 여유로 인하여 친구들은 당당하고 자신이 있었다. 자기 소개를 겸하여 살아온 이야기를 하라하니 어쩌면 그렇게 말들도 잘하는지, 대인공포증이 있는 나는 차례가 되기 전에 가슴부터 뛰었다. 삼십 년 세월을 삼 분 안에 압축시킬 재간이 내겐 없을 뿐더러 그 많은 날 동안 무얼 하고 살았던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울타리 밖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밥짓고 찌개 끓이며 살아온 세월을 무어라 뭉뚱글 들려줄 것인가.
딴엔 부지런히 뛰었다 싶은데 사실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다. 아이들이 크고 남편 또한 자기 자리를 굳혀 가는 동안 나는 맴맴 제자리만 돌았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그런 이야기를 주섬주섬 이어나갔다. 타임 머신 이야기도 하였던가? 잊혀졌던 나를 만나기 위해 오늘 여기에 온 것 같다고, 요즘엔 그렇게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살고 있노라고, 횡설수설 덧붙인 것도 같다.
며칠 뒤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때 모인 친구들의 이야기 중 내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는 거였다. 내가 뭐라 했기에? 나는 정말 의아해서 물었다.
"얘는, 사십 대부터가 인생의 르네상스라 했잖아. 여태껏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이제부터는 여유를 갖고 인생을 향유하며 살아가자고...."
듣고 보니 그런 말을 한 것도 같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에게 허술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 고상한 척 폼을 잡아본 모양이다. 그것도 내 속에서 우러난 게 아닌, 어디선가 주워들은 표현일 것이다. 하긴 내 것이 어디 있는가. 여기 저기서 모아들인 자투리 지식을 스스로 체득한 양 시치미를 떼며 이 날까지 살아오지 않았던가. 지적 사기니 표절 시비에 걸려들 만큼 유명인사가 아니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유감없이 휘두르며 살아온 것이다.
미당 시인은 그의 시 '자화상'에서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라고 말한다. 시인에게 있어 '팔 할의 바람'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누구의 영혼이건 그 팔 할 정도는 바람결에 묻혀들이는 눈 동냥 귀동냥으로 채워지는 게 아닐까. 이 잔치 저 잔치 기웃거리며 보고들은 풍월로 세상을 사는 이 시대의 구경꾼도 할 말은 있다. 잔치마다 주인과 객이 있듯, 구경꾼도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훌륭한 명창도 듣는 귀가 많아야 신명이 나는 법, 소리도 소리꾼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기야 구경꾼도 구경꾼 나름, 기왕 객석에 선 바에야 '얼쑤!'나 '그렇지!'정도의 추임새는 구성지게 곁들일 줄 알고, 때맞추어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흥이 나면 더덩실 어깨춤도 출 줄 아는, 제대로 된 구경꾼이 되어 주어야겠지만,
어느 시인은 '제기된 적이 없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시를 쓴다 하였다. 글은 존재의 심연에서 울려나오는 공허한 울림에 답하기 위해 쓰여진다는 뜻이다. '너는 왜 그렇게 구경꾼으로 사는가.'하는, 제기된 적이 없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아니면, 내가 나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이 시대의 엑스트라는 오늘도 이렇게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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