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풍등風燈 / 윤승원

희라킴 2016. 8. 8. 17:43




풍등風燈
 
                                                                                                                                          윤승원

   
   어두워진 하늘로 풍등이 올라간다. 먹물처럼 번지는 어둠 속에서 수천 개의 소원들이 은은한 빛을 내며 떠오른다. 강변에 늘어선 사람들도 저마다 하나 둘 천상으로 올라가 붉은 꽃밭으로 피어난다. 어떤 이는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어떤 이들은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밤하늘 높이 올라간 풍등은 별이 되기도 하는 걸까. 오늘은 별들이 유난히 촘촘하다. 


   풍등은 제 앞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치 큰딸아이처럼. 큰아이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곧잘 자신의 길을 헤쳐 나갔다. 아이는 중학교 때 유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남편 사업이 어렵게 되자 꿈을 포기했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아이의 눈빛이 꺼질듯 잦아들었고 줄곧 최상위를 달리던 성적은 미끄럼을 탔다. 그러나 잠시 흔들리던 아이는 스스로를 딛고 일어섰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부모들을 원망도 않으면서. 주춤하던 성적은 다시 올라갔고 큰 애는 그때부터 세상을 다 알아버린 듯 성숙해져 갔다. 하고 싶다는 공부만큼은 어떻게 해서라도 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삶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나날이었다.    


   종이풍선 안에다 소원을 담아 띄우는 것이 풍등이다. 한지와 대나무, 기름을 먹인 솜뭉치 등이 주재료이다. 마른 대나무로 밑 부분의 프레임을 만들고 한지를 호리병형으로 오려 붙인 후 솜뭉치를 그 안에 넣고 불을 붙이면 떠오르게 된다. 풍등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전쟁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사용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는다. 성(城)을 중심으로 치른 전쟁에서 성 안의 사람들이 성 밖의 사람들에게 승리를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진 것이다. 이후 마을 행사 때나 명절 때 혹은 그해 농사의 풍년이나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이 풍습들은 나라마다 고유한 형태로 계속 이어져 왔다.    


   점화를 하지 않으면 풍등은 하늘로 떠오를 수가 없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꿈이 있으나 실행할 용기가 없으면 결코 이룰 수가 없다. 지난 날 나 역시 꿈이 있었다. 원대한 꿈은 아니었지만 국어선생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오지랖이 넓었던지 어려운 집안형편을 헤아리곤 쉽게 체념을 하고 말았다. 또한 아버지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분이었다. 한글정도만 깨치면 되는 것을 계집아이가 공부욕심을 낸다며 대학진학을 못하게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욕심도 부려보고 끈기 있게 아버지를 설득해 볼 걸. 그 무엇보다도 두려움을 헤쳐 나갈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러웠다. 


   풍등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선명한 것은 애니메이션 영화 <라푼젤>의 명장면이다. 두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만나 배를 타고 갈 때 풍등이 별처럼 반짝이는 밤하늘은 단연코 영화의 압권이었다. 세계 각국에서도 여러 가지 형태의 풍등축제가 열린다. 폴란드의 여름풍등축제인 ‘노츠 쿠파위’는 일 년 중 가장 밤이 짧은 날에 열린다. 부인이 집을 떠난 남편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밤하늘에 풍등을 날리는 것으로 시작된 이 축제는 무려 만 오천 개의 풍등을 동시에 날려 장관을 이룬다. 그 외에도 태국 치앙마이 이뺑축제 등 세계 곳곳에서 풍등을 띄우는 행사가 열린다. 어느 곳에서든 그 의미는 소원을 담아 하늘에 띄우는 것이다.   


   대학을 진학하고도 전공이 자신에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고민하던 딸은 4학년 때 갑자기 휴학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홀로 두어 달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교류하고 제 견문을 넓혀 나갔다.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고 일 년 동안 학자금을 번 후 해외유학을 떠났다. 딸의 꿈은 지구의 환경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동남아시아 여행을 하면서 오지마을의 식수 사정을 알게 된 후로 더욱 마음을 굳힌 듯 했다. 해수(海水)를 담수(潭水)로 바꿀 수도 있는 현실인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분명 있을 것이라며 공학도 다운 각오를 다졌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내가 성취하지 못한 것을 해내는 아이를 보며 진즉에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것을 보상받기 위해서일까. 자식들에게는 무한한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해도 마음으론 한없는 응원을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고, 그러기 위해선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의 인생은 아이들의 몫이다.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고 싶지는 않았다. 혹자는 여자아이를 방목하고 키운다고 나무라기도 했지만 제 꿈을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이제 손에 든 풍등을 띄워 올릴 준비를 한다. 행사 때 띄우려고 며칠을 걸려 만든 것이었다. 예쁜 빛깔의 한지를 골라 붙이고 수놓듯 아이들이 좋아하는 나비모양도 그려 넣었다. 날개 뿐 아니라 더듬이며 다리까지 정성을 들였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과 아이들의 꿈을 이루게 해 달라는 소망을 담았다. 가만히 손바닥 안의 풍등을 놓았다. 풍등은 잠시 그 자리에서 망설이듯 움직임이 없더니 천천히 하늘로 올라간다.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흔들듯 몸을 흔들며 공중의 강물을 헤엄쳐 간다. 칠흑 같은 어둠을 아랑곳 않고.  


   밤이 이슥한 강변의 하늘엔 수많은 풍등들이 떠 있다. 얼핏 강을 거슬러 오르는 송사리 떼 같기도 하고 어릴 적 수풀 위로 날아오르던 반딧불이 같기도 하다. 저마다의 소원을 품고 우주 저쪽으로 비행하는 꽃송이들의 즐거운 향연. 풍등 사이로 문득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웃는 아이의 얼굴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다.

 

-<수필세계> 2016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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