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스크랩] 숨절 / 김은주

희라킴 2016. 3. 21. 08:57

 

숨절

 

                                                                                                                              김은주

 

 

푹 꺼진 쇄골 안이 어둑하다. 마를 대로 말라 목 아래 겨우 걸쳐진 쇄골은 얇은 살에 덮여 위태롭다. 겨울 문풍지마냥 시시로 떨리는 쇄골 안의 숨소리가 내 심장을 뜯는다. 거칠게 숨을 내쉴 때마다 얇은 피부가 찢어질 것 같아 눈길을 뗄 수 없다. 펄럭이는 저 얇은 막마저 움직이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으로 나는 내내 엄마의 목덜미만 내려다보고 섰다. 아무리 궁리해도 저 숨소리를 편안히 해드릴 방도가 없다. 목 뒤를 들어 베게 하나를 더 받쳐 봐도 소용이 없다.

 

다시 침대로 올라가 등 뒤에서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천근 같은 엄마 몸을 위로 당겨 세워보지만 가쁜 숨소리는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끌어당기던 손을 놓고 앉아 엄마를 안아본다. 내 몸에 비스듬히 기댄 엄마 몸의 무게감이 막막하고 습하다. 몸 앞으로 감은 내 손이 엄마 젖무덤에 가 닿아 있다. 막내인 내가 가장 오래 매달려 있었던 언덕이다. 가만 그 언덕을 쓰다듬어 본다. 마른 가슴에 매달린 그 언덕은, 이제 언덕이 아니다. 밋밋한 그곳에서 일곱 생명이 자라났다. 시시막금 그곳에서 먹고 비비며 세상의 비바람을 피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빈 언덕마저 이제 사라질 모양이다.

 

가늘게 눈을 뜬 엄마가 가슴으로 손을 올린다. 올린 손으로 힘없이 가슴을 문지르더니 와 이래 숨절이 가뿌노하신다.

 

숨절.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엄마 말이다. 그 옛날 엄마만 쓰던 말들이 따로 있었다. 그 뜻이 무엇인지, 뭘 의미하는지 모르면서 나는 그 말들을 먹고 자랐다. 바짝 마른 입술로 엄마가 내뱉은 숨절이라는 단어에 나는 금방 목이 멘다. 수시로 엄마 입을 통해 들어오던 소리다. 무거운 짐을 이고 오든지 가파른 계단을 오른 다음, 늘 하시던 소리였다.

 

숨절이라니. 숨결도 아니고, 잘못 들으면 숨질 같기도 한데 분명히 숨절이라 말한다. 사전 상에는 없는 엄마만의 말들이 엄마냄새와 함께 내 핏속에 돌아다닌다. 숨결은 말 그대로 들숨과 날숨일 터이고 숨질은 숨소리가 다니는 길이었던가? 엄마는 길을 늘 이라 하고 질깡이라고 발음했다. 아슴아슴한 엄마의 말들이 불분명해 다시 엄마 가까이 귀를 대고 물으니 분명 숨절이라 말한다.

 

곡기를 놓으신 후 도무지 말까지 다 잃어버린 듯 아무 말씀이 없더니 한숨에 섞여 나온 숨절이라는 말이 창밖 가을 햇살이 무색할 정도로 내 몸에 한기를 뿌린다.

 

물 한 모금 넘기기가 태산 옮기는 일보다 더 힘들어 보인다. 이미 몸은 문을 닫은 지 오래일 성싶다.

나는 죽 몸서리증 난데이. 밥 묵을란다.’

그저 물만 면한 멀건 죽사발을 들여다보며 엄마가 힘을 모아 한 말이다. 먹겠다는 의지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 사이에서 엄마는 길을 잃은 지 오래다.

 

몸과 마음이 어긋나니 몸은 물 한모금도 받아들이질 않는다. 마른 입술이라도 축일 요량으로 떠 넣은 물 한 모금을 오래 머금고 계시더니 끝내 울컥울컥 검은 물을 토해낸다. 다급히 휴지로 검은 물을 받아내 보지만 이미 속옷 앞섶이 다 젖었다. 쇄골 안쪽에서 들끓던 숨소리들이 일제히 밖으로 끌려 나왔는지 검은 물이 무섭기만 하다. 나는 검은 숨소리들을 황급히 닦아낸다. 찰나에 내 몸은 흥건히 땀으로 젖는다.

 

젖은 옷을 갈아 입히고 편안히 눕혀 드리니 그제야 긴 한숨을 내뱉는다. 입을 앞으로 모으고 엄마가 힘들 때마다 내쉬던 낯익은 숨소리다. 해녀들이 참았던 숨을 수면 밖에서 길게 내뱉듯 후유하며 새나오는 엄마만의 한숨소리. 옅은 휘파람소리 같은 그 숨소리 끝에 묻어 나오는 관세음보살이라는 단어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그 말뜻을 알게 되었다. 한숨 소리와 섞여 묘하게 내 귀에 각인되었던 단어들.

 

바늘 끝같이 위태롭던 호흡이 잠시 골라졌다. 갈아입힌 옷깃을 맞춰놓고 보니 면양말이 추워 보인다. 엄마께 화장실 다녀오마고 말하고는 병원 길 건너 양말 집에 가 양말 두 켤례를 샀다. 하나는 분홍 발목양말이고, 또 하나는 발목이 긴 노란색 수면양말이다. 그저 따뜻한 봄까지만이라도 견뎌 줄 것을 기원하며 일부러 화사한 색깔의 양말을 샀다. 고른 양말에 손을 집어넣어보니 도톰하니 폭신한 감촉이 손바닥에 봄이 온 것 같다. 이 양말을 신으면 싸늘했던 엄마 발도 따뜻해져 올까?

 

돌아와 엄마 발치에 서서 양말 두 개를 흔들어 본다. 감았던 눈을 뜨고 야야 뭐꼬?’ 물으신다. 양말을 들고 어느 것이 더 마음에 드느냐고 물으니 평소 고운 걸 좋아하시는 엄마는 당연히 분홍이다. 발등에 꽃이 그려진 양말을 신기고 두 발을 번쩍 들어 올리니 환하게 웃으신다. 병원 오고는 처음 보는 웃음이다.

 

그것도 잠시 다시 호흡이 가빠진다. 토하느라 기진한 엄마는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불 깊숙이 손을 넣고 발을 만져 본다. 양말 사이로 손을 넣어 만져보니 얼음이다. 다시 발목이 긴 양말로 갈아 신겨도 아무 소용이 없다. 쇄골 안 깊은 곳에 숨절만 분주할 뿐이다.

 

조금 남은 몸 안에 기운마저 점점 소진해 가는지 아프다고 앓지도 않는다. 갈 것은 기어이 가고야 말 모양이다.

 

아이처럼 분첩을 사 달라고 조르던 엄마는 이제 하늘 아래 어디에도 없다. 자다가 불현듯 눈 뜬 새벽이 참으로 견디기 힘들다. 시간과 시간 사이, 일과 일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 이 짧은 찰나가 막막하기 그지없다. 음력 구월 그믐날, 엄마 가시고 흰 눈이 천지를 뒤덮었는데도 어디에도 엄마는 없다.

 

나눌 수 없는 엄마의 기쁜 숨절을 들여다보며 밤을 새울 때는 그 고통이 고스란히 내게 전이되는 듯 힘들더니, 이제는 그 고통스럽던 모습마저 볼 수 없어 다시는 만질 수 없어 매순간이 먹먹하다. 아직은 아무것도 내 오감 안에 현실로 각인되지 않는다. 쇄골 깊숙이 펄떡이던 엄마의 숨절을 매일 상실의 멀건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다.

 

 

([에세이스트] 2011.1.2.)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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