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스크랩] 걸을 수 있을 때까지 / 정성화

희라킴 2016. 3. 20. 13:35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정성화

    

 

삼십 년 만에 여고 동창들을 만나기로 했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불을 켜고 졸업 앨범을 꺼냈다. 1반에서 8반까지 모든 친구들 모습을 눈으로 꼭꼭 짚어 나갔다.

 

내가 동창회를 간다고 하니 남편이 빙긋이 웃으며 자신의 동창회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초등학교 동창들을 삼십 년 만에 만나 환호하고 있는데 한 녀석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야들아, 상철이 아부지 오셨다.” 그 순간 모두 일어나 그 어른을 향해 꾸벅 절을 하는데, 그가 얼른 모자를 벗으면서 “아니다, 내다. 상철이다.” 하더라는 것이다. 마음은 아직 초등학교 시절 그대로인데 몸은 어느새 중년 고개를 넘고 있더라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삼 년은 튀밥이 되는 과정과 닮았다. 한 무쇠통 안에 들어간 곡식 알갱이들은 통 안에서 뒤섞인 채 장작불 열기를 함께 견딘다. 비슷한 고민을 나누며, 비슷한 속도로 알갱이들은 익어간다. 졸업이란 다 익은 튀밥이 둥근 철망 속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 ‘펑’하는 축포와 함께 달짝지근한 냄새와 하얀 김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우리는 그때 우리 미래도 마음먹은 대로 한껏 튀겨낼 수 있으리 믿었다.

 

시간이 되자 친구들이 하나 둘 동창회장으로 들어섰다. 졸업한 지 삼십 년이 지났지만, 그 시절 모습이 다들 조금씩 남아 있었다. 앨범을 여러 번 보고 갔음에도, 친구들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명패를 슬쩍 커닝했다. 그날 최고 귀중품은 단연 이름이 적힌 명패 목걸이였다.

 

동창회장은 곧 시끌벅적해졌다. 오랜 세월 만나지 않았던 이들이 동창이란 이유 하나로 금세 한 덩어리 반죽이 되어버리는 게 신기했다. 어느 정신과 의사 말에 따르면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특별한 친밀감을 느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자아와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만나 서로 큰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창이란 한 과수원 안에서 자란 과실이라 할 수 있다. 그 과실들끼리 기억하는 햇살과 바람과 폭풍우가 있다. 동창회란 그 시절 햇살과 바람과 폭풍우를 다시 기억하는 자리이니만큼 떠들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반장을 했던 어느 친구는 아직도 자신이 반장이라는 생각이 드는지, “부반장 뭐하노? 떠드는 아이들 이름 좀 적어라, 빨리!”라고 소리를 질렀고, 그 옛날 교실에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대판으로 싸운 두 친구는 서로 부실한 머리숱을 걱정하며 그때 미안했다며 때늦은 사과를 나누었다.

 

밤이고 낮이고 ‘5분 대기조’로 살아가는 아줌마들이 그날만큼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네 집 며느리. 아파트 몇 호 아줌마 등 호칭을 벗어놓고 그 시절로 돌아갔다. 그날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의 쉼표가 되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우리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동창회를 하자고 했다. 동창회장을 나서며 우리는 다시 소리쳤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라고.

 

동창회란 우리 삶의 공간 중에서 가장 청정지역이 아닌가 싶다. 그 모임에 필요한 것은 우정과 추억뿐이다. 수려한 외모도 재산도 지위도 사회적 배경도 필요치 않다. 지금 이대로 친구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친구들과 터놓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동안 풀리지 않던 인생 문제 답이 떠오르기도 하고 위로와 충고도 얻는다. 어느 지인은 자신이 가장 불행한 줄 알았는데, 동창회에 나가보니 더 힘든 친구가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도 다시 용기를 내게 되었다고 했다. 나 역시 그날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박수하고 몸을 흔들다 보니 내 삶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날 찍은 동창회 단체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 다들 얼굴이 ‘성냥알’만하다. 그래도 이젠 누군지 다 안다. 하얀 얼굴들이 진주알보다 더 예쁘다.**

 

* 수필세계사 刊 <봄은 서커스 트럭을 타고>에서 발췌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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