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엄마 / 박경주
아들의 수저를 밥상 위에 놓아본다. 저녁식사를 함께하지 못할 거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어머니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어렵게 곗돈을 부어 식구마다 한 벌씩의 은수저를 장만하셨던 엄마. 온 식구들을 어루만지듯, 한 벌 한 벌 정성껏 수저를 닦던 엄마에게, 수저는 또 다른 '우리'였을 것이다.
큰오빠 네에 살던 병상의 엄마가 빠뜨리지 않고 하셨던 일은 아침식탁에 가족의 수저를 놓는 일이었다. 새벽녘 눈 뜨자마자 어김없이 부엌으로 걸어 나와 삐뚤빼뚤 수저를 놓던 엄마. 집안일을 손에서 놓았지만 그 일만은 꼬박꼬박 하셨다. 일생 가족의 식사를 마련하셨던 터라 그저 몸에 밴 습관이겠거니 하시다 말겠거니, 우리는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다.
어눌한 말씀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열 걸음도 아니 되는 안방에서 부엌까지의 길을 엄마는 참 힘들게 휘청거리며 걸어 나오시곤 했다. 안방에 진짓상을 들이겠다고 해도 극구 사양하셨다. 함께 살던 식구들에게 그건 참 불편했을 것이다. 끼니마다 곁에서 식사를 거들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환자와 함께하는 식탁이 어찌 즐겁기만 했으랴.
제발 그 일 좀 그만 두면 안 되겠소. 아버지는 말리고 또 말렸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웬 황소고집이냐고 아버지는 화를 버럭 내시곤 했다. 큰오빠 역시 몸도 편치 않은 어머니가 수저를 놓아서야 되겠냐며 그냥 누워계시라 사정을 하고 또 했지만 엄마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부탁을 하셨다. 네 어머니 아침에 수저 좀 놓지 않게 잘 말해 보아라. 어차피 다시 놓아야 하는데. 아무리 하지 말래도 소용이 없단 말이다. 딸이 말하면 듣겠지. 아버지는 내게 간곡히 말씀하셨다.
그 날 해질녘, 나는 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막 안방 문을 밀자 이불에 앉아 계시던 엄마가 반색을 했다. 나는 대뜸,
“엄마, 엄마. 아침에 수저 좀 놓지 마. 엄마는 그런 일 안해도 되잖아. 새언니가 다 할 건데. 힘들잖아, 식구들도 싫어하고.”
“그런, 말‧‧ 하려거든… 어서 가, 빨리‧가아.”
더듬거리는 말소리는 울먹였다. 얼굴엔 노기가 서렸다.
“어서‧‧가아. 너마저도…….”
“…….”
“가아.”
“엄마…….”
엄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두 귀를 손으로 막고 이불 위에 비틀비틀 일어섰다.
“나, 난‧내가‧하고‧싶어‧서…하고‧싶어…하는 것뿐이야.”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두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울고 계셨기에 비뚤어진 입은 야릇하게 움직였다. 그 입가로 눈물이 파고들었다. 등을 때리며 엄마는 나를 방문 밖으로 마구 밀어냈다. 흐느끼면서.
이튿날 정오, 엄마의 갑작스런 운명 소식이 전해졌다. 그날 아침도 엄마는 여전히 수저 놓는 일을 하셨단다. 평생 수저를 밥상 위에 놓으며 가족의 평안함을 확인하던 나의 어머니는 그날 그렇게 하늘로 가셨다. 미안해요, 엄마.
<문학나무>여름호,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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