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부방

[스크랩] 진정 시인이고픈 이들에게 / 최재환

희라킴 2016. 3. 16. 07:16

 

제 1 강 : 진정 시인이고픈 이들에게

 

 

 / 최재환

 

 

 

저는 아직 시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의 내 이야기는 자신에게 하는 넉두리일 수도 있습니다. 시에 관심을 가진지 벌써 반세기, 등단이라는 절차를 거친지도 30여 년! 그러나 나는 내가 시인이라는 소리를 한 번도 입 밖에 내본 적이 없습니다. 나중에 강의를 통해 얘기 하겠지만 문학소년 시절 내가 그리던 시인의 모습과 지금 나의 모습이 너무도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들은 훗날 정리하여 책자로 묶을 예정으로 있습니다.
다소 어색한 말이 튀어 나오더라도 공부하는 사람의 애교거니 하고 접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시 쓰는 사람을 ‘시인’이라 불러야 한다면 우리 주변에는 널려 있는 게 시인들입니다.
시인들이 많다고 나쁠 거야 없겠지만 정신이 바로 박히지 못한 시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면 모두 한 번 쯤 생각해 봐야 될 줄 압니다. 맞춤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이들이 문장 몇 개 어절별로 가름을 해놓고 ‘나도 시인입네!’하고 선량한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면 국어의 앞날이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글을 더듬더듬 음독할 수 있는 수준이면 너나없이 시인 행세를 할 테니 말입니다.
시인에겐 시도 중요하지만 시를 쓰는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도 그가 온전한 정신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의 시는 읽어 보나마나일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주위엔 갑자기 시인들이 많아졌습니다.
국민들의 국어 수준이 고르게 향상된 결과라면 쌍수로 반겨야 할 일이지만 일터를 떠나 할 일이 없어 학창시절의 향수를 못 이겨 심심풀이로 해 보는 작업이라면 가히 국어의 위기라 할 수 있겠지요. 어떤 이는 명암 맨 앞줄에 이름보다도 크게 ‘**회원’하고 문학단체 이름까지 빼어난 색 글자로 찍어 마치 유세장에서 선거 운동하는 후보자들처럼 뿌리며 의기양양하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요.
요즈음엔 등단의 문도 넓어지고 조건도 까다롭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시인 천국이 될 게 아니겠어요? 하다 보면 만인이 그리는 ‘노벨상’ 후보도 곧 뜨지 않겠는가요?
하지만 아무리 설쳐도 온전한 정신이 아니면 좋은 시가 씌어질 순 없습니다. 욕심이나 앞세우고 문학 외적인 문제에 눈독들이는 사람들에게서 좋은 시가 절대로 나올 수는 없습니다. 설혹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었다손 치더라도 뜻있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뻔한데 그래도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는 글, 그것을 어떤 이는 잡문이라고 하더이다. 실용문처럼 어떤 사실을 알렸다면 그걸로 구실을 다 한 셈이지요. 긴 문장을 아무리 멋있게 갈라놓았더라도 시의 구색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면 이것은 잡문보다도 못한 글이 되겠지요.
시인은 시인이기에 앞서 성실한 독자로서 남의 글을 소중하게 이해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활을 비추어 보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자기를 발견해야 합니다. 비록 초라한 모습이었을지라도 감추려들지 말고 가꾸고 다듬어서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자신을 안내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생활이 되풀이 되고 쌓인다면 그것이 차츰 시인이 되어지는 과정입니다. 서둘지 말고 겸손을 앞세우며 옳고 그름을 바르게 판단하는 안목을 지니게 될 때 시인으로서의 자질이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시인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등용문을 거쳤을지라도 올바른 정신을 지니지 못했다면 시인으로서의 자질은 영점이지요. 그러나 어떤 특정한 등단 절차를 거치 않았더라도 건전한 정신 속에 자신의 생활이 용해되어 그 속에서 우러난 자신만의 목소리로 부른 노래라면 그것은 만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고 그는 이미 한 사람의 훌륭한 시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에겐 자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면에 잠재해 있는 정신이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정신을 시정신, 또 예술정신이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비정신이지요.
선비정신은 옳고 그름을 바르게 볼 줄 알며 또 이것을 바르게 실천할 줄 아는 정신입니다. 결코 자신의 언행이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을 피하며, 규칙적이며 털끝만큼의 虛도 용납치 않는 정신입니다.
혹자의 눈에는 이런 정신이 독선이나 아집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그것을 우리는 개성이라 말합니다.
개성은 창작의 원천이요 개성이 결여된 작품은 눈 없는 얼굴과 같습니다. 개성은 독창성을 가리키는 말이며 독창적인 창작은 참 예술인의 생명과 같습니다.
남들이 이미 몇 번씩이나 우려먹은 낱말이나 문장들을 다시 되풀이 해 쓰면서 마치 자신의 창작이나 되는 것처럼 떠든다면 읽는 이에게 과연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독창성이 없으면 독자의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없으며 감동이 없는 글은 죽은 글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자신이 쓴 시가 예술작품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한낱 넋두리로 전락해 버리는대도 좋은 시라고 우길 사람은 없겠죠. 물론 좋은 시인이라 할 수도 없겠죠.
한글만 깨치면 모두 시를 쓰고, 시를 쓴다고 모두 시인이라 부른다면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참 예술의 이미지가 흐려질까 걱정이 되어 몇 마디 앞세웁니다.


제 2 강은 ‘시인’이란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시인이란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사람은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이름앞에 큼직한 간판을 내세우거나 분에 넘치게 자신을 미화하려들지요. 이런 것을 명예욕이라 하는가요?
몸에 맞지도 않은 명예를 좀 얻었다고 그 사람의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영원히 자신을 지켜 주리라 믿는 것은 오산이지요. 사람이 명예를 지켜야지 명예가 사람을 지킨대서야 되겠어요?
헌데 이 명예에 눈이 어두어지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니 큰 일입니다.
자신이 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고 믿는 상대는 억지로 밀어내고 피해를 주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니 말입니다.
명예는 애를 쓴다고 구하거나 얻어지는 게 아니라 삶의 행적에 따라 저절로 찾아오게 됩니다. 정치판의 흉내를 내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쌓아지는 게 명예지요.
여의도 경기장에서 뛰는 정치꾼들처럼 힘을 좀 얻으면 그 힘을 이용하여 사람을 모우고, 그 사람들을 동원하여 울타리로 삼고 세력화하려는 사이비 문인들이 판을 치는 현실입니다.
우리 현실은 문인을 인정해 주는 건지 높은 벼슬을 지내다가 고향 울타리 밑에 웅크리고 있는 나리들도 문인공장(?)을 부지런히 드나든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직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은 상태여서 기댈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읽을 꺼리도 풍부치 못해 무척 방황했었지요.
가판 대본집에서 빌린 소설로 마음을 달래고 시편들은 무조건 외어버렸으니까요. 그 무렵 소년의 마음 한구석앤 문학이라는 등불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나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

시를 쓰는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소설가는 어떻게 생겼을까.
신문의 문화면을 뒤져 문학관계 기사가 보이면 곧 가위질 해 스크랲을 만들었지요. 그리곤 쓰는 흉내를 냈습니다.
글이 되었거나 말았거나 개의치 않았지요. 내가 쓴 글이 당대의 최고 걸작인 것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지요.
뜻있는 친구들을 모아 동인지를 만들고, 시 낭송회를 갖고 넓은 거리가 좁게 거리를 누비며 살았지요.
세월이 흐르고 그 사이 귀밑 하얀 머리털이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읽고 쓰는 행위는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데 어릴 적 꿈은 어디까지 왔을까.
신춘문예, 추천도 거치고, 남들이 읽는지 마는지 일곱 권의 시집도 냈으니 행세를 할만한 처진데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작년 겨울, 권위 있다는 모 시인상을 외람되게도 제가 받게 되었습니다. 세종문화 회관, 평생 처음 들어가 보는 넓은 홀을 가득 메운 시상식장에서 저의 소감은 솔직했습니다.
등단의 관문을 통과한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내가 시인이라는 말을 한 번도 못해봤는데 오늘 상을 받고나니 비로소 문단의 말석을 차지한 느낌이라고-.
“시인이 되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청마의 말처럼 시인은 말고라도 난 사람은 되었는지.
누가 아무리 무어라고 떠들어도 솔직히 난 지금도 ‘내가 시인일까?’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날 내가 원하고 그리던 시인의 모습이 지금의 나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자.

아직은 좀 더 깊이 생각하고 가난하더라도 욕되지 않는 삶을 가꾸면서 시인의 길을 닦는 게 참 선비정신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 나의 문학관 *

삶을 통해 얻은 소박한 언어로 진실을 일구는 작업

시인이 시를 쓰는 일은 미식가가 맛을 찾아 헤매는 일과는 다르다. 쓰고 싶다고 씌어지는 것도 아니요, 누가 권한다고 억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때로 솟구치는 감정을 억제키 어려울 때,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몸부림 그것이어야 한다.

가슴속 깊은 곳에 용해되어 용암처럼 이글대는 진실된 삶의 갈채들. 그것들이 언어라는 그릇속에 얌전히 담겨 넘칠 때, 그 삶은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

나는 작품을 쓰면서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옛 고향 학교 운동장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놀이 공간이 지극히 빈약했던 시절, 배잠뱅이 조무래기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공동 마당이 되어 주던 운동장. 수업중인데도 마을의 행사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몸살을 앓아야 했던 운동장.

순박한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주민들의 눈치를 봐 가며 가까스로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낸다. 이럴 때야 비로소 운동장은 제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호루라기를 두어 번 길게 불어주면 아이들은 신이나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나온다. 대충 열을 세워 머리수를 헤아린 다음 선생님이 교무실로 들어 가면, 그 뒤 진행은 반장이 알아서 한다. 60여명의 아이들을 시키지 않아도 두 팀으로 나뉘어 운동장을 한 바퀴씩 돌아오게 하는 이어 달리기 경주. 하얀 선이 그려진 것도 아니지만 아이들은 어김없이 한 바퀴 돌아와 구겨쥔 모자를 다음 사람에게 전해주면 되었다. 양 팀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마지막 두 바퀴를 돌고나면 어느덧 한 시간이 끝나고, 운동장은 아이들의 함성으로 가득차게 된다.

나는 수업시간 유리창 너머로 훔쳐보던 이 때의 운동장을 매우 좋아했다. 따라 잡고 앞지르고 선두가 바뀔 때마다 내가 뛰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는 것이었다. 이기고 지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규칙이 따로 필요 없었다. 그저 모두가 한바탕 즐거울 수만 있으면 되었다. 다소 억지가 있더라도 손뼉을 치며 발을 동동 구르면 그만이었다.

진실이건 거짓이건 따지지 않고 모두를 받아들여 진실된 삶으로 녹여내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나는 거기서 발견한다.

삶은 언제나 위대하다. 그러나 늘 어려움이 앞을 막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가보다. 낡은 배를 타고 큰 바다를 항해하듯 위험이 따르기에 조심스럽게 가꾸지 않으면 안된다. 방향을 잡기가 어렵게 바람이 거칠고 파도가 높아도 흔들리거나 포기해서도 안된다. 여기서 얻어진 삶이 바로 진실된 삶이다. 문학은 삶의 진실 규명 작업이다.

삶이 그치지 않는 한 항해는 계속되어야 하며, 끝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건 파선되지 않고 항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 뿐이다. 항해는 지루하고 고독하다. 그렇지만 잠시도 쉴 수 없는 자신과의 끝 없는 싸움이다.

우리는 이 외로운 싸움을 왜 해야 하는가. 또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빈 운동장에 회오리 바람이 먼지를 날려도 그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 무질서 속에서 가려진 질서, 그것만이 진실이다. 나는 운동장에 흩어진 추억들을 매만지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의 문학은 여기서 비롯된다. 힘든 삶이었지만 부끄러움을 잊고 맨 뒷자리라도 지킬 수 있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민감할 필요는 없다. 진리는 변치 않는다는 평범한 신념으로 진실을 일구면 그만이다. 따로 특별한 격식도 필요 없다. 황토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언어로 생활속에 가라앉은 삶의 모습들을 건져 올리면 되는 것이다.

누구나 환경과 삶과 느낌이 다르다. 목적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여과된 모든 체험은 평행을 달리듯 진실 그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을 되돌아 보며 같은 시대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글을 쓴다. 산수 문제를 풀어가듯 공식에 따라 시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소재를 찾아 방황하지 않는다. 항상 가까운 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소재가 되어 준다. 추억속의 운동장이나 시골 장터 순대국, 토장국같은 고향 냄새가 물씬한 구수한 이야기들 말이다. 적어도 내가 숨 쉬는 하늘과 땅 모두가 내 작품의 소재다. 그래서 토속적인 어휘가 많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소박한 언어를 통해서 추억속에 묻혀버린 나의 참 모습을 확인하는 작업,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눈치껏 글을 쓰지 않는다. 아무도 나의 삶을 대신해 줄 수 없듯이 내 삶의 부스러기들은 나만이 책임을 갖는다. 그러므로 시는 나의 생명이며 나의 구원이다.

언젠가는 소중한 삶도 막을 내리겠지만 진실은 영원하다는 신념으로 나는 오늘도 펜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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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환(崔才煥) 시인

 

△전남 신안 출생
△목포상고,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중앙일보 소년중앙 동시 당선
△월간 《시문학》 시 천료(1977)
△한정동 아동문학상, 남교문학상, 제27회 한국현대시인상 수상. 녹조근정훈장 수훈.
△한국문인협회 목포지부장, 한국현대시인협회 부회장 역임
△한국문인수석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문학회 <문주회> 회원
△<원탁시>, <이한세상> 동인
△37년간 중,고등학교 재직 후 관매도에서 교장으로 명퇴
△시집 『표구 속의 얼굴』, 『종이비행기』, 『꿈속에서 들은 자장가』, 『가슴으로 쓰는 시』, 『귀거래 이후』, 『이승 기행』, 『세월 읽기』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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