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역을 기억하다 민명자 기역, 니은, 디귿, 리을…. 기역은 우리말의 선두주자야.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쯤은 누구라도 알 듯, 기역은 초성 중에 으뜸이요, 한글 스물넉 자 중에서도 맨 앞자리를 차지하지. 기역, 'ㄱ'이 없으면 기억이란 단어도 없어. 이외에도 부지기수로 많은 말들이 기역을 몸체 삼아 세계를 가로지르지. 나는 지금 이 영토의 한 자락에 있는 기역의 친구들을 소환해보려고 해. 가령 가랑비 내리는 날 가끔 간식으로 구미를 돋우는 고구마나 가래떡을 구워먹던 고향집 기억 같은 걸 글 마당으로 불러내보면 어떨까. 자, 가자, 기억 속으로 가보자, 가즈아~~.
각, 사람들은 대개 '둥근 것'을 으뜸으로 치지. 각진 것은 모난 것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 그런데 만일 이 세상에 둥근 것만 있다면 어떨까? 작은 가구 하나도 누간초옥도 아방궁 같은 궁전도 각이 없으면 제대로 서지 못해. 실은 원圓도 각이 맞아야 제 모양을 유지하지. 원무圓舞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각의 원리가 숨어 있어. 둥근 것은 각진 것에 기대서 더 빛을 발하는 게야. 칼군무群舞는 또 어떻고. 동작의 각이 클수록, 여럿이 하나처럼 절도 있게 각을 맞춰 착착 어울릴수록, 유연성도 커져. 멋진 각이 생명이야. 각도기란 말이 은어로 쓰이는 건 알지? '각도기를 잘 챙겨야 한다는.'는 말은 수위 조절을 잘 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는 게야. 지구는 둥글지만 그 안에서 만물은 순리에 어긋나지 않게 각을 맞추며 반듯반듯한 세상의 바탕을 이루어가지. 내 친구 정순이는 성격이 둥글어서 좋고, 윤희는 반듯해서 좋아. 그러니까, 너, 각, 주눅 들지 않아도 돼. 실망하지 마.
간, '간도 쓸개도 없다'는 말 들어봤지? 오장육부 중에서 왜 하필이면 간일까.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일까. 하긴 내 어머니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으니까. 간이 유독물질을 걸러주지 못하면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어. 그렇듯 세상살이에서도 해독이 필요한 것 같아. 아, 또 있다. '간도 크다'는 말. 그런데 음식 맛을 볼 때도 '간 본다'고 하네. 간이 잘 맞아야겠지? 사람 심중을 떠볼 때도 '간 본다'고 하는데, 그건 간 큰 사람들이나 하는 간 큰 짓일까. 하지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거나 '간에 가 붙고 염통에 가 붙는' 짓은 삼가야겠지? 간 쓸개 다 내줄 것처럼 지내다가도 쓸모가 없어지면 등 돌리는 사람도 많지. 간담상조하던 벗이 떠난다는 건 허무한 일이야. 그뿐이겠어. 험한 세상 살다 보면 간담이 서늘해지는 일도 종종 있어. 그저 어디서든 간처럼 없어선 안 될 존재이거나 간이 잘 맞는 존재가 되면 좋으련만. 그게 참 어렵네.
감, 하면 가을이 먼저 생각나. 가을은 세상을 온통 노랑 빨강으로 칠해놓는 환쟁이 마술사야. 겨울은 흰옷 입고 헐벗은 나무지팡이를 짚고 오는, 계절의 노인이지. 그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은 온갖 과일을 부지런히 익혀서 숙성한 몸짓으로 우리를 유혹해. 가을 과일로는 뭐니 뭐니 해도 감이 으뜸인 것 같아. 어린 시절 감꽃 주워 목걸이 만들며 함께 놀던 친구들은 지금 모두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한여름 뙤약볕 견뎌내며 초록빛 단단한 몸을 주황색으로 익히는 감처럼 가열한 세월을 통과하면서 저희들 인생을 원숙하게 농익히고 있을까. 제 몸을 말랑말랑 부드럽게 만들면서 떫은맛을 비워가는 홍시처럼, 제 몸의 습기를 덜어내고 쭈글쭈글 주름살 만들며 꼬독꼬독 단맛을 선사하는 곶감처럼, 그렇게 늙어가고 있을까. 까막까치 밥으로 가지 끝에 남아 등불처럼 걸려 있는 감을 보노라면 옛 고향 집이 떠올라. 김남주 시인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옛 마을을 지나며>에서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라고 노래했으니.
갑, 어쩌다 갑甲질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하긴 누군들 을이 되고 싶겠어? 그러니까 너도나도 갑의 자리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지. 애초부터 갑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없진 않아. 그렇지만 갑이라고 누구나 다 속물근성을 보이는 건 아니야. 덜 익은 풋감 같은 사람들이 그 짓을 하는 게지. 갑도 갑 나름이야.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십간십이지는 갑을 시작으로 이리저리 손을 잡고 흩어 모여. 갑자 · 을축 · 병인 · 정묘…. 육십갑자로 순환하잖아.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하나로 얼크러져 돌고 도는 거야. 갑남을녀甲男乙女나 갑녀을남甲女乙男보다도 선남선녀善男善女가 더 좋지 않겠어? 갑岬, 곶은 대해로 나아가려는 꿈을 품고 바다 쪽으로 부리를 틀고 있어. 그러고 보면 꿈꾸는 자들은 곧, 곶과도 같아. 갑匣안의 존재들은 분수껏 제자리를 지키며 평등하지. 성냥갑 안의 성냥들, 담뱃갑 안의 담배들, 그들은 '나란히, 나란히' 누워서 누군가 제 몸에 불을 확 당겨주기를 기다려. 분신焚身으로 헌신하기를 열망하며 경건하게. 그들은 불꽃으로 연기로 순교할 준비가 되어 있어. 갑甲과는 달리 匣을 지키는 존재들의 미덕이지.
갓, 새로 태어나는 존재들은 갓이라는 이름을 달아. 아기든 꽃이든 갓 태어난 생명은 아름답고 숭고해. 그런데 말이야, '배나무밭에선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도 하지? 참외밭에서 신발 끈 고쳐 매지 않듯, 오해받을 짓은 하지 말라는 게지. 양복 입고 갓 쓰는 건 좀 민망하겠지? 더구나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운 갓 하나 쓰고 그것도 감투라고 잘난 척 허세 부리는 건 더 가관이겠지? 그래도 갑옷 입고 노골적으로 싸우자고 덤비는 것보단 좀 나을까? 오 마이 갓. 그럴 땐 '아니 되오, 그러지 마시옵소서.'라고 외쳐야 할까? 목불인견이지만 살다 보면 그런 일이 한두 가지라야지, 쯧쯧. 따끈한 밥이나 한 술 듬뿍 떠서 맛난 갓김치라도 얹어 고물고물 씹으면 갑갑하고 헛헛한 속이 조금이나마 달래지려나.
강, 한 소녀가 강가에 서 있어. 소복을 입었어. 하얀 장갑을 끼고 화장한 유골의 골분骨粉을 강물에 뿌리고 있어. 소녀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렇게 보내드렸어. 기억은 딱 거기까지야. 오라비나 어린 여동생이 곁에 있었는지, 어느 강 어디쯤이었는지, 어찌 그리 아득할까. 그날 안개가 자욱했던 것도 같아. 아팠던 생의 긴 필름 중 그 한 토막만 뭉텅 떼어 놓은 것처럼 정지화면으로 잘린 거야. 소녀는 어른이 되면서 부모님 무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 보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는 그런 무덤…. 어느 강가였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었어. 그런데 그걸 알려줄 만한 웃어른들도 모두 먼 길을 가버리셨어. 이제 두 분은 꿈에도 안 보여. 어디든 강가에만 서면 아버지랑 어머니가 불쑥 나타나 '많이 힘들지?'하며 내 두 손을 덥석 잡아주실 것만 같아. 강물은 어족이 살아 숨 쉬는 생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죽은 이들의 무덤이기도 해. 얼마나 많은 유혼들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저 강기슭 한 자락 아니면 저 먼 바다 거친 물결 사이를 맴돌까. 강은 잠시 쉬어가는 간이역이야. 거센 파도 몰아치는 바다로 나가야 하는 강물이 모여 숨고르기를 하는 곳이야. 바람에 밀려 강가의 자갈들과 몸을 섞으며 찰박찰박 흔들리는 잔물결을 보노라면 이승의 땅 어느 한 뙈기에도 몸을 눕히지 못한 채 떠도는 숱한 영혼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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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역, 그중에도 '가'와 만나는 홑낱말들을 기억의 곳간에 꺼내보았어. 아쉽지만 오늘은 일단 이쯤에서 접으려 해. '가'뿐만 아니라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를 기둥 삼거나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따라 줄지어 인연을 밎는 형제자매들도 가뭇없이 많아. 기역이라는 기차에는 칸칸마다 서로 다른 기억들이 실려 있어. 기역뿐이겠어. 사람 사는 세상은 말[言]의 제국이지. 공허하거나 따뜻하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글말, 입말은 무척 힘이 세. 달리는 말[馬]처럼 저 혼자 치달을 때도 있어. 말 한마디에 웃거나 울고,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지. 그들을 한자리에 다 불러모으기엔 지면도 시간도 역부족이야. 어쩌면 평생 살펴도 모자랄지 몰라. 그렇기에 나의 '가나다라' 여행 이야기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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