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수필

월정리역 비가 / 김만년

희라킴 2019. 3. 8. 18:18



월정리역 비가 


                                                                                                                           김만년


 월정리역은 풍화에 젖은 듯 고요하다. 역사를 돌아 나오다가 풀 섶에 웅크린 낡은 객차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허물어진 객차의 등뼈가 공룡의 화석처럼 처연하다. 신생의 사막을 쿵쿵 건너오다가 융기하던 불덩이에 그만 풀썩 주저앉은 비명일까. 천형의 죄를 안고 불모의 땅에 유배된 죄인의 모습이 저러할까. 머리는 달아나고 옆구리엔 총알 자국이 선명하다. 제 흉물스런 몰골을 감추려는 듯 객차는 초록의 그늘을 한 뼘씩 넓혀가고 있다.

달려온 기억도 이젠 까마득하겠다. 검은 동륜을 굴리며 포탄 자욱한 산맥을 휘몰아쳐 왔을 게다. 원산이나 함흥 어디쯤에서 몇 량의 탱크를 싣고 남침을 감행했을지도 모른다. 일진일퇴의 교착점, 철의 삼각지를 건너다가 빗발치던 총탄에 절명하기까지가 너의 전생일진대, 네 빛나는 전공에 훈패를 달아주는 사람은 없다. 분단을 배경으로 몇 장의 추억들을 줌업시킬 뿐, 사람들은 네 깊은 상처까진 다녀가지 않는다. 다만 햇빛과 구름과 이름 없는 들꽃들만이 네 무릎에 앉아서 무료한 바람의 조의를 표할 뿐이다.

 저렇게 앉은 채로 칠십여 년, 긴 망각의 곡선 위에 앉아서 한 하늘만 바라보았을 게다. 녹물 뚝뚝 흘리며 한 생각만 붉혀왔을 게다. 한 떼의 새들이 남진하던 하늘, 한 무리의 진달래가 북상하던 능선을 사무치게 바라보다가 그만 눈멀고 뼈마디마저 짓물렀을 게다. 달리고 싶었겠다. 저 육중한 통문을 박차고 네 출생지 북녘땅으로 우렁우렁 달음질치고 싶었겠다. 압록강 너머 광활한 초원으로 달려가고도 싶었겠다. 옛 피난민들 등에 업고 해후의 기적소리 크게 한번 울려보고도 싶었겠다.

‘얘야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구나. 이젠 날 좀 치료해다오. 어느 못난 아이들이 어미의 허리를 이리 팽팽하게 당긴단 말이냐. 그만 놓아라. 이 금단의 철책을 그만 풀어다오. 꽃삽을 들어다오. 군데군데 피멍울 맺힌 허리를 치료해다오. 철책을 갈아엎어 꽃씨를 뿌려다오. 휴전선 칠백리에 산도화 진달래 만발한 꽃밭을 보고 싶구나. 두고 온 이름조차 이젠 치매처럼 가물거리기만한데 정녕 이대로 방치될 이별이냐. 뼛골 삭아질 기다림이더냐. 얘야, 이제 그만 날 좀 일으켜다오. 참말로 이 강산을 신명나게 한번 달려보고 싶구나......,' 마치 어머니의 오래된 허리통증처럼 155마일 반도의 허리를 베고 누운 객차가 나에게 절절한 아픔을 호소하고 있는 것만 같다.

 눈을 들면 멀리 회청색 능선 너머로 남방한계선이 보인다. 한 무리의 새들이 북으로 간다. 나는 눈 가는 데까지 새들의 행방을 쫓는다. 하늘에는 통문도 절개지도 없어 새들은 자유롭다. 자유롭게 왕래한다. 그 하늘 아래 백마고지 칠 부 능선이 뒤틀린 비애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저 피의 능선 어디쯤엔가 궁예가 천년 제국을 꿈꾸며 태봉국을 건설했다는 옛 도성이 있다니, 분단의 결기가 첨예하게 대립된 비무장지대 안에 누워서 궁예는 또 무슨 역모를 꿈꾸는 걸까. 대고구려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폐왕의 원혼이 전쟁의 광시곡으로 부활이라도 한 것일까. 다시 천년이 흘렀는데 삼국의 후손들은 여전히 궁예의 성곽을 사이에 두고 철의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능선마다 만장 같은 깃발을 펄럭이며 경계의 눈빛 번뜩이는, 저기 비무장지대는 여전히 천 년 전 궁예의 전장 터로 유효한 것 같다. 하늘은 평화인데 땅은 여전히 짙푸른 결기가 감돈다.

 해마다 병사들의 원혼이 능선을 타고 내려와 망초 꽃으로 하얗게 피고진다는, 저 방책선 어딘가에 일등병 아들이 있다. 노심초사 부릅뜬 눈으로 서 있을 아들, 아들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만 무력감에 빠진다. 기차의 낡음도 격전지의 전흔도 너희들 앞에선 어쩌면 지나가는 면회객의 한가한 감상일 수도 있겠다. 북녘으로 그리운 생각이 달리다가도 네 긴장한 금속성 목소리 앞에선 걸음이 뚝 멈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의 모든 총부리는 어머니의 가슴을 향한다고 했는데, 누군가의 가슴을 쏘면 그 어머니가 운다고 했는데, 스무 살 꽃다운 사진을 끌어안고 지금 어머니를 울게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총구를 겨누고 있는 너희들일까. 아니면 한 시대를 떠밀고 가는 아버지들일까. 아버지들의 딱딱한 관념들일까.

“우리 따뜻한 밥 같이 먹어요. 칙칙폭폭 기차가 아파요."

어느 해빙의 봄날엔가 코흘리개 아이들이 써놓고 간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나풀댄다. 제 흥에 겨운 듯 팔랑팔랑 북녘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만 같다. 평강19km 원산123km 함흥237km......,한나절이면 닿을 거린데 참 멀기도 하다. 저 길로 곧장 가면 가곡 해금강 명사십리......, 녹슨 이정표를 따라가는 길이 꿈길처럼 아득하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한 아름 꺾어들고 옛 시인의 노래 나직이 부르며 하루나 이틀쯤 맨발로도 걸어보고 싶은 길이다. 흰옷 입은 사람들 바리바리 싣고 기적 소리 뿡뿡, 울리며 달려보고 싶은 길이다.

한때 나는 경원선 열차를 몰고 신탄리역을 오간 적이 있다. 더는 갈 수 없어 '철마는 달리고 싶다.'란 팻말 앞에서 매번 기수를 남으로 돌리곤 했다. 언젠가 좋은 시절이 오면 맨 먼저 통일 열차의 기관사가 되어 북녘을 달리는 꿈을 꾸기도 했다. 오십 량 특대화물을 싣고 가변대차로 러시아 광궤를 달리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카레이스키’란 비운의 이름을 달고 시베리아 유형지를 떠돌던 옛 선인들의 숨결도 느껴보고 싶었다. 혜산역 어디쯤에 여장을 풀고 백두산 상상봉 단숨에 올라 반도의 푸른 등줄기 시큰시큰 굽어보고도 싶었다. 상상이 현실 속에서 복원되기를 고대하고 기도했다.

 스물 몇 살 새파란 날이 흘러가고 어느새 귀밑머리 희끗한 반백의 기관사가 되었건만 좋은 시절은 여전히 미래진행형이다. 물컹한 만남은 언제나 희망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막혔던 눈물길은 아직 열리지 않았고 통일은 여전히 공허한 수사로만 덧칠되고 있다. 불통不通의 세월이 수수방관하는 사이 복사꽃 붉던 뺨, 기다림도 이산의 한도 꽃잎처럼 시들어갔다. 만남은 언제나 이벤트처럼 왔다가 가고 차창을 스치는 저 망연한 눈빛들, 이제 사람들은 불망의 이름들을 속속 지우며 긴 망각의 강을 건너고 있다. 삶은 겪는 자의 몫이라고 했지만 겪어보지 않아도 나는 이미 섧다. 서러운 노래로 서 있다. 언제 연두빛 고운 봄은 오는지. 늴리리야 늴리리 어깨 걸고 춤추는, 그 환한 봄날은 차마 오고는 있는 것인지. 달빛 기울기 전에 천 모금의 물을 길어 아버지를 치료했다는 월정리月井里, 달빛 기울어도 그리운 이는 오지 않아, 녹슨 철마는 버려진 미아처럼 갈 길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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