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배
정채봉
나는 어린 시절에 곧잘 배를 띄워 보냈습니다. 유년의 기억 중 우리 집 옆으로 흐르고 있는 도랑 가에서 댓잎배를 띄어 보내던 일이 가장 또렷합니다. 그때는 아무 바람도 싣지 않은 채 그저 나의 댓잎배가 멀리 가기만을 빌었지요.
학교에 들어가 글을 익혀서는 종이배를 접어 내 이름을 적었습니다. 연필에 침 묻혀서 삐뚤삐뚤 적은 내 이름의 종이배를 학교 앞 개울물에 띄워 보내며 나는 가슴 두근거렸었습니다. 어느 누구한테 나의 종이배가 닿을지, 하늘의 별을 보며 생각했었습니다.
그 뒤, 언젠가는 선창에서 오징어의 갑을 얻어와 배로 삼았습니다. 배의 복판에 못으로 '엄마 이름 허정순'이라고 파서 바닷가에 가 띄웠습니다. 이 세상에 한번 외출 나오시길 바라며... 그러나 우리 엄마는 영영 오실 줄을 몰랐습니다.
아아. 내 나이 열 살이 되었을 때 우리 집은 포구인 고향을 떠나 이웃 읍내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몰래 제재소에 숨어 들어가 소나무 껍질을 벗겨왔었지요. 그리고는 그것으로 배를 만들어 우리반 가시내의 이름을 하얀 크레용으로 쓴 다음 오 리 밖에 있는 강가에 가 띄웠습니다. 그러나 소식 없기는 그 가시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여름 어느 날 밤에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띄워 보낸 배들 중 솔껍질 배가 고향 포구로 돌아 오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나는 열 살 적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는 고향 소꿉친구 가시내가 암으로 죽었다는 부음을 들었습니다.
출처: <좋은 예감> 정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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