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지 틈으로
남지은
백부께서는 거의 매일 낫을 가셨다. 풀을 베는 낫, 나무를 자르는 낫, 곡식을 베는 낫 등 용도에 따라 다양했다. 가끔은 부엌칼, 창칼, 면도칼까지도 “쓱싹쓱싹” 소리를 내며 갈았다.
대를 물려가며 얼마나 갈았는지 숫돌이 닳아서 가운데가 움푹 파인 굴곡이 있었다. 백부께서는 낫을 갈았는지 숫돌을 갈았는지 모를 일이다. 굴곡은 숫돌의 나이테였고 백부의 땀이었다. 그 어른이 돌아가실 무렵의 허리는 숫돌과 반대로 묏등이 되어 있었다. 자신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논밭을 가꾸고, 농우(農牛)를 돌보다가 굽은 등이다. 아버지께서도 농사를 지으며 낫을 갈았지만 우리 숫돌에는 굴곡이 없었다.
낫은 식구 수와 비례한다. 식구들은 각자 자기 손에 맞는 낫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만큼 식구가 많은 큰댁은 갈아야 할 낫이 많았다. 백부께서는 낫을 갈아서 부엌의 빈지 틈 사이에 일렬횡대로 꽂아두셨다. 낫이 걸려 있어도 살벌하지 않고 오히려 형제들이 키 재기 하듯 정겨운 곳이 빈지 틈이다. 거기서 낫이 없어진 것을 보면 가족 중에 누가 무엇을 하러 나갔는지 단박 알 수 있었다.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낫부터 빈지 틈에 걸어놓고 요기를 하셨다. 그리고 들에 나가실 때 또 낫을 갈았다. 희로애락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던 백부께선 좀체 곁을 주지 않으셔서 나는 그분의 낫 가는 모습을 빈지 틈으로 엿보곤 했다. 백모와 어머니께서 내외해야 할 사랑방 손님이라도 오면 부엌에서 빈지 틈으로 엿보시던 모양을 흉내내는 꼴이었다.
마당에 있는 우물가에서, 양 무릎 앞에 숫돌을 세우고, 그 위에 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낫을 쓱쓱 문지르신다. 낫을 너무 눕혀서 갈면 날이 서질 않고, 급한 마음에 낫등을 치켜서 갈면 옥갈리기 쉽다. 숙련공의 기술처럼 낫 가는 일도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감각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낫이 갈렸다 싶으면 엄지손가락으로 날을 슬슬 긁어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시퍼런 날을 쏘아도 보신다. 그때 나도 같이 미간을 찌푸리며 백부를 낫인 양 바라보았다. 그분의 이마에는 어느덧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어 나는 공연히 내 이마를 훔쳤다.
사람들은 제각기 가슴속에 숫돌 하나씩 감추고 사는 것 같다. 학문을 갈고 닦기도 하고, 원수지간에는 이를 갈기도 하니 말이다.
빈지 틈으로 내가 진정 보고 싶었던 풍경은 단지 낫을 가는 일이었을까. 아마 땀 흘리며 일하시는 그분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홀로 드리는 기도처럼 은밀하게 지켜보는 일은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다. 그때 어두운 곳에서 밖을 내다보는 습관은 미래에 대한 갈망이었는지도 모른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을 들여다보면 앞이 깜깜할 뿐이다. 학덕과 지성을 갖춰 세인들의 관심과 추앙을 받던 사람들이 갑작스레 추락하는 모습이 그런 경우다. 경제적 불안으로 주름이 깊은 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당리당략에만 급급한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닌 이 나라의 숙병(宿病)이라고 해야 할까. 지위에 따른 책무는 망각하고, 정체성마저 결여된 그들은 선거가 임박하니 국민이 숫돌쯤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땀은 흘리지 않고 칼라의 깃만 세우고 또 세우니 말이다.
빈지 틈으로 보았던 세상은 진실로 땀 흘리는 모습이었다.
※ 빈지 : 널빤지로 짜 맞춘 벽의 일부로 일종의 환기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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